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큰 고민이나 계획 없이 부모님의 품을 떠나온 지 14년 차가 되었다. 미혼이고 동거 경험은 없으니 오롯이 혼자, 자취 생활이었다. 당연히 혼자 청소, 빨래, 조리, 설거지, 쓰레기 분리수거 및 처리 등 모든 일을 처리한다. 내가 지시하고, 실행하고, 관리 감독한다. 집안일에 있어서는 1인 기업과 같은 느낌으로 실행한다.
지금의 집안일은 생존이다.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그렇다고 싫지만은 않다. 자취 이전에도 손 놓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손, 장남이지만 시골에 가서도 할아버지의 지시에 설거지하거나 큰 고무 대야에 겨울 이불을 넣고 발로 밟으며 수제 이불 세탁을 하기도 했다. 꼭 한 마디를 덧붙이시면서.
“이런 것도 안 하면 어디 가서 밥 못 얻어 묵는데이.”
나와 동생이 떠난 집에서도 가끔 아버지가 부엌에 드나드신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내가 집안일에 거부감이 없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 부모님께 감사하다. 감사하게도 가끔 나를 위해 식사를 해주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부모님에 대한 감사를 가장 자주 깨닫게 되는 것도 집안일을 할 때다. 퇴근 후 피곤한 상태에서 굶은 배를 채우기 위해 쌀을 씻고, 반찬을 꺼내고, 계란 후라이를 하는 단순한 작업임에도 너무 힘들 때가 있다. 밥솥이 힘차게 증기를 뿜고 있는 틈을 이용해 청소기도 돌리고 식사 후에는 설거지와 다음 날을 위해 쌀을 씻어 놓는것 까지.
모든 작업을 완료하고 나면 녹초가 된다. 소파에 앉으면 뼈와 살이 분리된 듯 의자에 스며든다. 가끔 힘들고 귀찮아서 외식하고 들어오면 수십 년간 이 일을 해오신 엄마가 생각난다.
새벽같이 일어나 자식들 밥 먹이고 출근, 퇴근 후 반복. 그녀의 모든 일상이 자식새끼들을 위한 일이었다. 지저분한 내 방을 청소하시는 엄마에게 “내가 할꺼니까 그냥 냅둬” 라고 했던 말도 나름 엄마를 위함이었지만 내가 하지는 않았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자생해야 하는 나이지만, 감사함을 느끼고는 있지만, 그때와 지금의 나는 별반 다르지 않다. 감사함만 가지고 있을 뿐 표현에는 서툴다. 애써 밝은 목소리로 통화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게 많지 않다.
오늘도 방 청소를 하고 엄마가 보내주신 반찬으로 끼니를 때운다. 보고 있던 영상을 잠시 멈추고, 본가에 계신 부모님을, 하늘나라에 계신는 어르신들을 생각한다.
“감사해요. 덕분에 자취생활 온보딩이 어렵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