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해도 좋고 혼자라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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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많지 않다. 주기적으로 연락하는 사람을 세어보아도 2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지금의 상태에 아쉬움은 없지만 한때는 외톨이나 사회 낙오자가 된 듯한 감정을 소유했다. 매일 연락하고 주말마다 사람을 만나느라 바쁘고, 관계의 상태를 증명해야 하는 결혼식에는 수십에서 백여 명의 지인들이 참석하는 이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다. 결혼을 정확히 말하자면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부를 하객이 얼마 없다는 것이었다.

 

항상 내가 먼저 연락을 해야 했고, 메시지 발송이나 통화 버튼을 누르지 않게 되었을 때 그들과의 관계가 끝맺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인연은 한 번이라도 먼저 연락을 해준 사람들이다. 외톨이로서 그런 이들은 절대 잊지 않고 1년에 한 번이라도 안부 인사를 건넨다.

 

기억이 있는 순간부터 성격은 트리플 A형, 초특급 소심남이었다. 남들 앞에서 말을 펼쳐 놓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아니 두려웠다. 추측건대 그 이유로 부모님께서는 유치원이 아닌 웅변학원에 보내셨고, 당연하게도 교육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나이라는 것을 먹어가면서 어쩔 수 없는 환경에 놓이면서 조금은 달라긴 했지만, 본성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던가. 무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던가. 그런 계기가 몇 번 있었다.

 

중학교 시절 조별 과제가 유행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개별 결과물보다 퀄리티가 좋진 않았던 것 같은데, 변화하는 교육 과정의 희생양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모인 조원은 대략 4~5명 정도였다. 평소에 같이 농구하는 등 비교적 친한 녀석들이었기에 마음은 편했다. 조별 과제를 위해서는 협업을 위한 작업실이 필요했다. 우리는 각자의 집에서 번갈아 가며 과제를 수행하기로 했다.

 

학교 수업이 끝난 후 과제를 위해 모인다. 우리집은 부모님 모두 맞벌이를 하시느라 늦게 들어오셔서 친구들에게 식사를 챙겨주기가 어려웠다. 군것질거리도 없어서 내놓을 음식이 마땅치 않았는데, 당시에는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다음에는 다른 친구 집에서 과제를 이어갔다. 어쩌다 보니 다음번 친구들 모두 아파트였고, 집에는 어머니가 계셨으며, 간식으로는 우리 집에서는 보기 힘든 고구마 맛탕 등 직접 만드신 음식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때는 “집에서 이런 것도 만들어 먹는구나…”라며 마음속에서 혼잣말을 되뇌었지, 별다른 감정은 느끼지 못했다.

 

과제는 끝이 났고 학교생활에 별다른 변화는 없는듯했지만, 조원 중 한 명이 각자의 집에서의 상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누구 집은 아무것도 없는데 누구 집은 뭘 주더라~”부터 집안 환경까지. 우리 집은 당연히 부정적인 의견이 주를 이루었고 배척하는 분위기에 나는 자연스레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다. 혼자만의 학교생활에 빠르게 적응하며 조용하게 지냈다. 그러니까 왕따를 당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정작 그 발언을 한 녀석 집에는 가지도 않았는데, 무슨 기준으로 험담했는지 말이다. 인상은 조금 강했지만 나보다 키도 몸집도 작아서 싸우면 내가 이길 수 있었겠지만 그런 성격이었다면 왕따 시키지는 않았겠지. 시간이 지난 후 다른 아이들은 남 탓을 하며 어쩔 수 없이 너를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며, 영혼 없는 사과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난 이미 그들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고, 혼자만의 생활이 좋았다.

 

고구마 맛탕을 해준 친구의 아파트는 아직 존재한다. 그곳에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아파트는 여전히 위용을 자랑하지만, 흘러간 시간만큼 과거에 화려함을 느낄 수는 없다. 부산의 멸칭인 ‘노인과 바다’의 노인을 담당하는 듯 늙어가고 있다. 가끔 지나가는 길에 볼 때면 희미해져 가는 왕따의 기억이 되살아나지만, PTSD가 있지는 않다. 당시의 상황이 웃길 뿐이다. 그 전과 이후에도 이런저런 일로 스스로, 또는 자연스레 무리에서 나오게 된 여러 에피소드 중 하나일 뿐이다.

 

의문이었다. 나는 그들과 무엇이 달랐나? 인성적으로 문제가 있나? 함께 만큼 재미없거나 얻어갈 것이 없어서인가? 가끔 스스로 답을 찾고자 하루 종일, 밤새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당연히 찾지 못했다. 차라리 인간이 못돼먹었다면 고치는 노력이라도 할 텐데. 아니면 ‘너의 문제는 이거야! 그래서 넌 안돼!’ 라며 다그치던가. 그런 관심조차 주는 게 아까웠을까?

 

지금은 관계 오류의 문제를 나에게서 찾지 않는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붙잡지도 않는다. 함께해도 좋고, 혼자라면 더 행복하다는 것 알게 된 후로 관계에 연연해하지 않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을 다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불필요한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행위에 소중한 시간과 체력을 투자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깨닫고 안도 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구나.

 

글 쓰기는 이런 성향에 잘 맞는 일이었다. 매주 에세에 드라이브에서, 매일 혼자만의 공간에서 경험과 생각을 남기며 사유한다. 소유보다 사유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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