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노을과 따끈한 와플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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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분위기를 책장 구경으로 이겨내려 했던 그날 이후 어쩌다 우리 집에 그녀를 데리고 오게 되었다. 걱정이 었던건 지저분한 방도 방이지만 모든 끼니를 혼자 해결하다보니 누군가에게 대접할 만한 음식이라고는 냉동실에 있는 아이스크림과 얼려놓은 크루아상 생지 그리고 두 종류의 원두 뿐이었다.

그녀의 집에 방문한 후 시간이 흘렀고 이전과는 다른 감정이었기에 오히려 부담이 더 컷다. 잠깐의 방문임에도 불구하고, 같이 집에 오면서 이상한 물건이 없는지, 너무 지저분하지는 않은지를 생각하느라 머릿속은 복잡했다.

햇살은 따스하고 시원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좋은 날. 그냥 들어가기 아까워 지하철 한 정거장 전에 내려 안양천을 걷는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 가는 시간, 서쪽 하늘에는 노을빛으로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한낮에는 그저 밝은 세상이었다면 지금은 따뜻한 전구색으로 잠시나마 빌딩의 창문과 나뭇잎 사이로 눈이 부시게 쏟아져 내린다.

천변에는 걷는 사람, 뛰는 사람, 돗자리를 깔고 휴식을 취하거나 친구들과 배꼽이 떨어질 정도로 재미난 대화를 하는 사람 등 많은 이들이 주말 오후를 즐기고 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슬슬 배가 고파질 즈음 집으로 향한다. 시장에 잠깐 들러 상큼한 과일 한 바구니와 함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들인다. 나의 공간에 타인의 흔적이 남겨지는 것은 오랜만이다. 지저분하지만 쓰레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복작복작 가득하다 보니 좁은 집임에도 구경할 거리가 좀 있다.

한 쪽에는 책, 한쪽에는 엘피와 음악 시디로 가득한 공간은 나의 취향을 그대로 옮겨놓은 곳이다. 그녀의 집에서 내가 아는 책을 검색하든 그녀도 숨은그림찾기 하듯 이리저리 눈길을 옮기는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나도 그때 저랬을까?
오랜 시간 머물 수 있는 날이 아니라 잠깐이라도 대접하기 위해 내가 먹으려고 냉장실에 옮겨 놓았던 크루아상 생지를 내놓는다.. 그전에 커피를 내리기 위해 원두와 커피 장비를 꺼낸다.

두 잔의 커피를 내리기 위해 기존 보다 약 1.5배 많은 30그램 정도의 원두를 분쇄기에 갈아 커피를 내린다. 대충 내려도 맛있지만 그래도 평가를 받기 위해 나름 신경 써서 시간과 물의 양을 조절해서 내린다. 일단 향은 만족. 맛도 만족. 그녀도 이 정도면 맛있다고 한다. 사실 내가 만족해서 타인의 평가가 그리 신경 쓰이지 않는다. 물론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이럴 때는 남의 눈치를 살피지 않네.

이제 오늘의 메인 메뉴 크루아상을 구울 차례다. 얼마 전에 구입한 와플 기계는 엄마가 싸주신 떡과 생지를 구워 먹으며 오랜만에 돈 쓴 재미를 즐기고 있는 터였다. 잘 구워진 크로 와플과 커피의 조합은 다행히 잘 어울렸다. 그녀도 만족한 듯 다음에는 블루베리와 슈거파우더를 가져올 테니 더 맛있게 먹어보자고 한다.

그러고 보니 왜 나는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겨우 반찬 몇 개와 찌개 등 밥반찬만 만들 줄 아는 수준의 나에게 그런 베이 레이션을 주기에는 수련이 더 필요한가 싶다. 음식은 적당히 배만 채우면 되는 것이라는 인상이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따끈하게 구워진 빵과 커피 한 잔은 평범한 간식이지만 오늘 이 한 접시를 하기 위해 거쳐온 과정과 경험이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음을 마음속에 새긴다. 아니 그렇게 하기엔 소중한 날이었기에 오늘은 일기를 쓰자. 조금이라도 이 감정을 붙잡아 놓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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