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PD — 더하고, 채우고, 반복하고
더하고, 채우고,
반복하고=
김태호라는 사람
무한도전부터 테오까지. 20년 넘게 예능을 만들어온 사람이
회사를 나와 처음으로 말하는 것들. 겸손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더 바쁜데, 더 행복해요
MBC를 나올 때는 좀 편하게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매주 콘텐츠 하나씩 만들던 생활에서 벗어나, 주말도 여유 있게 보내는 삶. 후배들에게도 그런 삶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나와보니 누가 시키지 않는데 주말까지 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몸은 좀 더 바쁜데요, 마음은 너무 행복해서. 표정 많이 바뀌었다는 얘기 듣고 있습니다.
김태호제작사 이름이 '태오(TEO)'인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후배들을 직원으로 채용하려면 법인 통장이 필요했고, 급하게 만들다 보니 이름을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바꿔야지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고, 그렇게 간 거다. 회사에서의 직함도 대표가 아니다. "3번 회의실에 주로 있는 김태호 PD"가 그의 타이틀이다.
"안 되는 콘텐츠"를 하는 사람
서울체크인도, 지구마불 세계여행도, 그 전에 MBC에서 했던 포털도 — 공통점은 하면 안 된다고 했던 아이템들이었다. 회사든 주변이든, 누군가가 안 된다고 한 것. "왜 안 되지?"가 그에게는 항상 큰 화두였다.
안 해봤잖아, 그거. 근데 왜 안 될까.
김태호서울체크인의 기획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효리가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호텔 대신 지인 집에 묵고, 7년 만에 본 서울을 낯설어하는 모습이 재밌었다. MBC에 제안했지만 못하게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계속 품고 있었던 화두 중 하나가 이거였다 — 못하는 거지, 안 되는 게 아니다. 어떤 플랫폼에 가서 어떻게 꼽히느냐에 따라 콘텐츠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포커스그룹 인터뷰(FGI)를 직접 돌렸다. 20대에서 40대까지 50명을 모아서, 사전 정보 없이 보게 하고 피드백을 받았다. 결과는 명확했다 — 타깃층이 아주 분명한 콘텐츠. 그래서 티빙을 선택했다. 외주 제작사 주제에 플랫폼을 고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콘텐츠의 성격이 플랫폼을 결정했다.
그릇 같은 콘텐츠
테오가 지금까지 만든 콘텐츠 대부분은 '그릇'이다. 누가 여기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요리 이름이 바뀌는 형태. 체크인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 효리가 캐나다에 가면 '캐나다 체크인'이 되고, 누군가가 방콕에 가면 '방콕 체크인'이 된다.
뾰족하게 나만 할 수 있는 콘텐츠를 하면, 나밖에 못하잖아요. 저희 후배들도 연출이 될 때 앞에 타이틀을 붙이는 시스템이 필요했거든요.
김태호이건 제작사를 만들었기 때문에 생긴 변화다. MBC에서는 개인의 뾰족함으로 승부했다면, 테오에서는 후배들이 채울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었다. 경력이 어린 후배들도 '체크인'이라는 브랜드 아래서 연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가 만든 1~2년은 그런 시스템을 설계하는 시간이었다.
테오의 CI에서 '='는 더하고, 의미를 규정하고, 무한히 반복·확장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회사 정신이 뭐냐는 질문이 제일 힘들다고 했다. 정해놓지 않는 것. 그것이 답이다.
완벽하지 않은 순간이 매력이다
김태호 PD는 스스로를 내성적이라고 말한다. 어렵게 본 사람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눈도 안 보고 "괜히 하세요"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바리스타 자격증도 사실은 사회화를 위해 딴 거다 — 커피라도 내리면 사람을 만날 구실이 생기니까.
사람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순간은 결국 완벽하지 않은 순간이 딱 보일 때예요. 사진 찍을 때 배에 힘 주고 있다가, 끝나니까 갑자기 배에 힘을 풀잖아요. 그때의 모습이 훨씬 더 인간적으로 매력적인 것 같아서.
김태호카메라 앞에서 경계하는 시간을 일부러 보내고, 진짜 모습이 담길 때부터 내용을 내는 것. 익숙함이 오히려 좋았다고 했다. 무한도전 멤버들과 10년 넘게 함께하면서, "이 사람의 매력을 내가 아는데 시청자는 아직 모르는 것"을 발견하고 유도해서 보여주는 것 — 그게 그의 방식이었다.
채용도 같은 맥락이다. 테오 신입 PD 공채에 1천 명이 지원했을 때, 능력이 월등한 사람보다는 같이 있으면서 서로 편한 사람을 찾았다. 가족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니까, 가치관과 성향이 비슷한 사람. 댄스가수 유랑단 촬영 중 김완선이 "오시는 분들마다 다 성향이 비슷하다"고 한 말이, 그에게는 좋은 칭찬이었다.
18층 계단을 걸어 올라가던 밤
무한도전 시절, 방송 5분 전 1분 전에 테이프를 넘기고 집에 가면 항상 방송 중이었다. 18층이었는데, 일부러 계단으로 올라갔다. 각 층의 문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TV 소리를 들으면서.
TV 소리에 섞인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18층으로 올라갔던 기억이 나거든요.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제일 좋은 건 결국 그 피드백, 반응이에요. 우리만 만들고 우리만 볼 콘텐츠면 웨딩 비디오랑 뭐가 다르니.
김태호반응이 안 좋을 것 같으면 주말 내내 스마트폰을 안 보면 된다. 월요일에 정제된 반응을 보면서 뭐가 부족했는지 배우면 된다. 그런 컨트롤은 이제 좀 생겼다고 한다. 다만 항상 의심은 한다 — 오늘 회의 마무리가 잘 됐는지, 새벽에, 아침에. 매일 6시 10분에 일어나 7시까지 혼자 있는 시간에 어제 놓쳤던 것들을 정리한다.
답이 안 나와도 괜찮다
새벽까지 회의해도 답이 안 나올 때가 있다. 그때 후배들에게 하는 말 — "오늘 답이 안 나왔다고 너무 낙심하지 말자. 이 콘텐츠는 언젠가 좋게 마무리가 될 거니까."
거짓말하지 말자
이번 주 에피소드가 재미있는지 없는지는 PD가 제일 잘 안다. 예고에 "지상 최대" "역대 최고" 같은 말 쓰지 말자. 부끄럽잖아. "웃음기 가득" 정도만.
라이프 오브 파이의 망망대해
퇴사 직후, 밤에 잠을 쉽게 못 들었다. 20년간 쌓은 경력을 전부 놓고 나온 것이다. MBC에서 했던 것을 다시 쓸 수도 없다. 후배에게 옛날 파일을 보내달라고 했더니 "회사 기밀이라 외부 유출이 안 됩니다"라는 답이 돌아왔을 때, 아 — 나와 나는 다르구나, 실감했다.
퇴사했을 때는 진짜 라이프 오브 파이 주인공처럼,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나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을 문득문득 했던 것 같아요.
김태호누군가가 예능 제작사의 한계를 수치로 설명하며 인수를 제안했다. "예능은 드라마에 비해 사이즈도 작고, 노동 집약적이고, 효율성이 너무 떨어진다." 그 자리에서 그 말에 동의해버린 자신이 부끄러웠다. 일주일 뒤 돌아가서 거절했다. "진짜 제가 한번 1년 동안 해볼게요."
그 결정이 지금까지 살면서 한 결정 중 가장 잘한 것 중 하나라고 말한다. 예능 제작사의 한계를 스스로 정해놓으려던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테오가 1년도 안 되어 기업가치 1000억 원을 인정받고, 300억 원에 청담동 신사옥 부지를 매입하고, 지드래곤과 함께 MBC에 복귀하기까지 — 그 모든 건 거절 이후의 일이다.
그는 자신을 마중물이라고 표현했다. 후배들에게 기회가 돌아오는 날이 오면, 지금의 바쁨과 여유 없음은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고. 테오의 콘텐츠에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다. 대중에게 선보이고, 재미있으면 칭찬받고, 재미없으면 혼나고. 그게 배움이다.
시청자거든요.
제작사도 플랫폼도 다
흥하고 망하게 할 수 있는 건.
2023.04.24 — 폴인 디 엣지 토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