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 —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한 시대
인류세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한 시대
인간이 지구를 바꾸는 지질학적 힘이 된 시대.
우리에게는 이 변화된 세계를 이해할 새로운 서사가 필요하다.
부정할 수 없는 변화
2022년 여름, 112년 만의 폭우가 강남을 덮쳤다. 100년에 한 번 오는 비가 왔으니 다음은 또 100년 후일까. 그렇지 않다. 이상기후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지고, 간격은 좁아지고 있다. 영국에서 40도가 넘는 폭염이 기록되고, 예측 불가능한 기상 현상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매년 기후 변화에 관련된 보고서를 내고 있으며, 이것이 가장 공인된 전문가들이 작성한 보고서로서 기후 논의의 기반이 된다. 그 보고서가 말하는 사실은 분명하다 — 기후 변화는 실재하며, 인간이 그 원인이다.
1850년부터 2020년까지의 기온 변화를 보면, 자연적인 요인만으로는 온도 변화가 크지 않다. 그러나 인간 요인을 반영하면 기온이 급격히 상승한다. 기후 변화가 확실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인간의 활동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과학적 합의에 이른 사실이다.
기후변화 부인론자들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기후라는 건 원래 계속 변하는 것"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설령 변한다 해도 인간 탓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데이터가 보여주는 현실은 명확하다. 1850년 이전에는 기온 변동이 0.5도 안팎이었지만, 이후 평균 기온은 이미 1도를 넘어섰고, 파리 기후협약에서 목표로 삼은 1.5도 상한선조차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인류세 — 인간이 지질학적 힘이 된 시대
인간의 활동이 전 지구적 자연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증거가 쌓이면서,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인간이 지구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에 들어섰다는 주장이다.
이 용어를 널리 알린 것은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으로, 2000년에 이 개념을 제시하면서 학계의 뜨거운 키워드가 되었다. 사실 1980년대에 유진 스토머가 이미 비슷한 개념을 제안했지만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언제 했느냐가 중요한 법이다 — 노벨상 수상자가, 위기의 실감이 커져가는 2000년에 말했기에 비로소 반향을 일으켰다.
인류세를 "인류가 주인공이 된 시대"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인류세의 본래 의미는 인간이 지구 시스템을 되돌릴 수 없이 손상시킨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경고에 가깝다. 인간의 승리가 아니라, 인간의 책임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공식 명칭은 홀로세(Holocene)로, 약 1만 2천 년 전에 시작된 간빙기다. 홀로세의 특징은 안정된 기후 —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예측할 수 있었기에 농경이 가능해졌고,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다. 기후 조건이라는 자연사적 토대 위에서 인간의 역사가 전개되어 온 것이다.
최근에는 자연사와 인간사를 분리해서 연구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둘을 엮어서 보는 연구가 늘고 있다. 중국의 대규모 민중 반란들이 가뭄이나 자연재해와 맞물려 발생한 사례처럼, 기후 변화가 정치적·사회적 변화로 이어진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인류세는 언제 시작되었는가
초기 농경 시대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면서 숲을 불태우고 탄소 배출이 늘어났다. 이때부터 이미 자연환경의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주장.
산업혁명과 화석연료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땅속의 화석연료에 대규모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문명은 폭발적으로 발전했지만, 동시에 어마어마한 양의 탄소가 대기 중에 배출되기 시작했다.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주장.
방사능이 새긴 인간의 흔적
지질학자들의 보수적 입장. 지층에서 이전에 없었던 인간의 흔적—방사능 물질—이 발견된 시점을 인류세의 시작으로 본다.
티핑 포인트 — 되돌릴 수 없는 지점
2019년, 과학자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지구 기후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 기후 시스템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지는 임계점이다.
아직 우리는 티핑 포인트를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이 지점을 넘어가면 변화는 예측 가능한 속도로 일어나지 않는다. 여러 요인이 상호작용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된다.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 검은 땅이 드러나고, 드러난 땅은 태양열을 더 많이 흡수해서 더 빨리 녹는다. 10년에 4.84미터씩이 아니라,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과 여섯 번째 대멸종 사이. 메타버스 같은 기술 혁신이 새 시대를 열 것이라 기대했지만, 실상은 우리가 인류 존속의 갈림길 위에 서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위기의 심각성에 비해 인류의 대응은 놀라울 만큼 편안하다. 파리 기후협약의 합의는 난항을 겪고, 겨우 합의해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그레타 툰베리 같은 이들이 절박하게 호소하지만, 공감보다는 비난이 따라붙는 경우가 많다.
왜 우리는 머리로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할까?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진심으로 믿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에 머무른다. 강연자는 이를 "인식의 장애"라고 부른다. 인류세의 위기는 시간적·공간적으로 인간의 인지 범위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수백 년에 걸쳐 축적된 결과이고, 전 세계에서 조금씩 일어나고 있기에, 당장 눈앞에서 보이는 것과 실제 일어나고 있는 것 사이에 인지 부조화가 발생한다.
왜 문학이, 왜 이야기가 필요한가
영문학 연구자가 왜 기후변화를 말하는가. 과학적 연구도 중요하지만, 인류세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 이것이 핵심이다. 이야기는 세상을 이해하는 수단이자 자원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 이해한다.
울고 있는 아이 옆에 망가진 인형이 있으면, 우리는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스토리를 만든다. 그리고 그 스토리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는다 — "이 아이를 위로해야겠구나." 이처럼 이야기는 상황을 이해하고, 거기에 대처하는 기반이 된다.
자연은 배경이고 장애물. 위대한 인간 주인공이 자연의 힘을 제압하고 승리한다. 인간 중심적 세계관 — 성경에서 아담에게 모든 피조물의 이름을 짓게 한 것처럼,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자원이다.
인간이 주인공인 이야기는 실패했다. 더 이상 그 서사로는 변화된 세계를 이해하고 대처할 수 없다. 인간이 아닌 것들과 얽히고,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과학의 언어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예외 가능성이 있으면 "반드시 그렇다"고 절대 말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위기의 심각성이 오히려 잘 전달되지 않는다. 딱딱한 데이터와 모델링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 일종의 번역이 필요한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직접 접촉으로 공동체를 느낄 수 있는 범위는 약 150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수천만 명을 같은 "한국인"이라고 느끼며 살아간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허구를 만들고 믿는 능력, 즉 이야기하는 능력이다. 인류세는 이 상상력을 더 확장해서, 인류 전체를 하나의 종이라는 공동체로 상상할 것을 요구한다. 처음으로 인류 전체가 함께 멸망할 수 있는 운명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세 편의 영화로 읽는 인류세
강연자는 세 편의 영화 — 《투모로우》, 《설국열차》, 《인터스텔라》 — 를 통해 인류세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를 분석한다. 모두 기후 위기에 처한 인류의 대응을 다루지만, 그 관점과 결론은 전혀 다르다.
투모로우 The Day After Tomorrow
2004 · Roland Emmerich기상 과학자가 기후 재앙을 예측하지만 무시당하고, 결국 빙하기가 닥친다. 전형적인 재난 영화의 구조이지만, 주목할 점이 있다.
"지구 온난화인데 왜 빙하기가 오느냐"는 질문 — 핵심은 이상기후다. 기온이 오르고 내리는 것이 아니라 기후 시스템의 균형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다. 바닷물의 흐름이 컨베이어 벨트처럼 열을 분배하는데, 빙하가 녹아 민물이 섞이면 이 흐름이 교란되면서 예측 불가능한 이상기후가 발생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역할은 재난을 경고하는 것까지다. 그 이후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들을 찾으러 가는 것뿐. 무력감을 강화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현실적인 묘사라고 강연자는 말한다. "인간이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이며, 바로 그 오만이 우리를 이 지경까지 끌고 온 것이다.
설국열차 Snowpiercer
2013 · Bong Joon-ho지구 온난화를 해결하겠다며 대기에 CW-7이라는 물질을 살포하지만, 그 결과 지구가 꽁꽁 얼어붙는다 — 지구공학의 예측 불가능한 부작용을 정확히 보여주는 설정이다.
기차 안의 체제는 현재 소비 자본주의 시스템의 축소판이다. 수족관도 있고, 식물 재배 시설도 있고,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 윌포드는 "기차는 영원하다"고 말하며 완벽하게 통제한다. 기차 안의 반란자들도 기차 앞쪽으로 가는 것만 생각하지, 기차 밖으로 나가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나 남궁민수는 다르다. "저건 벽이 아니라 문이야. 나는 저 문을 열고 싶다." 그는 기차가 1년에 한 번 지나갈 때마다 눈이 조금씩 녹고 있음을 관찰해왔다. 결말에서 열차 밖으로 나온 두 아이가 북극곰과 마주하는 장면 — 그것은 인간이 혼자 군림하는 세계가 아닌, 다른 존재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세계의 시작이다.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 · Christopher Nolan기후 재앙으로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 인터스텔라는 투모로우나 설국열차와 달리 기술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우리는 농부가 아니라 탐험가, 개척자의 후손이야." 쿠퍼의 대사에서 드러나듯, 이 영화는 미국 프런티어 정신의 우주적 확장이다. 성조기가 우주복에 크게 박혀 있고, 인간 능력에 대한 낙관적 믿음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그러나 강연자는 이 개척자 정신의 이면을 지적한다. 미국의 서부 개척은 땅의 지력이 다하면 버리고 새 땅으로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대륙은 넓고 땅은 얼마든지 있다"는 사고가 결국 소비 자본주의의 근간이 되었으며, 지구의 자원이 고갈되면 버리고 새 행성으로 가면 된다는 발상 자체가 바로 그 연장선이다.
지구공학 — 기술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지구공학(Geoengineering)은 과학기술을 이용해 기후 시스템을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시도다. IPCC 보고서에서도 최근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위기의 진행 속도가 생각보다 너무 빠르고 정치적 합의는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기술은 두 가지다. 태양 복사 관리 기술은 대기에 입자를 뿌려 태양열 흡수를 줄이는 것이고, 이산화탄소 제거 기술은 대기 중 탄소를 잡아 지하에 저장하는 것이다. 장점은 높은 경제성이지만, 단점은 어떤 부수적 효과를 일으킬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구를 통째로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으니, 그냥 해보는 수밖에 없다.
지구공학의 진짜 문제는 기술적 한계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를 준다는 것이다. 탄소를 잡아서 묻을 수 있다면, 탄소 배출을 줄일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런 사고는 위기에 대한 책임감을 소멸시킨다. 실제로 탄소 포집 기술에는 거대 정유 회사들이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강연자는 기술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일부 문제는 기술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관점에서 기술을 바라보느냐가 관건이다. "기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니 나는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의존과, "현실을 직시하면서 기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것"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쉽다.—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
우리는 설국열차의 승객들처럼 이 체제 안의 삶에 길들여져 있다. 기차 밖은 전멸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기차 안조차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 부품이 하나씩 고갈되듯이. 안정적으로 보이는 현재의 체제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벽이 아닌 문을 찾는 상상이 시작된다.
트러블과 함께하기
인류세의 메시지는 결국 이것이다 — 지금까지 자연과 맺어온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더 이상 인간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서사는 유효하지 않다.
도나 해러웨이의 저서 《Staying with the Trouble》은 한국어로 "트러블과 함께하기"로 번역되었다. 이 제목이 핵심을 담고 있다. 기후변화 문제에 속 시원하게 칼로 자르듯 해결해 줄 방법은 없다. 우리는 이 트러블을 계속 안고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 트러블을 새로운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면서, 그것과 공존하는 법을 모색해야 한다.
플라스틱 줄이기, 재활용 분리배출, 채식 위주 식단으로의 전환. 도나 해 포어의 《우리가 날씨다》가 말하듯, 축산업의 탄소 배출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행동은 고기를 덜 먹는 것이다.
개인의 노력을 반환경적 정책 하나가 뒤덮어버릴 수 있다. 유권자로서, 소비자로서 압력을 넣는 것 — 친환경 정책을 지지하고, 반환경 기업의 제품을 외면하는 것이 구조적 변화를 만든다.
인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아닌 것들과 함께 엮이고
씌어지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