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요즘은 다양한 음악을 듣고 있다. 출근길에는 피아노 연주곡 위주로 스포티파이에 저장해둔 ‘morning’이라는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한다. 가끔 키스 자렛의 쾰른 라이브를 듣기도 하는데, 매일 들어도 연주의 아름다움, 연주자의 표현에 감탄한다. 몸과 마음이 지친 퇴근길에는 새로운 노래가 추가되었다.
새롭지만 새롭지 않은 S.E.S의 <꿈을 모아서>서다. 은근히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곡인데, 다시 들으니, 가사가 이렇게 아름다웠던 곡이 었구나라며, 들을 때마다 놀랍다. 이 때문에 힘이 나기도 하고, 희망 섞인 메시지 덕에 무한반복을 하기도 한다.
이 곡은 일본 진출을 위해 만들어진 곡에 한글 가사를 붙여 국내에 발표한 노래다. 가끔은 일본 버전의 뮤직비디오를 보기도 하는데, 다양한 풍경은 나오지 않지만, 일본 시내의 어느 빌딩의 내, 외부를 배경으로 한 영상은 왠지 그 시절의 일본을 너무 잘 표현한 듯한 느낌이 들어서 매력적이다.
토요일 오전에 운동을 마치고 식사를 하면서 언제나 처럼 최애 밥친구인 무한도전을 재생시켰다. 오늘은 ‘텔레파시 특집’, 기획도 참 좋고, BGN으로 좋은 곡도 많이 나와 에피소드와 잘 어울린다는 이야긱 많다. 특히 오늘 귀에 들어온 곡은 에피톤 프로젝트의 <오늘>이었다. 바로 무한도전을 정지하고, 시디가 쌓여있는 방구석으로 향했다.
뒤지고 뒤져 에피톤 프로젝트 1집을 발견하고 오래된 시디플레이어에 연결해 스피커로 재생시켰다. 이렇게 좋은 날에는 밝고 경쾌한 노래가 어울릴 것 같지만, 조용한 주말 오전 방안을 잔잔히 울리는 소리는 한 주에 쌓인 피로와 긴장을 노곤하게 만들어 주었다. 밥먹다 말고 연주와 가사에 심취해 눈물을 흘릴 뻔 했지만, 밥은 꼭꼭 씹어 먹으라는 오래전 엄마의 말씀을 떠올리며 식사를 마무리 했다.
같은 방향을 가는 줄 알았죠
같은 미래를 꿈꾼 줄 알았죠
아니었나봐요
이제 음악은 즐거움, 행복을 위한 콘텐츠라기보다 추억을 다시 소환해 내는 용도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삶의 시기마다 대표하는 노래들을 들을 때면, 그때의 나, 시대 상황, 사람들이 떠올라 감성에 젖곤 한다. 특히 사람.
선곡의 기준은 감정과 상황에 맞는 노래 멜로디나 가사가 아닐 수도 있다. 그때 귀로 들어와 마음에 잔여물을 남겼다면 그걸로 선택의 이유는 충분하다.
학창 시절 같은 과에 친하게 지내던 예쁜 아이를 짝사랑할 때 들었던 앰프의 <어쩌다 가끔씩>, 서울에 처음 올라와 신기함과 호기심 그리고 외로움을 견디며 듣던 패닉의 <태옆장치 돌고래> (패닉 콘서트 티켓을 구하지 못해 슬픈 1인), 요즘 행복한 금요일 퇴근길마다 듣는 Boz Scaggs의 <We’re all alone> 등이 떠오른다.
이제는 새로운 음악을 찾기보다는 잊고 있던 곡을 기억해 내는 데 집중한다. 가끔 심장을 관통하는 최신의 곡들도 있지만, 1년에 한 두 뮤지션에 불과하다. 내게 최신의 뮤지션이라고 하면 혁오나 실리카겔인데 이들도 데뷔 직후부터 봐온지라 10년도 넘은 듯하다. 흔히 티브이에 나오는(보지도 않지만) 최신 댄스곡이나 힙합은 전혀 알지 못한다. 사실 알고 싶지 않은 이유가 더 크다.
누군가의 말처럼 10~20대에 듣던 음악이 평생을 간다는 것이 맞는 말 같다. 재즈, 클래식 장르는 30대 중후반에야 듣기 시작했지만, 전체 비율로 보면 절반 이상은 맞는 말이다.
블로그를 정비하면서 노션에 있던 콘서트 기록을 옮겨오는 작업을 했다. 정확히 200번의 콘서트를 보았다. 연도별로 관람한 기록을 보니 당시 공연장의 공기와 무대 위 열정적인, 혹은 감성에 빠져 만들어 내는 소리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마침, 새벽이라 술 한 잔 안 할 수가 없다. 설거지하다 깨져 버린 위스키 잔 대신 예쁜 맥주잔을 골라 카발란을 따른다. 먼저 코로 바닐라 향을 즐기고, 입술로 위스키를 음미한다.
첫 콘서트 기록부터 천천히 살펴보았다. 기록하지 않았다면, 이런 시간을 보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음악도 단순히 들으면서 감상에만 젖지 말고, 한 줄의 문장을 남겨야겠다며, 수백 번째 다짐을 해본다. 음악에서 기록의 중요성으로 흐르는 이상한 글임에도 몇 년 후에 다시 읽으면 오늘을 추억하고, 눈으로 바라본 풍경을 떠올릴 수 있겠지? 그때는 다시 에피톤 프로젝트의 <오늘>을 잊지 말고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