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해운대 바다가 보고 싶었다.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한강으로 나가 자전거를 타거나 걷기도 했지만 넓디넓은 한강은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 비할 수 없었다.
새벽 산책 삼아 나왔지만, 어느새 선유도까지 가버린 발걸음을 다시 집으로 돌려 짐을 챙기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서울역은 오늘따라 한적했다. 다행히 20분 후 출발하는 부산행 KTX가 있었고 처음으로 앱이 아닌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하고 바로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다 나의 KTX 여행 루틴 하나가 생각나 던킨으로 달려갔다. 베이글과 달달한 도넛 하나, 청보도봉봉을 받아 들고 기차에 오른다. 조금 전까지! 산책하던 한강을 건너며 떠오르는 해를 마주한다. 일단은 피곤하니까 눈을 붙이자.
꿀잠 잔 거 같은데 이제 겨우 대전, 휴대전화를 열어 친구들 단톡방과 몇 안 되는 지인에게 문자를 보낸다.
‘마지막으로 해운대 언제 가봤니?’
단순한 안부 인사로는 잔잔한 일요일 아침에 호기심을 이끌어 낼 수 없을 듯하여, 5초 정도 고민한 문구였다. 경상북도에 진입할 즈음 메시지가 왔다. 의외의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얼굴 본 지 10년도 넘었고, 최근에는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로 서로의 생존를 확인하던 사이였다.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부산을 떠나오기 전까지 좋아했던 아이였기에.
부산역에 도착 후 지하철을 탄다. 집에 가지는 않을 생각으로 나온 당일치기 여행이지만 약간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일부러 3호선을 거쳐 집 근처 지하철역을 지나친다. 우리 동네지만 여전히 역명은 어색하다. 지하철역이 생기기 전까지 이 동네에 ‘물만골’이라는 지명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으니까.
부산 지하철을 타면 이어폰에 몸을 맡기지 않는다. 일부러 부산 사람들의 사투리를 듣기 위해 귀의 방향을 옮긴다. 잊고 있었던 억양과 단어를 따라 하다 보면 금세 해운대에 도착.
저 멀리 파란 바다부터 보이기 시작해서 하얀 백사장이 눈 안에 가득 담긴다. 그래 이 풍경을 보고 싶었어.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보고 싶었어.
멍하니 바라보는 시선 너머에는 파랑과 파랑만이 존재한다. 애써 떠오르는 상념을 뿌리치며 파도의 움직임에 눈과 귀를 향한다. 이 순간만큼은 근심·걱정과 지기, 질투는 존재하지 않는다. 끝없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은 세상과 단절하고 나를 찾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보고 싶었어 바다야.’
30분쯤 흘렀을까? 나를 향한 발소리가 들린다. 모른 척하려 했으니 이미 돌아간 고개의 끝에는 그 아이가 서 있었다. 반가우면서도 의아한 표정을 짓는 내게 맥주 한 캔을 건넸다.
오랜만에 보는 우리 사이에 반가운 악담이 오가고 안주 없이 대낮부터 맥주를 마신다.
“왜 갑자기 해운대에 왔어? 언제 올라가? 힘든 일 있어?
대답할 새도 없이 질문 세례를 퍼붙지만 나는
“‘그냥, 바다가 보고 싶어서 (너도)”
짧은 한마디만 건냈다.
그 아이의 얼굴을 마주하고 나니 바다만큼 그 아이도 보고 싶었구나. 나도 몰랐던 감정이 피어오른다. 이제는 사랑도 우정도 아닌, 모든 것이 좋았던 시절을 함께 한 사람으로서의 감정이었다. 동지애인가?
지나간 시간만큼 편해진 마음으로 광안대교 너머로 해가 질 즈음까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다가올 날의 일상을 공유했다. 오랜만에 솔직한 대화를 나눈 이 시간, 내일 당장 기억에서 사라지더라도 행복했던 감정만은 남아있길 바랐다.
“10년 만에 만났으니 10년 후에 또 보면 되겠네.”
과연 다시 볼 수 있을까? 지금처럼 서로의 SNS에 ‘좋아요’를 새기는 것만으로 본인의 존재함과 상대에 대한 관심을 증명해도 괜찮다.
홀로 떠나는 여행에서 진정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표면상의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향하는 그곳에서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얻기 위함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떠난 당일치기 해운대행도 벌써 몇 년이 흘렀고, 어제 올린 사진에도 그 아이는 좋아요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