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 들어서면 타임머신을 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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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초이지만 반팔을 입을 정도로 따뜻한 날, 서울이 아닌 교토다. 이곳에서 대학 생활을 보낸 여자친구의 취향과 나의 요구사항이 합쳐진 이번 여행은 도장 찍기보다는 산책이다. 낯선 곳에 내디딘 발걸음은 바삐 움직이는 눈길과는 다르게 느릿한 속도로 내딛는다.

평소에도 걷는 것을 좋아하고 다양한 곳에 시선을 두며 일상도 여행이라 생각하며 도시를 느끼는 내게 다른 나라, 교토의 산책은 마냥 행복하다. 도심보다 골목길과 강변을 걷다 보면 그들의 일상에 들어가 그들의 풍경을 꾸며주는 아이템이 되기도 한다.

무슨 옷을 입고 산책하는지, 다 같이 모여 하는 게임은 무엇인지, 마당은 어떻게 꾸며놓고 사는지 지켜보며 나의 일상과 비교한다. 언어가 다르고 사는 곳이 다르고 환경도 다르지만 인상적인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짝꿍의 20대 초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그녀의 추억 한 페이지를 듣는다. 저 멀리 왁자지껄 즐겁게 노는 한 무리를 바라본다. 그녀도 나도 저런 시간이 있었지. 즐거웠지, 행복했지. 여행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간으로 돌아가 보기도 한다.

평지의 대학 교정은 오래된 건물과 주차장에 가득한 자전거, 창문 너머로 보이는 수업의 풍경과 따뜻한 햇살이 더해져 아름다운 일상이 되었다. 정문 앞 본관 건물을 찍기 위해 카메라 렌즈를 향하니 지나가던 학생들의 브이가 눈에 들어온다. 그들의 웃음에 미소로 화답하지만 아쉽게도 너희들은 사진에 담기지 않았어. 건물만 줌으로 당겼거든!

 

 

본가에 내려가면 정해진 산책코스가 있다. 약간의 내리막길을 걸어가면 이 동네에 처음 살던 집부터 두 번째 집, 그리고 이전에 살았던 빨간색 벽돌집까지 구경할 수 있다. 다행인 건 재개발이 되지 않아 예전 동네의 흔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 골목길에서 동네 친구들과 놀던 기억. 우체국 오토바이와 부딪혀서 한쪽 발에 깁스하며 지내던 동생의 모습도 떠오른다. 당시 우체부 아저씨가 깁스 한 동생을 위해 몇 번이나 찾아와 주시던 기억도 난다.

유독 두 번째 집의 기억이 많다. 작은 골목 안 첫 번째 집이었다. 하늘색 철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마당을 거쳐 우리 가족의 따뜻한 집이 보인다. 가을이 되면 마당에 있는 작은 단풍나무가 빨갛게 물들었는데, 마루에 앉아 바라보았다. 저 멀리 파란 하늘과 야트막한 산봉우리와 함께.

7살의 나는 유치원이 아닌 웅변학원을 다녔다. 지금의 나를 보면 그 효과는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웅변학원의 기억 중 하나는 점심시간이다. 식사 시간 전이 되면 학원 한편의 밥통에서 밥이 되는 소리와 향긋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한다. 반찬은 엄마가 싸주셨는데 방울이 달린 빨간 도시락 가방에 넣어주셨다.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 골목길에 들어서면 방울 소리가 나의 귀가를 알리기도 했다. 지금은 캐리어의 바퀴 소리가 대신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대문 앞에서 외치는 소리다.

“엄마~~~”

대문을 두드릴 수도, 전화를 할 수도 있지만 일부러 외친다. 이 엄마 소리를 영원히 외칠 수는 없으니까. 언젠가는 메아리없는 외침이 될 수도 있으니까.

 

서울에서 보낸 동네가 떠오른다. 한창 대단지 아파트가 지어지는 곳도 있고 아직 예전 모습을 간직한 곳도 있다. 문득 그곳을 가봐야겠다. 그곳을 걸으며 그때의 나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 되돌아보고 상상해 본다. 누구와 함께 했고 무엇을 했을 때 행복했을까. 지금과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그곳에서 앞으로의 나를 예상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곳에 머물러 있던 나에게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오래된 곳은 허물고, 죄다 비슷하게 생긴 상자로 만들어 버리기 바쁜 요즘 사라지기 전에 눈으로 카메라로 담아놔야지. 사라지기 전에 나를 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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