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과의 첫 만남은 면접 자리에서였다. 3살 아래였지만 커다란 덩치와 성숙한 외모에 압도 당했다고 쓰고 졸았다고 읽는다. 적당히 본 면접 후 함께 일하기로 결정하고 며칠을 지켜본 결과 그는 생각보다 섬세하고 소심했다. 실수도 많았고.
그때의 나는 꼰대 중에서도 상꼰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벌 것 아닌 실수였는데, 회의에서의 대화(?)는 1~ 2시간은 기본이었으니까. 지금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 마인드 덕분에 꼰대력은 거의 사라지고 0.1/10 정도 남은 상태다.
어쨌든, 그렇게 많은 시간을 대화(?)에 쏟은 이유는 팀원 중에서도 그 녀석이 유난히 신경 쓰였던 것 같다. 그는 열심히 했고, 잘 하려는 의지가 내 눈에는 보였기 때문이다. 덩치에 비해 소심한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었고. 하지만 그런 대화 방법은 좋지 않아.
나는 퇴사를 했고 2년 정도가 지난 후 당시 같이 일했던 개발팀의 형과 만나기로 했다. 전화나 카톡으로 안부는 지속해서 묻고 답해 왔기에 최근에 운동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 녀석은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업무 능력도 향상되었고 운동을 하면서 탄탄해진 몸과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너무 보기 좋았다. 오늘은 내가 에너지를 받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느덧 팀 내에서 중심이 되었고, 잘 배우고 노력한 덕에 새로운 회사로 이직했고 그곳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했다. 나에게 배운 엑셀 기능 몇 개를 아직까지 잘 써먹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워낙 기초적인 것이기도 했고 알려준 게 기억도 나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배운 게 한 가지라도 있었다니 참으로 다행이고 뿌듯한 마음이었다. 안 그럼 그 시절 꼰짓 때문에 한 대 맞아도 할 말은 없었으니까.
지금의 나는 답답함과 지루함에 고통받지만 과거에 함께한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일상을 보낸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 때마다 큰 힘이 된다. 내가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나의 존재 이유다.
부쩍 선선해진 저녁, 동네 산책을 하며 애플 워치의 활동 앱을 열어본다. 이 녀석은 오늘도 나의 두 배가 넘는 칼로리를 소비하고 운동을 했다. ‘도대체 하루 종일 뭐 하는 거야?’라며 구시렁대다가 실외 달리기 모드를 켜고 땅을 박차고 뛰어 나아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