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션이었나? 홀로 화성에 남겨진 와트니는 살아남기 위해서 감자도 심고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사막에 묻혀있는 탐사선을 수리하면서 지구와 교신에 성공한다. 그리고 매일 광활한 지평선을 보기 위해 나가는 와트니는 이렇게 말한다.
“그냥 할 수 있는거니까. (just because I can)”
아무도 없는 사막 행성 화성에서 자신을 구조하기 위해 달려 오는 동료들을 기다려야 하는 와트니는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지평선을 바라보는 것 뿐이었다. 내일 아니 당장 몇 분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그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을 했다.
산책이 나에게는 그런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나는 이것 저것 심각하게 따지지 않아도 불행하거나 아쉬운 것이 하나도 없다. 미래를 생각하면 암울하고 답이 없지만 그건 그때의 내가 겪어야 하는 문제지.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아직 부족하지만 매일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 고개를 들면 아름다운 가을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마냥 이렇게 지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나이가 드니 나도 아프고 부모님도 가끔 아프시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 중에 긍정적인 소식은 하나 없는 요즘. 화성에서 와트니 처럼 매일 걸으면서 부정적인 사고와 암울한 현실을 내가 세운 판타지 세계 속에 집어넣고 희석시켰다. 그 판타지 세계는 아름답지는 않지만 모두가 불행하지는 않다.
부쩍 시원해진 요즘 어깨에 카메라를 메고 나간다. 매일 걷는 길이지만 계절의 전환점인 탓인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멋진 풍경이 있는 유명 관광지의 사진은 수천, 수만 장이 있지만 내가 매일 걷는 우리 동네 골목 사진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오래된 골목길과 주택, 담장 너머로 삐죽 인사하는 꽃과 나무를 뷰파인더로 눈 인사하고 슬쩍 담아간다. 오늘밖에 담을 수 없는 풍경이다.
운동 삼아 걷는다지만 생각하기 위해 거리로 나간다. 몸과 마음이 무거울 때 면 지독하게 걷는다. 이런 나의 산책을 도와준 거리가 떠오른다. 탄천, 한강, 중랑천, 안양천, 문득 중랑천이 그립다. 가장 오랜 시간 함께하기도 했고 많은 생각이 스쳐 간 곳이다. 지하철이 다니는 중량철교 밑에서 가끔은 소리도 지르고 노래도 불렀더랬지.
일요일 오후, 몸은 무겁지만 운동화를 신고 오늘의 세상을 마주한다. 오랜만에 단골 동네 서점에 들러 예약해둔 책도 수령하고 좋아하는 딸기에이드 한 잔 들고 집까지 걸어온다. 복잡한 사거리도 지나고 얕은 산을 오르기도 하고, 일부러 꼬불꼬불 골목길을 지나온다. 걷다 보니 함께 했던 산책 메이트들이 생각난다. 그들은 지금도 걷고 있을까?
추석 연휴에는 고향 동네를 걸어야지. 한 동네에 오랫동안 살다 보니 이전에 살았던 집들도 근처에 있다. 마당에 단풍나무가 있던 1층 집, 빨간 벽돌집, 어렸을 적 자주 넘어졌던 골목길을 오랜만에 걸어봐야겠다.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