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습니다.
6주차
서태지 콘서트를 보기 위해 대절한 버스에 올랐다. 출발한 시간이 되었음에도 주차장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5분이 흘렀을까 누군가 헐레벌떡 뛰면서 버스에 올랐고 즉시 출발했다. 그녀는 빈자리 중 내 옆을 선택했고 거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녀의 아우라는 나와는 정반대의 E 성향인 듯했다. 옛날 버전으로는 O형답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말을 걸어왔다. 나보다 누님이셨고, 혼자 가는 나를 신기하면서도 대단하게 생각했다. 서울에 지인들이 있어 콘서트 전에 함께 있자는 제안을 하셨고 낯을 가리고 소심하지만, 초대는 거부하지 않았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약간의 긴장과 설렘을 안고 버스 밖 풍경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6시간이 걸려 콘서트장인 올림픽 공원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열리는 서태지 콘서트는 처음이라 팬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옆자리 누나의 지인들과 인사했고, 친근하게 대해준 덕분에 금세 친해졌다. 같은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 처음이었다. 주변에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에서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눈을 마주치며 입으로 표현하고 귀로 생각을 듣는 경험은 신비로웠다. 몰랐던 정보를 알 수 있기도 했고, 각자가 즐기는 방식을 듣는 것도 재미있었다. 신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그 후 한 번의 서울 공연, 한 번의 부산 공연에서 또 만났다. 서울 공연 후에는 근처 사시는 분 댁에 다 같이 하룻밤을 보냈다. 부산에서는 숙소를 잡아 함께 놀고 다음 날에는 태종대 관광을 하며 서울분들에게 부산을 소개하기도 했다. 주도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지만, 짧은 시간에 좋은 곳을 다니던 시간은 마치 소풍을 떠난 초등학생 시절 같아 마냥 즐거웠다. 태종대 아래 해변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때 서태지 밴드의 드러머를 만난 건 서프라이즈이었다. 갑작스러운 만남에도 드러머분은 흔쾌히 인사도 받아주시고 티켓에 사인도 해주셨다.
“형님 바세린(밴드명) 때부터 좋아했는데 서태지 공연에 함께해서 너무 좋아요”
“감사합니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노대영입니다.”
“감사해요!”
우리는 뜻밖의 에피소드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누나들이 부산을 떠나시기 전까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1년이 지나 분당에 위치한 회사에 취업했다. 가까이 사시던 누나들이 서현역에서 밥을 사주기도 하셨다. 그 후에도 종종 연락하고, 공연도 함께 가기도 했다. 요즘 서태지의 유튜브 채널에는 오래전 뮤직비디오나 라이브 영상을 4K로 리마스터링해 업로드 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누나들을 만난 시기인 7집 공연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과거를 추억하며 듣다 보니 누나들과 그때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각자 일상이 바빠 연락이 끊긴지도 10여 년이 지났다. 주기적인 연락처 정리 끝에 지금은 전화번호조차 알 수 없다. 이제는 수소문할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그분들도 이 영상을 보고 계실지 궁금하다. 혹시나 그녀들도 보시지 않을까 싶어 댓글을 남겨두었다. 언젠가 나를 알아보고 답글을 달아주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같은 가수를 좋아하는 것만으로 나를 받아주시고, 함께해 주신 배려와 따뜻한 마음이 떠오른다. 벌써 16년 전의 일이지만 여전히 생생하다.
좋은 점 :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는 사람! 이라는 것을 생각했던 적이 많았어요. 16년 전이라는 말로, 작가님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때면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는 것이 얼마나 설레는 일일까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오래된 추억은 잊고 살다 가도 어떤 트리거가 있으면 툭 떠오르는 것 같아요. 이 글에서 마지막 부분에 이때의 순간을 떠올리는 계기가 나와 좋았어요. 추억 여행을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 :
-좋아하는 가수를 만나러 가는 길,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신나는 이야기를 읽는데 글 전체적으로 그런 설렘과 감동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고 무미건조함이 더 많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했고, 했고~ 이런 느낌으로 당시의 상황을 팩트 중심으로만 안내하고 있기 때문일 것 같아요. 상황을 설명하는 이야기 보단 작가님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더 많이 담기면 좋겠어요.
-<벌써 16년 전의 일이다.> 이 문장으로 첫 포문을 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회상 느낌으로 이야기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회상이 아닌 당시의 상황이 현재처럼 생생하게 담기도록 한 후, 마지막 문단에서 이 말이 나왔다면 좀 더 극적이지 않았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