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과 잔조
신록이 가득한 곳이었다. 어버이날 겸, 엄마 생신 축하 겸해서 가족들이 본가에 모였다. 동생네가 가져온 갈비찜과 케이크로 근사하고 배부른 점심을 함께한 후 모교 근처의 고분군에 산책을 나갔다. 그곳에는 푸르디푸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터널 공사하면서 발견된 곳이었다고 하는데, 산 능선 위에 8개가량의 커다란 무덤이 푸른 잔디를 입은 채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렸을 적에 옆 동네에 있던 과학관 구경 갈 때 다니던 산길이었는데, 그곳에 이런 엄청난 규모의 무덤이 있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더 신기한 건 그 산 위에 소 키우는 집이 있었다. 산에 어떻게 집을 지을 수 있었는지, 비록 시내는 아니지만 부산 한복판에서 어떻게 소를 키우게 되었는지, 그때나 지금이나 아리송하다.
왕의 무덤은 아니라고 하는데, 당시 얼마나 큰 권력을 가진 지배 계층이었길래, 동네의 산 정상에 무덤을 만들었을까. 주변을 걷다 보면 느껴지는, 상쾌하고 푸른 신록을 온몸으로 호흡하면서, 드는 세속적인 생각이었다. 그분들 덕분에 동네 뒷산에서 탁 트인 시야와 푸르름을 느낄 수 있어 잠깐 서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이런 고대 문화재가 아니었으면 슬금슬금 산을 먹으려던 아파트 무리의 활동이 여기까지 침범했을 거라는 상상을 한다.
강렬한 햇살 아래의 산책을 마치고, 나무 그늘로 자리를 옮겨 각자 마음에 드는 의자에서 쉰다. 괜히 운동 기구로 다가가 시원한 바람에 날릴 땀을 생산해 낸다. 살 좀 빼라는 엄마의 강력한 발언을 잠재우기 위한 잠깐의 핑계다.
대단한 외식을 하지 않고, 화려하게 치장한 쇼핑몰에 가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다들 건강하고, 큰 욕심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저 동네 산책만 해도 행복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어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소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기질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함을 마음속으로 전했다.
물론 갑자기 2주 후에 백두산에 가신다는 깜짝 발표 등으로 놀라게 하시기는 하지만, 평생 노동의 대가를 지금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시는 것에 자식으로서 편안함을 느낀다. 집에서도 역시 나만 잘하면 된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저녁노을의 희미한 흔적을 지켜보았다. 찾아보니 중국 문학에서는 ‘잔조(残照)’라는 단어가 자주 쓰인다고 한다. 다시금 (나의)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깊고 어두운 우울의 늪에 빠져있는 지금, 적절한 시점에 가족들을 잘 만나고 온 것 같다.
머리 위의 뜨거운 햇살보다 잔조 느낌의 삶으로 옮겨가는 듯하지만, 다시금 차가운 손으로 태양을 끌어 올려 다시 활활 불타오르는 열정과 에너지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6월에는 동생과 제주도 여행이 예정되어 있다. 처음으로 둘만 함께하는 여행이라 설렌다. 단순히 동생과 함께하는 시간보다는 둘이서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지가 기대가 된달까. 벌써 둘 다 40대가 되었고, 대화의 주제도 삶에 더 깊숙한 부분을 다루게 되었다.
동생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형이지만, 이번 여행에서 서로에 대해 더 알아가고, 얼마나 가까워질지 기대와 궁금증을 품은 채 제주행 날짜만을 손꼽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