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솔직해서 잔인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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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썼다. 당시 쓰기의 목적은 ‘그냥’이었고, 그날의 생각, 일상, 어디선가 보고 들은 것들을 짧게 써 내려갔다.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몸에서 반응이 올 정도로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일주일 등 쓰기의 빈도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지난 7월 4일 이후 쓰지 못하고 있다.
부케가 여라개인 듯 다양한 공간에서 매일 쓰고 있고, 네이버 블로그는 나름의 컨셉과 마음가짐을 설정해 놓고 있었다. 그곳에서의 나는 쓰지 않는 사람이다. 한참 글쓰기 근육을 키워나가는 기간에는 단단해 짐을 체감했지만, 지금은 손님 하나 드나들지 않는 카페마냥 빈 의자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이제는 ‘그냥’ 쓰기보다는 의미와 독자를 생각해야할 필요가 느껴진다. 그냥 써왔지만 잘 쓰고 싶고 누군가가 읽어주고 싶은 욕망이 나도 모르가 자라고 있던게 아닐까? 하지만 쓰기보다는 고민만 하다가 근육 키우기는 커녕 빼빼로가 되어버렸다.

올해 초부터 탁구를 시작했다. 하루 20분, 주 2회 개인지도를 받으며 기술과 자세를 익히고 반복하면서 재미와 성장하는 나를 지켜보았다. 어르신 회원분이 많은 탁구장이라 개인지도 후 그들과 함께 하다 보면 자세는 어설플지라도 엄청난 실력에 놀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나도 얼른 실력을 키워서 대등한 승부를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2개월까지는 먼지 날리듯 탁구장의 문지방을 넘나들었다. 만성적인 허리 통증이 다시 찾아 오기 전까지는.
치료 후 몇 주 쉬고 다시 찾은 탁구장은 이전만큼의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다른 운동과 탁구를 병행하며 은근히 다져진 허벅지는 다시 물컹물컹 푸딩이 되었다. 짧은 개인지도 20분 동안 쏟아 지는 땀을 이제는 흘리지도 않는다. 여름의 높은 온도와 습도 덕분에 출, 퇴근과 산책만 해도 비슷한 양의 땀을 흘리지만 그 농도는 분명 다르다.

여전히 탁구장 한쪽에는 나의 탁구화가 쓸쓸히 기다리고 있겠지, 흥미를 잃은 주인과 함께 할 날을 기다리면서

잠깐의 재미로 다져진 탁구와 글쓰기 근육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미루다 미루다 2023년의 절반을 넘겨버렸고, 그들이 빈자리는 다른 것으로 채우지 못하고 멍~한 상태로 이 무더운 여름을 지나고 있다.

‘8월에 다시 시작할까? 아냐 아직 더우니 가을을 기다리자.’ 또 미룬다. 뼈에 살덩어리만 붙어 출렁거리지는 않을지 걱정되지만 지금은 괜찮으니까.

이제는 재미, 의미보다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 운동과 글쓰기는 필요하다. 잘 늙기 위해선 빼빼로나 푸딩보다는 단단한 초콜릿 복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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