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행 운은 5:5 정도로 볼 수 있다. 그 ‘운’에는 날씨, 컨디션, 방문지의 인사이트 등이 포함된다. 하노이의 가족여행은 내내 흐리거나 비가 왔다. 맑은 날에는 엄청난 풍경이 펼쳐진다는 하롱베이는 진득한 사골곰탕의 날씨를 보여줬다. 가을의 템플스테이는 환상적인 햇살과 함께 편안한 휴식을 취했고, 지난 추석의 도쿄 여행은 막바지 무릎이슈로 깔끔하지 못 한 마무리를 했다. 친구와 함께한 다대포 트래킹 역시 흐리고 추운 날씨라 멋진 부산 바다를 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작년의 마지막 여행으로 계획했으나 올해 첫 여행이 된 덕유산 1박 2일은 기대반 걱정반이었다. 매일 같이 일기예보를 보면서 너무 춥진 않을는지, 눈발 하나 날리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주말만을 기다렸다. 금요일 밤 느지막이 준비를 했다. 작은 백팩에는 먹을 것과 에어매트, 양말과 여분의 티셔츠를 꾸겨넣었고, 큰 크로스백에는 무려 카메라 2대와 작은 액션캠 그리고 보조 배터리 등을 챙겼다. 다음 출근길과 동일한 코스로 남부터미널에 내려 무주로 향했다.
토요일 오후의 무주는 흐리고 추웠다. 무주리조트에는 날씨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스키와 스노보드를 즐기고 있었다. 화려한 스키복 사이로 산에 가는 사람 티를 팍팍 낸 오늘의 착장으로 곤돌라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곤돌라 종착지의 덕유산은 말 그대로 곰탕이었다.
*곰탕은 구름이나 안개로 시야가 흐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상태로 등산가들 사이의 전문용어.
눈발은 계속 날리고 있어서 아름다운 덕유산의 풍경은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다만 바람이 많이 불어 힘들었지만 고어텍스 재킷 하나면 바람 따위.
덕유산 정상 향적봉에는 두 갈래로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정상봉 인증샷을 찍기 위함이다. 인기 좋은 산이라면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 대피소로 향했다. 불필요한 짐을 두고 잠깐의 산행을 즐기기 위해서다. 리조트로 향하는 하행 곤돌라의 막차는 오후 4시 30분이라서, 4시에 나오면 사람이 없어서 여유롭게, 앞마당처럼 정상을 즐길 수 있다. 시야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내일을 기약하며 대피소로 복귀했다.
저녁시간의 대피소는 신세계였다. 간단하게 먹기 캠핑용 전투 식량 2종과 사과 1알 만을 챙겨 왔지만, 다른 분들은 삼겹살도 굽고 말 그대로 진수정찬이었다. 산 정상에서도 먹는 재미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 존경스럽다. 여럿이서 온다면 고기, 쌈채소, 쌈장 등등을 챙겨 올 만한데, 같이 올 사람이 없다. 그래도 이 추운 곳에서 따뜻한 밥 한 끼와 사과로 입가심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식사를 마친 후 소등 전에 잠깐 산책을 했다. 흐린 날이라 별 하나 보이지 않았지만, 투명하게 남은 일몰의 빛으로 덕유산의 멋진 풍광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 부디 내일은 좋은 날씨로 이곳까지 보람이 있기를 기도하며 잠을 청했다.
다들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찍도 일어나셨다. 다행히 오늘은 날이 맑은 듯하다. 일출 맛집이라는 남자 화장실 앞에 빨간 일출의 노을이 조금씩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후다닥 아침 식사를 하고, 삼각대와 카메라를 챙겨 나왔다. 액션캠에는 일출을 타임랩스로 담고, 카메라로 주변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올 해의 첫 여행운은 최고다. 태어나서 손에 꼽을 멋진 일출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서 감탄이 나온다. 겉으로 표현을 잘하지 않는 나는 눈 담은 풍경을 가슴으로 새기며 감동에 벅차올랐다.
작년에 좋지 않았던 운이 오늘을 위한 것이었나? 신이 주신 축복과도 같은 풍경이었다. 올해는 착하게 살아야 할 것만 같았다. 귀가하기 위해 곤돌라 탑승장으로 가는 길임에도 쉽사리 발 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1초라도 눈에 담기 위해 얼어가는 손가락, 발가락을 꼼지락대며 참았다. 이런 풍경 다시 볼 수나 있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사실 금요일 밤에 짐을 싸면서도 갈까 말까 고민했었다. 역시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하는 게 맞나 보다.
서울행 버스를 탄 후 가족과 친구에게 사진을 보내줬다. 경상도 남자들 답게 ‘지기네’가 먼저 나왔다. 우리 동네에서는 매우 극찬이다.
나오길 잘했다. 추위와 낯선 곳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오길 잘했다. 살아있길 잘했다.
창밖은 너무나 추운 겨울이다. 겨울에도 다양한 사람과 풍경이 있는 이곳이 좋다. 이곳에 태어나서 감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