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받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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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의 근무일 5일, 10번의 전쟁을 치른다. 요즘 회사 일은 여유로워서 바쁘게 할 것이 별로 없다 보니 업무시간에도 딴짓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한다. 덕분에 현재 회사생활에서 가장 힘든 일은 출퇴근이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해가 뜨기 전에 집을 나서고, 해가 뜨고 나서 돌아온다. 아침에 회사에 도착하거나, 저녁에 집의 현관문을 열면 진이 빠진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한 복잡한 지하철과 버스는 도대체가 적응이 되지 않는다. 가끔 매너 없는 사람을 만날 때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

 

얼마 전 퇴근길, 저 구석에서 전화 통화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이어폰을 뚫고 들어왔다. 좁고 복잡한 그곳에서도 귀에는 화이트 노이즈를 재생시켜 놓고 작은  E-Book 리더기로 책을 읽는데, 도저히 집중되질 않았다. 사소하게 아니 전혀 쓸데없는 대화는 눈에 들어온 문장을 튕겨내기 일쑤였다. 꾹 참고 내 할 일을 하고 싶었지만 좀처럼 끝나지 않은 통화. 여의도를 지나면서 약간의 공황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숨쉬기가 힘들고 몸이 비틀어질 정도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다행히 얼마 안 가 내렸는데, 정신적으로도 힘들고 땀도 많이 흘려서 그 추운 날 코트를 벗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이미 수많은 사람으로 가득 찬 그곳에서 한 명으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는 상황을 목격하게 되면 뭐랄까. 마블의 케릭터 퍼니셔가 보고 싶어진다. 아니 신께서는 나의 인내력 테스트를 하시는 건가? 원망하지만 매일 같이 다양한 종류의 빌런을 만나면서 정신력이 강해지는 것 같기는 하다.

 

어느 날 오후 늦게 할 일이 생겨 조금 늦은 퇴근을 했다. 이 시간에 집에서 쌀을 씻고 밥을 해 먹기에는 애매해서 집 근처 시장에 있는 애정하는 칼국수가 떠올랐다. 그 집의 운영 시간은 7시이지만 재료가 소진되면 퇴근하신다. 이럴 줄 알았다면 무리해서라도 급행을 타야 하는 건데 하며, 모든 정거장에 들르는 이 녀석을 또 원망했다. 그래도 재미있는 책을 읽다 보면 때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기도 한다. 바삐 버스로 환승하고 시장으로 달려갔다.

저 멀리 칼국숫집 간판에 불이 켜진 게 보였다. 아직 운영 중이라는 표시! 빠르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각자의 풍성한 저녁 식탁을 위해 많은 분이 장을 보고 계셔 빠른 걸음도 힘겨웠다. 50미터, 30미터, 10미터 가게에 도착했지만, 손님이 아무도 안 계셨다. 그 말인즉슨 오늘 영업은 끝났다는 것.

“하아…”

오늘도 실패다. 음식점이든 사람이든 인기 있는 사람들과 친해지기가 참 쉽지 않아. 계획이 흐트러지고 집으로 돌아와 어제와 같은 반찬으로 저녁 식사를 한다. 어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긴 김치가 기다리고 있어서 칼국수에 바람맞은 기분은 금세 풀어진다. 기필코 다음번에는 허탕 치지 않고 나의 마음을 받아주길.

오늘처럼 추운 날 손으로 빚은 면과 그릇 가득한 바지락, 얼큰한 국물의 칼국수가 제격인데, 에잇 오늘은 삼겹살이나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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