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면 밥만 먹고 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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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군, 빠레뜨 정리 좀 해놔라”

회사 마당에 큰 화물차가 성큼하고 들어와선 걸컥 배를 까더니 엄청난 양의 물건이 실려 있었다. 제품의 원재료가 도착했고 마당에 내려놓아야 했다. 아무런 기술도 없이 몸으로 때우는 것만 할 줄 알았던 나는 지게차의 덧니에 잘 끼울 수 있도록 빠레트의 방향을 돌려 놓았다.

21살 겨울 방학 시절 나의 첫 알바는 집 근처 엄마가 일하시는 공장에서 잡일하는 역할이었다. 알바의 목적은 여름 방학 매년 도쿄에서 열리는 섬머소닉 페스티벌에 가기 위함이었다.

나의 역할은 어렵지 않았다. 반장님이 지시에 따라 짐 옮기기, 장비나 물건 찾기 및 공장에서 이루어 지는 잡다한 일이 었다. 반장님과 나 그리고 내 또래 친구 한명으로 구성되어 다름 딴딴한 팀웍을 자랑했다.(고 생각한다)

이 알바가 좋았던 건 엄마가 오랫동안 근무해 온 회사라서 엄마의 동료분들이 좋게 봐주셨다. 점심 시간에는 식당 아주머니들이 요쿠르트 하나 더 챙겨주시기도 했다. 가끔 일이 없을 때는 엄마의 일터로 가서 구경하거나 도와주기도 했는데,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밖에서 일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본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으니까.

 

공장에서의 2개월이 처음이자 마지막 아르바이트였다. 집안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고, 당연히 용돈도 항상 부족했는데, 왜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을 안 했던 걸까? 돈 욕심이 없었나? 없으면 없는대로 사는 것이 익숙해 져 있었던 걸까? 그러면서 한창 락 음악에 빠져있던 그 시절 섬머소닉이 그렇게나 가고 싶었던가 보다. 결국 가지 않았지만.

지금은 지옥철을 뚥고 회사의 일부 답돌이들과 함께 하면서 사회인으로서 찌들어가고 있지만, 첫 알바를 하면서 부모님의 존경심이 더 커지게 되었다.

일의 대부분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었기에 너무 피곤했다. 퇴근 후 저녁을 먹으면 금방 골아 떨어졌다. 당시 취침시간은 저녁 8시, 기상 시간은 7시였다. 밖에 나갈 놀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눈 뜨면 밥 먹고 출근, 퇴근 후 밥 먹고 잠.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상의 연속어었지만, 처음으로 내가 돈을 번다는 뿌듯함은 꽤 오랫동안 인상적으로 남아있었다. 지금은 돈 적게 벌어도 되니까 일도 조금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10월 초에 교토를 다녀 온 후 지난 주에는 내년 4월 스즈카에서 열리는 F1 경기 티켓과 비행기, 호텔을 모두 예약해 버렸다. 문득 21살 겨울 방학 때의 내가 떠올랐다. 내가 번 돈으로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복인지 세삼 꺠닫는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이유는 넓고 높은 집, 시끄럽고 큰 차가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하고 싶을 뿐이다.

이제는 퇴근 후에 바로 잠을 자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여유가 있다. 야근도 없고 주말 근무도 없다. 지금 가장 큰 관심사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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