굶지는 않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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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안 되는 반찬통에 내용물보다 빈 곳이 더 보이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애장 장바구니, 나이키 고어텍스가 박힌 아니 이제는 너덜너덜한 가벼운 가방을 들고 바로 옆에 있는 시장으로 나섰다.

예전에는 경기나 물가의 그리 민감하지 않았다. 자주 먹는 음식이나 식재료  구매시 가격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몇 달 사이에는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시장에는 반찬 가게가 몇 곳이 있다. 김치, 마른반찬, 장조림 등등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아이들이 반짝이는 투명 플라스틱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소고기 장조림이 눈에 들어와 가격을 물어보았는데, 충격적이었다. 고기반찬은 매우 매우 아껴먹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기껏해야 3, 4끼면 사라질 정도의 양임에도 몇천 원씩에 파는 모습이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집으로 돌아와 재정비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이전에도 반찬을 안 만들어 본 건 아니지만 매우 간단한 것들 위주였는데, 이번에는 직접 장조림을 해보기로 한다. 구글과 유튜브를 검색해 간단한 조리법을 파악하고 재료를 목록화해서 다시 전장에 나섰다. 새삼 느낀다. 바로 옆에 시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구매한 식재료는 집에 오자마자 바로 만들기 시작했다. 고기를 삶아야 하기에 조리 시간은 길지만 생각보다 간단했고 그에 비해 맛은 좋았다. 이 정도면 사서 먹을 필요가 없겠는데? 그랬다. 그 이후로 장조림 완제품은 사서 먹지 않게 되었다.

 

겨울이다. 겨울 하면 김장이다. 나는 세계 최고의 음식을 꼽는다면 엄마가 해준 김장 김치다. 엄마의 김치라도 신김치는 안 먹는다. 오로지 갓 담근 김장 김치. 이것만 있으면 일주일 내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하지만 멀리 있는 요즘 ‘그’ 김치를 먹기는 쉽지 않다. 김치냉장고가 없는 젊었을 적 탱탱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익어버린 김치와 식사를 한다.

때문에 가끔 겉절이를 사 먹는다. 몇 곳의 반찬가게 대부분 1km당 1. n만 원대로 판매하고 있다. 번갈아 가며 사 먹어 보았지만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비슷한 맛이고 특이점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장조림도 하는데 겉절이는 못 할쏘냐?

역시 겉절이는 간단했다.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고(안 해도 무방) 여러 재료를 섞어 만든 양념에 버무리면 끝! 마침 얼마 전에 구매한 겉절이가 바닥을 보였기에 아침 일찍부터 시장에 가서 배추와 쪽파 그리고 부족할 것 같아 고춧가루를 구매했다.

우선 배추를 잘라 소금물에 담가 놓고 그 시야 아침 밥을 먹었다. 설거지까지 한 후 양념을 만들고, 조금 더 절인 후에 비비기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고…” (아재 측, 혼잣말할 때 멜로디를 넣는다. )

 

하나 맛을 본다. 앗. 생각보다 매콤하지 않은데? 알 배추의 단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예전 같으면 고춧가루 더, 소금 더 넣고 ‘2023겉절이_수정.반찬’, ‘2023겉절이_수정_최종.반찬’으로 업데이트 되었겠지만, 이대로 두고 반찬통에 넣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아직 배추 한 통이 남아 있다~~~”

실패? 성공? 이라고 하기는 애매하다. 아니 뚜껑을 덮기 아쉬워 계속 하나씩 집어 먹는 거 보면 성공인가?

 

신김치보다 겉절이를 좋아해서 다행이다. 매년 겨울마다 실시하는 김장보다 간단하게 배추에 양념만 버무리면 끝나니까. 집에서는 무엇을 먹느냐보다 먹는 행위 그 자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밥상에 좋아하는 한, 두 가지만 있어도 배부르고, 등따숩고, 행복하다.

가을이 온 것 같았는데 어느새 겨울이 와버렸다. 거리의 가로수에는 미쳐 노란 옷, 빨간 옷으로 갈아입지 못채 낙엽이 되었다. 우리도 이런 갑작스런 날씨의 변화가 변화가 익숙하지 않단다~

유난히 길고 지독할 것 같은 올겨울은 집에서 내 손으로 해 먹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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