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되면 약속도 하지 않은 채 학교 운동장으로 간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는 유일했던 오리지널 소가죽 윌슨 글러브와 나무 배트를 들고. 운동장이 한눈에 보이는 교문을 지나면 저 멀리 한쪽 구석에서 친한 친구, 얼굴만 아는 친구, 모르는 친구들이 나름의 구색을 갖추고 야구를 하고 있다. 팀당 7명 이상 갖춰지면 팀을 짜고 본격적인 경기에 돌입한다.
시작 전 우리 나름 규칙을 정한다. 초등학생 아니 국민학생이었던 우리는 어른들의 세계로 치면 사회인 야구, 취미 야구를 하는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3스트라이크 아웃, 4볼 규정으로 경기하면 4볼로만 수십 점이 날수 있어 보통 볼넷이 아니라 볼 일곱 혹은 열 개로 정한다. 물론 대부분 안타보다는 4볼 아니 10볼로 1루로 나가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당시 현역이었던 메이저리그 레전드 칼 립켄 주니어에 뒤지지 않았다. 나도 가끔 안타를 치기도 했지만 대부분 파울이 많았는데, 배트에 공을 맞히는 것 자체만으로 재미있었다. 배트를 통해 손으로 전해지는 짜릿한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대부분 인원수가 맞지 않았는데, 나는 특이하게도 한 팀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두 팀의 포수 역할을 했다. 이유를 생각해 보면 당시 유일하게 포수 글러브가 있었기 때문인듯하다. 아버지께서 나와 동생을 위해 나름 한 놈은 투수, 한 놈은 포수를 하라고 사주신 게 아닌가 추측해 본다. 포수는 동네 야구에서 가장 많은 플레이를 할 수 있는 포지션이기도 했다. 공을 가장 자주 만질 수 있는 포지션이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포수가 재미있었다. 공을 받는 행위가 좋았다. 어찌 보면 나의 성격이나 성질에도 잘 맞는 포지션이었던 것 같다.
사회생활,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리더가 있고, 그를 보좌하는 역할도 있다. 자신 있는 분야라면 리더도 마다하지 않지만 대부분 앞에 나서기 보다 뒤에서 도와주는 역할이 적성에도 맞고 잘 해내기도 했다.
그렇게 야구를 보는 것도, 직접 플레이하는 것도 좋아해서 가장 오랫동안 관심을 주는 스포츠가 되었다. 처음 중계를 보기 시작한 게 1992년이다. 당시 롯데 자이언츠는 정규 시즌 3위로 마감 후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여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1992년에는 두 명의 젊은 청년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한 명은 서태지, 한 명은 염태지라 불리던 염종석 투수다. 하지만 그 후 롯데는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다. 국내 프로야구 구단 중 최장기간이다. (또르르)
2009년 10월 부산을 떠나 타지 생활을 시작했다. 분당의 회사였는데, 당시 면접에서의 질문 하나가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 면접 막바지에 갑자기…
“근데.. 롯데는 맨날 왜 그래요?”
“???”
부산 사람은 전부 야구를 좋아하는 줄 알고 한 질문 같은데, 맞다 나는 야구를 좋아했다. 하지만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말문이 막혀 대답하지 못했다. 2000년대 초반 4년 연속 꼴찌에 ‘비밀번호 888577’이라는 별명이 있긴 했지만 그해에는 나름 괜찮은 성적이었기에 “작년에는 3위 올해는 4위인데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소심했던 그 시절의 나는 아무말을 하지 못 했다.
면접에서 나올 이슈인지는 아직도 아리송하지만 입사 후 그와 함꼐 일을 하면서 당시의 질문을 이해했다. 본인 나름대로 분위기 전환을 위해 여러 이야기를 하는데 매번 혼자 이야기하고 혼자 웃는 사람이었다. 진심으로 웃었다. 처음에는 맞춰 주기 위해 같이 웃었으나 편해졌을 때는 일부러 무표정으로 일관하니 괜한 타박을 주기도 했지만 이미 타격감은 1도 없는 상태였다.
야구를 좋아한 기간 만큼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다. 그만큼 내 일상에서 때어낼 수 없는 건가 보다. 국제 대회의 부진한 성적으로. 인기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초반에 반짝 한 롯데와 29년 만의 엘지 트윈스의 우승으로 많은 관심을 받은 2023년. 내년에는 더 큰 흥행이 기대되지마 결국 롯데가 우승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같은 날, 같은 시간 ‘대한민국 월드컵 결승전 vs 롯데 자이언츠 한국시리즈 7차전’이라면 여전히 후자를 선택할 나를 위해 부디 내년에는 잘 해주길 바랄 뿐이지만 왠지 미국의 자이언츠[1] 경기를 더 많이 볼 것 같다.
[1] 이번에 바람의 손자(이종범) 이정후 선수가 메이저리그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입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