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바람따라 사는걸 바람

essay drive
작성자
디노
작성일
2026-01-26 11:19
조회
7
다들 어떤 삶을, 일상을 살고 싶을까? 안정적인 환경에서 사는 방식이 있을 테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다양한 풍경과 경험으로 조금은 스펙타클하게 사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30년 아니 40년의 기간 동안 이런 면에서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20대 초반에는 막연히 서울에 살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다. 돌아보니 막연히는 아니었다. 큰물에서 놀고 싶었고, 부산에 비해 다양한 문화생활이 가능한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부산 인구의 3배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없어, 얼마나 혼잡한지는 상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서울이라는 메가시티가 주는 혜택은 충분히 즐기고 있다. 관심 있는 분야와 좋아하는 게 많은 나로선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작은 영화관이 많아 다양한 예술영화를 즐길 수 있고, 사람은 많지만 1년 내내 좋은 전시가 시내 곳곳에서 열린다. 사람이 많다 보니 여러 모임에 참여할 수 있고, 그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뮤지션의 콘서트다. 특히 해외 뮤지션. 극히 일부(예를 들면 테일러 스위프트라던가)를 제외하면 아시아 투어에 서울이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문화 콘텐츠 소구력은 이미 월드클래스 레벨이다. 도쿄와 런던을 다녀오기 전까지는.

 

최근 3년 동안의 여행이 지난 40년 간의 여행보다 곱절은 많았다. 여행, 어디론가 떠난다는 일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아이폰 사진 앱에서 지도를 펼치면 부산, 서울이 대부분이다. 두 지역을 제외하면 다른 고장의 방문은 10회도 채 되지 않았으니, 나처럼 여행 경험이 없는 사람 찾기도 힘든 수준이었다. 과거의 연인 중 ‘여행~, 여행~’노래를 불러도 눈 하나 끔뻑하지 않았으니. 

4년 전 내 구역을, 말이 통하지 않는 지역으로 떠난 후 첫 여행만에 매력을 깨달았다. 동네 음식점, 카페에 가기 위해 지나치는 흔한 동네 골목에서도 행복을 느꼈다. 그 행복은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다른 차원의 무언가였다. 

 

다양한 품목이 꽉 들어찬 편의점, 관심은 있었지만,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패션 브랜드의 직영 매장, 개성을 한껏 드러낸 사람들의 옷차림 등 비슷하지만 다른 세상의 이야기에 눈과 귀가 열렸다. 지갑도 함께 열려버려, 작년에는 인천공항을 4번이나 방문하게 된다. 사이사이 탐험하듯 시골 마을도 다니고.

 

여행을 좋아하고 많이 하는 줄로 아는 사람이 있다. 며칠 전에도 옆자리 과장님이 올해 여행 계획은 어떻게 되냐고 물으셨다. 전반기의 계획을 말씀드리니, “혼자서도 뽈뽈뽈 잘 다니시네여?”라며, 삶은 달걀 하나를 주고 가셨다. 근육을 키워야 나이 들어서 누워만 있는 일이 발생하지 않지!? 라며 한입에 우물우물하고 넘겼다.

 

왜 인간은 꿈꾸는 걸까? 이루어질 수도 없는 꿈을 꾼다. 이루어질 수 없기에 상상이라도 하는 걸까? 때로 상상은 지겨운 고통 속의 유일한 탈출구가 되기도 한다. Maybe 직장인의 절반은 꿈이 바람처럼 이곳저곳 떠돌며 다니는 삶을 원하지 않을까? 

 

유튜브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검색한다. 그들은 고통스러운 행군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낸다.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장소만 다를 뿐. 

 

반대편 대륙의 끝에서 300km를 걷는 영상을 보면서, 그곳에 있는 나를 상상한다. 배낭의 크기와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하루에 몇km를 걷게 될까? 완주는 할 수 있을까? 목적지를 향해 앞만 보고 가진 않을까? 결국 남는 건 300km를 걸었다는 인증서가 전부이지 않을까? 그럼,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하며, 보던 영상을 닫고 피아노 연주곡을 재생시킨 후 눈을 감는다. 

 

영하 10도에다 세찬 바람이 부는 출근길, 몸을 움츠린 채 저항을 줄이며 나서는 이 몸이 무겁고 또 무겁게 느껴진다. 선택지가 많음에도, 단 한 가지 길밖에 없는 것처럼 오늘도 나아간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오늘과 차이가 없는 내일을 기다리면서.

 
전체 0

전체 122
번호 제목 작성일 추천
122
꿀만 빠는 사람이 제일 싫어요.
디노 | 2026.03.15 | 추천 0 | 조회 6
2026.03.15 0
121
취향이 실력인 시대, 랍니다.
디노 | 2026.03.08 | 추천 0 | 조회 6
2026.03.08 0
120
아직 나 정도면 양호하네.
디노 | 2026.02.16 | 추천 0 | 조회 6
2026.02.16 0
119
잊을 수 없는 흰쌀밥의 향기
디노 | 2026.02.09 | 추천 0 | 조회 6
2026.02.09 0
118
섞어서 주세요.
디노 | 2026.02.05 | 추천 1 | 조회 120
2026.02.05 1
117
저항을 이겨내는 것이 관건이다
디노 | 2026.01.27 | 추천 2 | 조회 119
2026.01.27 2
116
바람따라 사는걸 바람
디노 | 2026.01.26 | 추천 0 | 조회 7
2026.01.26 0
115
저기든 여기든 어디든
디노 | 2026.01.22 | 추천 0 | 조회 5
2026.01.22 0
114
수십번의 시작이지만, 또 시작.
디노 | 2026.01.22 | 추천 0 | 조회 5
2026.01.22 0
113
동굴에서 빠져나오기.
디노 | 2026.01.19 | 추천 1 | 조회 120
2026.01.19 1
112
멀어지는 슬픔
디노 | 2026.01.18 | 추천 0 | 조회 114
2026.01.18 0
111
창밖은 겨울
디노 | 2026.01.11 | 추천 0 | 조회 112
2026.01.11 0
110
원팀
디노 | 2026.01.09 | 추천 0 | 조회 163
2026.01.09 0
109
친구 같은 친구 같지 않은 그들
디노 | 2025.12.26 | 추천 0 | 조회 158
2025.12.26 0
108
하고 싶은 건 많지만, 하나씩
디노 | 2025.12.20 | 추천 1 | 조회 181
2025.12.20 1
107
아직 다녀오지 않은 등산 이야기
디노 | 2025.12.19 | 추천 0 | 조회 114
2025.12.19 0
106
너무 잘 알아서 탈이야
디노 | 2025.12.14 | 추천 0 | 조회 166
2025.12.14 0
105
나를 드러내는 유일한 방식
디노 | 2025.12.06 | 추천 0 | 조회 148
2025.12.06 0
104
HOME
디노 | 2025.11.29 | 추천 0 | 조회 133
2025.11.29 0
103
오랜만이야 
디노 | 2025.11.22 | 추천 1 | 조회 205
2025.11.2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