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냉장고에 가득한 따뜻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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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불완전하고 비독립적인 자취 생활을 한 지 4950여 일이 되었다. 항상 계획적이지만 무계획으로 사는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타지에서 혼자 살게 될 거로 생각지 않았다. 5000일이 되는 날에는 파티를 해야겠어.

불완전과 비독립이라는 단어를 내새운 건 여전히, 오롯이 혼자 자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성적, 정량적인 도움이 필수는 아니지만 일상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의지하고 있으니까.

예전에 1. 언젠가 진정한 독립을 이룰 것이라고 다짐했으나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의지하기로 한다. 그렇게 의지한 것이 얼마 전에 도착했다.

항상 다정한 말투로 (결혼 이야기할 때 빼고…이제 그만!) 전화 주시는 엄마가 만들어 주신 반찬이 비어있던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 한가득 담긴 반찬은 꽤 무겁다. 택배 보내시느라 우체국까지 운반하신 아버지께도 감사드린다.

예전에 2. 이런 부모님의 수고로움이 죄송해서 한동안 이런 도움을 받지 않고 거부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해 보았다. 앞으로 부모님께서 만들어 주시고 보내주신 반찬을 몇 번이나 더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은 내가 부탁드리곤 한다. 당신들께서도 자식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면서 느끼실 보람과 사랑을 내가 막을 이유는 없으니까.

이번에는 무려 6종 이상의 반찬이 가득 담겨있다. 모두 꺼내놓고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을 올린다.
‘사랑’
단 두 자만 첨부한 채로. 더 이상의 말은 사족에 불과하고 그 어떤 말로도 대신할 수 없겠지. 있다면 ‘LOVE’ 정도?

비닐에 담긴 반찬을 반찬통에 옮겨 담으면서 하나씩 집어 먹는다. 몇 시간 전에 식사한 상태라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옮겨 담는 도중, 이 반찬들과 밥을 먹고 싶어 쌀을 씻고 밥통에게 일을 시킨다.

그렇게 담은 반찬통이 비어있던 냉장고를 채우기 시작한다. 당장 먹을 용으로 적게 담은 통은 위로, 나중에 먹을 통은 아래로 나름의 체계를 갖춰 구분한다.

부모님의 정정이 담긴 반찬에 나의 정상을 더해 냉장고가 풍성하고 따뜻해졌다. 마지막으로 냉장고가 열심히 일해서 오랫동안 맛있음을 유지해 주길 바랄 뿐이다. 냉장고 밥을 주기 위해 따뜻한 집밥을 먹고 열심히 적당히 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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