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원 — 어떤 섬세함, 그리고 창작자의 여정
북콘서트 · 댄스 복스 · 2023.12.07
이석원, 어떤 섬세함
마스크를 쓴 채로 시작한 이야기.
30년간 창작자로 살아온 한 사람의 여정과 실패, 그리고 다시 쓰고 싶어진 순간에 대하여.
보시기에 좀 그래도 쓰고서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으면
강연은 양해의 말로 시작한다. 이석원은 마스크를 쓴 채 등장했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다. 23년간 음악을 하면서 눈동자의 위치까지 지적받았고, 외모 콤플렉스가 깊다. 코로나 이전부터 마스크를 썼다. 편해졌다. 그래서 선택했다 — 마스크를 벗고 위축된 상태로 이야기하는 것이 예의인가, 아니면 쓰고서 편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걸음해주신 분들에 대한 보답인가.
올해로 창작 생활 30년. 글 쓰고 음악하고 이런저런 일을 했다. 대부분 스스로 기획하고 프로듀싱했다. 어느 순간 벽을 느꼈다. 누군가가 "너는 지금 어디쯤에 있으니 다음 책은 이렇게 가야 돼"라고 지시해주는 환경에서 작업하고 싶었다. 이번 8번째 책 「어떤 섬세함」은 위즈덤하우스의 두 편집자가 1년간 함께 만들어준 결과물이다. 처음으로 초고에 대해 "이건 아닌 것 같다, 이걸로 가는 게 좋겠다"는 구체적 의견을 들었다.
사람의 죽음 앞에 온 가족이 철학자가 되는구나
15년간 8권의 책을 내면서 단 한 번도 아버지에게 감사의 말을 쓴 적이 없다. 솔직히 감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 86세인 아버지는 6·25를 두 눈으로 목격한 세대. 가부장제에 충실하게 복무하던 가장이었다가, 15년 전 퇴임 이후 바뀐 세월에 적응하지 못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으셨다. 갑자기 의식이 온전하지 않으시니 연명 치료 여부를 본인이 선택할 수 없는 상황. 60년을 함께 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사람의 죽음 앞에 온 가족이 철학자가 되는구나.
— 이석원의 어머니83세 어머니는 정반대의 사람이다. 지금도 대학에 다니신다. 세상에 대한 관심, 앎에 대한 욕구, 맛있는 것을 먹는 기쁨까지 — 삶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분. 그 욕망이 어린 이석원에게 투영됐다. 새벽까지 다락방에서 공부시키고, 교사용 학습지를 구해 문제를 풀게 하고, 쓰러져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응급실에 실려간 뒤에도 퇴원 길에 문제집을 손에 쥐어주신 분이다.
어머니, 아이를 더 이렇게 공부시키시면 아이 죽습니다. 그만 시키셔야 됩니다. 놀게 하셔야 합니다.
— 서울대병원 의사, 이석원의 어머니에게아이러니하게도 그 강압이 평생을 먹고 살게 하는 기질을 만들었다. 뭔가를 배우는 것, 배우러 어디에 가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졌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 자기만의 방식을 찾게 됐다. 레퍼런스 없이, 정규 교육 없이, 직관으로.
나는 작품이 아니라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소위 정상적인 코스로 살아온 사람이 아니다. 고등학교도 겨우 갔다. 담임이 "서원이는 고등학교 못 갑니다"라고 했을 정도. 연합고사 이틀 전에 기출문제의 정답 분포를 분석해서 확실한 것만 쓰고 나머지는 통계적으로 찍었더니 커트라인을 넘겼다.
24살 때 데모 테이프를 들고 기획사를 찾아갔다. 두 가지 말을 들었다. "얼굴 반반한 여자한테 곡을 써주는 건 어떻겠냐." 그리고 "네 곡에 왜 C(후렴구)가 없지?" C가 뭔지도 몰랐다. 손 가는 대로 만든 음악에 후렴이 없었다.
그때 어린 석원이는 "그게 내 음악이야"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정상성에 대한 굉장한 갈구가 있었기 때문에.
히트곡을 내는 공장 같은 음악을 만들어도 좋으니 히트곡을 내고 싶었다. 앨범적인 평가는 받았지만 개별 곡이 히트하지는 않았다. 좋은 무기를 갖고 있다는 걸 모른 채 정상성을 갈구하며 세월이 흘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를 믿어보는 경험
우연히 인사동에서 와인바를 하게 됐다. 친구들이 말렸다. "커피 서빙 한 번 해본 적 없는 놈이 요식업을?" 전문 컨설턴트를 만났는데, 며칠간 직접 인사동을 돌아다니며 파악한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밤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전문가들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인생의 답이 내 안이 아니라 세상 어딘가에 있는데, 내가 그걸 못 찾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전문가한테 맡겨야 하는데, 이 사람들이 전문적이지 않아.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태어나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믿어보게 됐다. 가게 인테리어를 직접 구상하고, 오픈한 뒤에도 밤마다 계속 뜯어고쳤다. 친구가 말했다 — "주인이 편해야 손님이 편한 거야. 네가 불안해하면서 고치고 있으면 손님이 편할 수가 없어." 그럴듯한 말이었지만, 결국 자기 방식대로 밀고 갔다. 가게는 잘 됐다.
그것이 자기를 믿고 남이 뭐라 하든 밀어붙인 첫 경험이었다. 가게를 접고 바로 같은 방식으로 다섯 번째 앨범 「가장 보통의 존재」를 만들었다. 이듬해 첫 에세이집 「대한 보통의 존재」도 같은 방법으로. 나만의 방식으로 돌파하면 된다 —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이기는 법을 잊어버렸다
처음 두 권이 잘 되니 자신감이 충만했다. 소설을 쓰겠다고 했다. 마케팅팀이 말렸다. "작가님, 소설은 안 팔려요." "됐다, 나는 내가 하면 되는 놈이니까." 소설을 한 편도 읽지 않은 사람이 장편소 설에 4년을 매달렸다. 턱관절 장애까지 생겼다. 결과는 실패. 독자들이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거기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으면 좋았는데, 지는 게 싫어서 바로 다음 도전. 이번에는 성공. "역시 나는 되는 놈이구나." 그 다음 — 또 실패. 또 실패. 책도 안 되고 음악도 안 되고.
경험이라는 것은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이기는 경험을 자꾸 하면 이기는 법을 알게 된다. 잘 되는 사람은 계속 잘 되는 경향이 있다. 나도 그 수혜자였다. 그런데 한 번 안 되기 시작하니까 — 이기는 법을 내가 까먹은 거다.
「보통의 존재」를 어떻게 썼었는지 생각이 안 났다. 내가 썼는데. 실패하면 조급해져서 바로 다음 작업에 매달렸다. 충전하고 도전하는 게 아니라, 빨리 상황을 뒤집으려는 조급함. 아주 긴 슬럼프의 시간이 이어졌다.
큰 것으로 역전하려 하지 말고, 작은 것부터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건 우연이었다. 마음산책 출판사에서 강연 섭외가 왔다. 글 쓰기가 너무 싫어서 재활용 원고를 줬다가 "재미없다"고 까였다. 코로나 핑계로 계속 미루다가, 어느 날 앞서 강연한 임경선 작가의 모습을 객석에서 봤다.
맨 구석 자리에서 그분이 강연을 시작하는 모습을 봤는데, 무대와 마이크를 보니까 찌르르르르 뭔가가 오는 거예요. 무대가 싫어서 음악을 그만뒀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뭐에 씌었는지.
작정하고 기획안을 썼더니 "재밌다"는 답이 왔다. 2016년 이후 처음으로 듣는 긍정적인 말. 작지만 이기는 경험. 그 뒤 배달의민족에서 500자짜리 짧은 원고 의뢰가 왔다. 한 번 이긴 마음으로 쓰니까 "역시 글이 괜찮다"는 반응. 작은 알갱이가 쌓이기 시작했다.
앨범이든 책이든 큰 단위로 한방에 뒤집으려는 조급함이 문제였다. 작은 것에서부터 긍정적 피드백을 얻고, 그 경험으로 조금 더 큰 일로 나아가는 지혜 — 그것이 30년째 창작 생활을 해온 사람이 얻은 두 번째 교훈이었다.
나 자신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타인을 이해하는 데로 이어진다. 유기동물 봉사에서 자기에게 불친절한 사람이 묵묵히 가장 지저분한 일을 도맡아 하는 것을 보았다. 예전 같았으면 "저놈은 나를 안 반겨"로 끝냈을 것을. 나이를 먹으면서 그 사람 자체를 보게 된다.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타인에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살기 위해서다. 잣대로 사람을 보면 미운 사람, 꼴 보기 싫은 사람이 많아질 뿐이다.
아버지가 추석 때 온 가족의 판을 엎는 멘트를 하셨다. 어머니가 한 달 넘게 속상해하셨다. 이석원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 "엄마, 아버지를 아버지를 위해서 이해하라는 게 아니라, 아버지는 저런 사람이야라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엄마 수명이 단축된다." 어머니는 지금까지도 그 말이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고 하신다.
책은 작가가 반을 쓰고, 나머지 반은 독자가 쓴다
이번 책을 손에 쥐었을 때 — 제 눈에는 한없이 모자라지만, 다음에는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고, 써보고 싶은 욕망이 되게 오랜만에 들었다. 작가에게 글은 용량제다. 블로그와 SNS에 휘발성으로 소모하지 않고 책을 위해 아끼기로 했다. 비밀 글도 안 쓴다 — 그 체력이 있으면 책에 넣을 글을 쓰겠다.
꿈이 없다는 말은 맨날 했지만 사실은 꿈이 있다. 신뢰받는 창작자가 되는 것. "이석원이 신작을 냈네, 그럼 사야지" — 그런 말 한마디가 너무 소중하다.
어렸을 때부터 일기를 썼다. 하지만 자물쇠를 채우는 대신, 잘 쓴 날은 일기장을 책상에 펼쳐놓고 학교에 갔다. 남이 봐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무대에 서고, 글을 쓰고, 책을 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청중 한 분이 말했다 — "자신을 충분히 들여다본 사람이 연륜이 쌓여 타인을 들여다보면서, 내 삶이 풍족해지는 경계선을 잘 지킨 분이다." 이석원이 답했다.
책이라는 것은 작가가 반을 쓰고 나머지 반은 독자가 쓰는 거다. 제가 반을 써서 세상에 던져놓으면, 그 책이 독자 각각에게 가서 각기 다 다른 책이 됩니다.
퇴고라는 삶의 방식
이 북콘서트는 82분 동안 한 사람의 인생을 날것 그대로 펼쳐 보인다. 녹취록의 거친 호흡 — 문장이 끊기고, 말이 돌아가고, 갑자기 아버지 이야기에서 어머니 이야기로 건너가는 — 그 자체가 이석원이라는 사람의 질감이다. 그리고 그 질감 안에 창작자의 삶에 대한 가장 솔직한 고백이 들어 있다.
이 강연의 핵심 키워드는 '퇴고'다. 이석원은 와인바 인테리어를 밤마다 뜯어고쳤고, 첫 책 「보통의 존재」를 15년째 고치고 있으며, 강연 원고에 지문("주먹 감자를 올려 보이며")까지 적는 사람이다. 친구는 "주인이 편해야 손님이 편하다"고 말렸지만, 그 충고를 무시하고 고쳐서 성공했다. 그에게 퇴고는 글쓰기 기법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경험은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는 발견이다. 이기는 경험이 쌓이면 이기는 법을 알게 되고, 지는 경험이 쌓이면 이기는 법을 잊는다. 그리고 긴 패배의 터널에서 빠져나온 방법이 대단한 역전이 아니라 500자짜리 짧은 원고였다는 것. "재밌다"는 한마디, "글이 괜찮다"는 한마디 — 그 작은 알갱이들이 쌓여서 다시 쓰고 싶은 욕망을 되살렸다. 이것은 모든 창작자에게, 아니 무언가가 잘 되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유효한 통찰이다.
그리고 마스크. 23년간 무대에 서면서 외모 지적을 받아온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나와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그 마스크 뒤에서 나오는 말들이 이토록 벌거벗은 것이라는 역설. 가장 많이 가린 사람이 가장 많이 드러낸다 — 이것이 어쩌면 '어떤 섬세함'이라는 제목이 말하고자 하는 바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