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 당신은 이미 한 편의 소설이다
당신은 이미
한 편의 소설이다
선택, 이야기, 그리고 우리 안에서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프로그램에 대하여
때려치기 전문가
김영하는 ROTC를 그만뒀다. 경영학과를 다니다가 작가가 됐다. 국립대학 교수직을 2년 반 만에 내려놨다. 그의 인생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면, 그것은 성공이 아니라 이탈이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학군단. 장교 임관. 모든 것이 정해진 순서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친구도, 시스템도. 그러나 정확히 그 지점에서 그는 멈췄다.
살아갈 날 나랑 어울리지 않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이 너무 커 보였어요. 그래서 안 해. 그렇게 얘기를 했던 거예요.
— 김영하, 학군단 탈퇴를 결심하며아버지가 동아리방까지 찾아왔다. 마지막 소원이라고 했다. 임관만 해라. 그 다음은 네 마음대로 살아라. 간곡했다. 그러나 스물셋의 김영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부모님의 마지막 소원은 계속될 것이다. 임관하면 취직, 취직하면 결혼. 끝이 없을 것이다.
그는 간파했다. 그리고 거절했다.
대학원에 진학했다. 군 입대를 늦추기 위해서였지만, 그 2년 반이 그의 삶을 바꿨다. PC 통신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주변에 없던 글 쓰는 사람들을 처음으로 만났다. 그들이 말했다. 너 글 좀 잘 쓰는 것 같은데, 또 써봐. 그래서 계속 썼고, 잡지에 실리기 시작했고, 오래지 않아 등단했다.
연세대 경영학과 4.5년 → 동 대학원 2.5년 → PC통신 집필 시작 → 1995 등단 → 1996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문학동네 작가상 → 2004 한예종 교수 → 2006 교수직 사임 → 전업 작가
대학원을 가지 않았다면? 학군단 장교로 임관해서 제대하고, 며칠 뒤 대기업에 출근하고, 기업연수원에서 극기훈련을 받고, 술을 마시고, 뇌가 알코올에 저려지면서 그냥 살았을 것이다. 그의 표현이다. 그냥 살았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길은 대체로
잘못된 길이었다
작가가 된 뒤에도 패턴은 반복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됐다. 국립대학. 안정된 직업. 작가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코스. 모두가 좋다고 했다.
그리고 2년 반 만에 그만뒀다.
교수로 정년을 맞고, 동료 교수들과 늙어가고, 연금 받고 살아가는 삶을 생각하자 — 그게 제 인생의 스토리에는 없는 디테일이었어요.
— 김영하, 교수직 사임의 이유동료 교수가 말렸다. 나가면 건강보험 어떻게 할 거냐고. 대출도 잘 나오고, 아파트 살 때 좋다고. 그 말을 듣고 확신했다. 탈출해야 한다.
어머니는 가장 실망한 사람이었다. 아들이 작가인 것은 한 번도 자랑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수가 된 아들은 좋아했다. 엄마 친구 아들이 현대 다니는데, 콘도도 보내주고, 부모한테 혜택이 많다더라. 작가한테는 그런 게 없잖아요. 그런데 국립대 교수라면 — 드디어 자랑할 수 있는 아들이 된 것이다.
2년 반 만에 그 아들이 또 때려쳤다.
김영하는 이렇게 정리한다. 자연스러워 보이는 길을 갈 때마다, 대체로 잘못된 길이었다고.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길. 경영학과, 학군단, 교수직. 전부 자연스러웠지만, 자신과는 맞지 않았다.
우리가 편안하게 살고 있었던 이 삶,
엄마도 좋아하고 아빠도 좋아하는 이 삶이
문득 무가치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달과 6펜스,
그리고 나도 모르는 나의 프로그램
중학교 2학년. 소풍 전날. 아이들은 다 집에 갔는데, 김영하는 도서실에 혼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국어 선생님이 왔다. 도수 높은 안경을 쓴, 키가 큰 선생님. 책 읽는구나. 이거 읽어봐. 서머셋 모음의 《달과 6펜스》를 건네주었다.
그날 거의 다 읽었다. 증권 중개인 스트릭랜드가 어느 날 모든 것을 때려치고 타히티로 떠나 그림을 그리는 이야기. 재미있었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다른 소설들이 덮어쓰기를 했으니까.
작가가 되고 한참 뒤, 인터뷰에서 누군가 물었다. 어떤 책이 영향을 끼쳤나요. 그 순간 벼락처럼 기억이 떠올랐다.
아, 그게 그래서 내가 경영학과를 다니다가 때려쳤구나. 때려치는 전문가가 됐구나.
— 김영하, 뒤늦은 발굴그는 스트릭랜드의 이야기를 내면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증권 중개인으로 살다가 예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인물. 그 서사가 위화감 없이 자신의 선택에 투영되고 있었다. 하던 일을 그만두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모험이 아니라 본능이었다.
안나 카레니나는 귀족의 안정된 삶을 살다가 각성했다. 엠마 보바리도, 조지 오웰의 윈스턴 스미스도. 소설은 반복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한다 — 평온한 삶은 죽은 삶이며, 진짜 삶은 그 바깥에 있다고. 소설가들이 그렇게 느껴지게 만든다. 김영하의 표현대로, 소설 조심하셔야 돼요.
읽기와 쓰기의 결합
김영하에게 인생이란 소설을 쓰는 과정이다. 단, 미래를 써나가는 것만이 아니다. 과거를 계속 고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과거를 동영상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스냅샷들로 기억한다. 수많은 디테일 중에서 지금의 나에게 맞는 것만 편집해서 넣는다. 작가가 되면 작가의 삶에 영향을 준 디테일을 편입시키고, 영화 감독이 되면 영화에 관한 에피소드를 발굴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이야기를 써나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과거를 계속 고치는 것이다.
김영하가 성공한 작가가 됐기 때문에, ROTC를 그만둔 일은 통과의례가 됐다. 교수직을 내려놓은 일은 용기 있는 선택이 됐다. 하지만 만약 실패했다면? 같은 디테일이 후회의 서사로 편집됐을 것이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핵심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떤 이야기를 따라가며 살고 있다. 넷플릭스를 재미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새 그 관점으로 인생을 보고 움직이게 된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은 실은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 보고 안다고 믿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안다고 믿는 것이다.
조폭을 만나본 적 없지만 아는 것 같다. 비행기가 납치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것 같다. 연애 상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부 이야기에서 가져온 것이다. 우리는 이야기라는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
시련은 주인공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다
Q&A에서 누군가 물었다. 선택을 후회해본 적 없는가.
김영하의 답. 후회한다는 것은 자기 인생이라는 소설이 나쁜 결론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이것은 주인공들이 초반에 겪는 시련이야. 여러분이 지금 겪고 있는 것들은 주인공의 성장을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되는 것이다.
아내는 맨날 정신 승리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진지하다. 스파이더맨도 한 시간 이상 시련을 겪는다. 할리우드 대중영화조차 그렇다. 고통 없는 주인공이 어디 있는가.
그래서 그는 긴 호흡의 이야기를 볼 것을 권한다. 숏폼이 아니라. 긴 이야기를 보면, 시련이 해결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기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믿게 된다.
인생이 100페이지라면, 당신은 25페이지쯤 왔다. 아직 초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