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없는 삶
일요일 저녁, 시원하게 이발하고, 걸어오느라 땀에 젖은 옷가지를 세탁기에 돌려놓고, 샤워를 하며 3일 만에 면도를 깔끔하게 했다. 약간의 물기는 에어컨 바람에 흩어지며 채온을 가져가 시원함을 느끼게 했다. 의자에 앉아 유튜브를 열고 화면을 이리저리 살펴보다 닫는다. 문득 그러 생각이 들어 서말이다.
난 기준이 있는 삶인가?
생각해 보면 정량적인 기준이라는 건 내 삶에 없었다. 100점을 목표로 공부한 적도 없고, 1년에 n,000만 원을 모으겠다는 다짐을 한 적도 없다. 세심함과 노력을 쏟아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도 이번에는 몇 명에게 좋아요를 받고 싶다는 생각 하지도 않았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목적을 기반으로 수치화된 목표를 세우는 게 어떻게 보면 현대 사회에서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다. 명확한 수치의 기준을 향해 달려 나가는 것이,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난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했다. 막연히 책을 내고 싶다는 소망은 있지만, 마감은 없다. 사진을 잘 찍고 싶고, 많은 이들에게 가 닿고 싶지만, 공모전에 출품하거나 진지하고 깊은 크리틱을 받아 본 적도 지금까지는 없었다. 일에서도 마찬가지, 몇 년 안에 어떤 직급을 달고, 얼마의 연봉을 받고 싶다는 욕망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왜 그런 걸까? 잘 모르겠다. 그런 수치화된 목표와 기준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차갑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그 과정에서는 따뜻함이라는 것이 없다. 돈을 예로 들면, 벌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타인의 인격은 터부시되고,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오묘하게 줄타기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불법을 저지르는 모습도 쉽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달성한 목표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한다. 이런 행위 자체가 순진한 일일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을 쓰든 간에 목표한 바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다. 그게 지금의 사회인건 틀린 말은 아니다. 덕분에 약육강식의 사회 분위기는 더 강해지고 있다. 법적인 규정이 없을 뿐 계급 간의 격차와 벽은 더 공고하고 높아지고 있다.
함께, together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지금의 세상을 마든건 각자의 개인플레이가 뛰어나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이룬 것이 오로지 스스로의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없다. 앞으로는 더 심해질 것이다.
숫자로 매겨지는 성과, 분명히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관계 속의 소통, 실패, 재도전의 지점을 마냥 지나간 일로 치부하지 않았으면 한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니까.
급격히 변하는 세상 속에 어찌어찌 적응을 해 나가고는 있지만, 결과를 만들어내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에서의 괴리감은 크게 느껴진다. 여전히 나만의 속도로 느긋하고, 두리뭉실한 방식으로 나아가겠지만, 언제까지 통할지는 모르겠다. 모르니 이대로 내 방식대로 가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