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31일
세상은 나를 기준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나를 기준으로 휴대폰을 만들었다면 사용은 커녕 이해할 수도 없는 기능을 이처럼 듬뿍 욱여넣었을 리 없다.
나를 기준으로 담배를 만들었다면 한 갑에 달랑 스무 개비만 들어 있을 리도 없고, 담배 길이가 몽당연필만 할 리도 없다.
나를 기준으로 술집을 설계했다면 한구석에 일인용 간이침대가 놓여 있지 않을 리 없다.
나를 기준으로 TV 프로를 편성했다면 그 시끄러운 양반들이 주말 저녁을 독차지하고 있을 리 없다.
나를 기준으로 육개장을 만들었다면 지푸라기와 별반 차이를 느끼기 어려운 고사리가 거기에 들어 있을 리 없다.
아무리 둘러봐도 나는 기준이 아니다. 기준이 아니니까, 마음에 드세요? 이 정도면 괜찮나요? 한 번만 더 봐 주시겠어요?
귀찮게 말 걸어오는 사람도 없다. 따라다니며 시간 빼앗는 사람도 없다.
기준들이 불쌍하다.
여러분은 인생을 자유롭고 아름답게 할 힘을 가졌습니다.
You, the people have the power to make this life free and beautiful!
– 영화 <위대한 독재자> (1940)
두뇌가 유출해낸 건조한 문서보다 뼈에서 느껴지는 떨림이 더 신빙성 있는 증언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A trembling in the bones may carry a more convincing testimony than the dry,
documented deductions of the brain.
– 르웰린 파워스
토끼를 발견하고 사냥개를 풀어도 늦지 않고, 양을 잃어버리고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
– 전국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