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파리의, 다양한 시대로, 다양한 빙식으로 펼쳐냈다"
미술관 제공 전시 정보
《파리 보이지 않는 파리 Paris Unseen》 전은 관광지로 소비된 파리의 익숙한 이미지 너머에서, 동시대 도시의 또 다른 층위를 드러내고자 한다. 오랫동안 낭만과 예술의 도시로 이상화되어 온 파리는 다양한 시각적 재현을 통해 그 이미지가 강화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 실제 경험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하며, 이는 이른바 ‘파리 신드롬’—파리에 대한 과도하게 이상화된 이미지와 실제 경험 사이의 괴리로 인해 일부 여행자가 겪는 심리적·신체적 반응—에서 드러나듯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충돌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균열에서 출발해, 우리가 도시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다시 사유하고자 한다.
수 세기에 걸쳐 시간과 기억이 축적된 도시 파리는 세계인의 상상력 속에서 특별한 위상을 차지해 왔다. 동시에 이 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새로운 사유와 창조적 가능성을 생성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사진의 역사 역시 이러한 도시의 변화와 긴밀히 맞물려 있다. 19세기 초 사진의 발명 이후, 사진은 도시의 풍경과 삶을 기록하는 새로운 시각 언어로 자리 잡았으며, 약 2세기에 걸쳐 기술과 감각의 변화 속에서 그 표현 방식과 역할을 확장해 왔다.
이번 전시는 관광 도시로서의 파리를 넘어, ‘그랑 파리(Grand Paris)’라는 확장된 도시의 맥락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삶의 양식과 변화의 풍경을 조망한다. 사진, 영상, 설치, 사운드를 통해 드러나는 이 도시는 과거의 흔적과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나란히 놓이고 때로는 맞닿으며 고유한 긴장과 리듬을 만들어낸다.
전시에는 서울에서 제작된 디지털 프린트와 작가의 빈티지 프린트가 함께 소개된다. 이는 사진이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물질적 객체로 존재하는 매체임을 드러낸다. 헬리오그래피(heliography),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 시아노타입(cyanotype), 은염 인화(gelatin silver print) 등 전통적 인화 기법은 오늘날에도 작가들의 실험 속에서 지속되며, 빛과 화학, 물질의 흔적이 결합된 사진의 촉각적 차원을 드러낸다. 일부 작품은 에디션 없는 단일 작업으로 제시되어, 사진이 고유한 예술 작품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환기한다. 한편,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생성의 발전은 사진에 또 다른 전환을 가져오며, 오늘날 사진은 전통적 물질성과 동시대 기술 환경이 공존하는 매체로 이해될 수 있다.
전시에는 세 명의 한국 작가를 포함한 53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서로 다른 시선과 방식으로 도시의 시간과 일상을 탐구하는 이들의 작업은, 하나의 도시를 둘러싼 복합적인 해석이 공존하는 장을 펼쳐 보인다. 우리는 익숙한 풍경 너머에 숨겨진 또 다른 파리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경험이 교차하는 도시, 곧 ‘보이지 않는 파리’이다.
나아가 이 전시는 파리라는 타자적 시선을 통해 서울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초고속 성장과 도시 확장, 중심과 주변의 차이 속에서 형성된 서울은 ‘그랑 파리’와 구조적 조건을 공유하며, 두 도시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맞닿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전시는 파리에 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서울을 비추는 또 하나의 시선으로 읽힐 수 있다. 관람객은 이 전시를 통해 하나의 도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선들이 교차하는 장 속에서 자신의 시각을 다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퐁피두 센터 사진부장을 역임한 알랭 사약(Alain Sayag)의 협력으로 기획되었다. 그는 사진을 기록 매체에서 동시대 예술의 핵심 언어로 전환시킨 인물이다. 그는 사진의 수집·전시 방식을 재구성하며, 사진이 예술로 존재하는 조건 자체를 새롭게 정의했다. 이러한 관점은 본 전시에서 도시와 이미지의 관계를 사유하는 하나의 이론적 기반으로 작용한다. 이번 전시에 함께해 준 알랭 사약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이수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