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시계
눈을 떴는데 이상하게 몸이 개운하다. 햇살이 비치는 창문을 보니 아차 싶다. 얼른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7시. 도착해야 할 시간에 일어나다니. 재빠르게 샤워를 하고 집을 나선다. 늦은 시간의 출근은 스트레스라 이른 출근을 선호하는데, 역시나 지하철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하루의 시작부터 피곤하다. 회사 도착은 8시 30분. 그래도 출근자가 많이 없어서 출입기록을 보지 않는 한 나의 지각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지각 1번 추가는 허탈하지만.
3월 2일
조명
퇴근 후의 집은 깜깜하다. 혼자라는 사실은 좋았지만 어두운 집을 맞이하는 건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찾았던 것이 스마트 전구다. 집 근처에 다다르면 자동으로 켜져 집 안을 밝혀주며 나를 반긴다. 약간은 어두운 전구색이 좋았다. 편안하고 외롭지 않게 따뜻함을 전해주는 듯했다. 얼마 전에 좋아하던 스탠드가 부서져 눈여겨 봐온 스탠드를 구매했다. 유려한 디자인은 바라보기만 해도 피로를 녹여버리는 듯하다. 혼자만의 시간을 함께해 주는 빛이 좋다.
3월 3일
책
소지품 중에 책이 가장 많다. 완독한 것은 절반도 되지 않음에도 쌓여간다. 읽고 싶은 건 많지만 읽지 않는 아이러니는 몇 년째 계속된다. 며칠 전에는 2016년에 구매한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펼쳤다. 이렇게 좋은 글을 왜 지금까지 방치해 두었나 자책하며 책장을 검색한다. 지금 봐도 매력적인 제목과 목차가 나를 끌어당긴다. 머리 2개와 팔이 한 쌍씩 더 있는 괴물이 되어 한 번에 책을 두 권씩 읽고 싶다. 독서 괴물 말이다
3월 4일
충전기
집에는 멀티 충전기가 2개나 있다. 모두 강력한 고속 충전을 지원한다. 전자 기기에 충전해 주는 일을 좋아한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기기도 일부러 꺼내어 100%의 초록불이 켜지면 다시 전원을 끄고 서랍으로 넣는다. 배터리가 없어 연락도 못 하고 멋진 풍경을 담지 못한 일을 접한 후로 충전 중이 되었다. 디자인보다 더 빠른 충전 속도를 지원하는 기기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클릭하게 된다. 무선 충전기도 2개나 있어서 한 번에 워치, 폰에게 밥을 준다. 아차 출근길에 보던 E-Book 리더기가 22%였다 퇴근 전에 완충해야지!
3월 5일
창문
7년을 살았던 서울의 첫 집이 생각난다. 오래된 낡은 다세대 주택이었지만 넓은 방에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햇살이 한가득 방안을 채우게 하는 큰 창문이 좋았다. 창 너머에는 오래된 1층 주택이 있어 겨울에도 따뜻한 햇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지금 집에는 창을 열면 답답함만을 느끼게 하지만 가끔 열어두고 환기를 시키면 참 기분이 좋다. 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향긋한 커피 한잔할 수 있는 휴일은 가장 행복하고 감사한 순간이다.
3월 6일
베개
나의 상태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이 베개다. 게으르다면 그곳에 스며든 냄새와 색이 불쾌할 것이고 부지런했다면 세탁 세제 혹은 아무 냄새가 나지 않을 것이다. 하루를 마감하고 피곤한 몸을 의자에 던져놓고 쉰다. 너무 귀찮아 샤워조차 하기 싫을 때가 있지만 아침에 바른 포마드 때문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욕실로 항한다. 그대로 누우면 베개는 머리 냄새, 땀 냄새 그리고 포마드 냄새가 뒤 섞여 편안한 잠을 방해할 것이다. 내일은 부모님이 오신다. 뜯지 않은 새 베개와 세탁한 배게 하나를 드려야겠다. 쓰던 건 찝찝하니까.
3월 7일
스피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앰프와 스피커를 켠다. 나를 위한 위로의 의미로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재생시키며 아름다운 소리로 긴장했던 몸을 풀어준다. 어떤 때는 긍정적인 흥분, 어떤 때는 감동의 눈물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통해 경험하고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 음악에 관심을 가진 이후 한 번도 내 곁을 떠나지 않은 스피커들, 수많은 아이들을 통해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고 오늘의 일상을 보낸다. 그 무엇보다 누구보다 아름다운 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욕심이 난다. 언젠가 꿈의 오디오를 갖게 될 날을 위해 오늘을 살아간다.
3월 8일
휴지통
비워도 되는데 조금이라도 더 채우겠다고 꾹꾹 눌러 담는다. 그러다 넘쳐서 다시 담는 경우가 있는데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이제는 절반만 차도 비닐을 묶고 쓰레기봉투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여기만은 더 많이 넣겠다고 봉투마다 한숨의 공기마저 없애겠다고 최대한 압축시킨다. 버리기 위해 들고 갈 때마다 무거운 질수록 알뜰하다는 뿌듯함이 있지만, 지구에게 미안함이 동시에 든다. 집에서 가장 바쁜 도구가 휴지통이 아닐까. 좁은 집에 3개나 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배가 불룩해져서 버려 달라고 아우성친다.
3월 9일
거울
본래의 나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나고 마주할 수 있어 거울을 싫어한다. 못 난 나의 모습, 웃음보다 무표정하거나 침울한 얼굴을 볼 때문 억지로 웃음 지어 보이지만 어설픔에 다시 입꼬리는 내려간다. 다른 조건보다 그 자체의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났음에도 나의 부족한 부분에 혼자 마음을 쓴다. 왜 스스로를 자신 있게 거울 앞에 내세우지 못하는 걸까? 나를 너무 잘 알아서라기 보다, 자신감, 자존감이 없어서 일 것이다. 내일은 꾸밈없는 나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며 한마디 해보자. "예쁘다. 너여서 예쁘다."
3월 10일
화장품
외모에 대한 부족한 자신감은 관리 소홀로 이어졌다. 지금도 로션 하나면 끝인 나이지만, 늙어가는 나이가 된지 한참이나 지났지만, 이제서야 관리의 필요성이 느껴진다. 잡티 하나 없이 매끈하고 하얀 피부의 사람들을 보면 어찌나 부러운지. 그래도 이런 얼굴도 사랑스럽게 바라봐 주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이 정도면 전생의 독립운동가 정도였을 것 같다. 그래도 요즘은 로션뿐만 아니라 보디로션도 바르는 사람이 되었다. 이 정도면 관리하는 남자 축에 속할지도? 내일은 올리브 영에 들러 팩을 하나 사야지. 하루라도 노화를 막고 싶다.
3월 11일
옷
무지성으로 구매하던 시절을 지나 입는 옷 보다 입지 않은 옷이 한쪽에 덩그러니 걸려있다. 버리기는 아깝고 팔수도 없는 옷을 어찌하나 찾아보다 기부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그렇게 큰 봉투에 입지 않은 옷이 가득 담겼다. 하지만 여전히 방 한쪽 구석에 묵직하게 존재한다. 기부처까지 가지고 가는 것이 귀찮아 몇 주째 그 상태로 멈춰있다. 옷을 잘 입고 못 입고에 의미 부여하지 않는 지금. 주인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은 또다시 버림받고 있다. 돈 낭비, 시간 낭비 그리고 지구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또다시 옷 구경을 한다. 이제는 구경만.
3월 12일
머그컵
예비군도 민방위 훈련도 끝난 나이, 더 이상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나이다. 연초부터 국가지원 간암 검사 문자가 날라와 얼마 전에 근처 병원을 찾았다. 초음파 검사를 하고 피를 뽑았다. 주삿바늘에 큰 두려움은 없지만 바깥세상에 나온 나의 피를 보는 것이 이상해서 애써 시선을 돌린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검사 결과가 도착했다. 매우 건강한 간이라 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약간의 두려움은 있었기에 안도하며 원두를 꺼내 커피를 내렸다. 오늘은 병원에서 받은 머그컵에 담아 마셔야겠다.
3월 13일
인형
몇 년째 비닐에 쌓인 빨간 SML 인형이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유일하게 좋아하는 캐릭터이기도 한 SML은 피겨와 전시도 보러 갈 정도다. 정은 있지만 여전히 비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아이가 답답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이제는 나와 피부를 맞대고 정을 나눌 시기인듯하다. 요즘 문득 외로움을 느낀다.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과는 별개의 한 인간으로서의 외로움이다. 내가 받아들여야 하고 견뎌야 하는 수많은 일들이 이제는 힘겹다. 가끔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나를 바라봐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힘을 내어 보지만, 힘이 든다.
3월 14일
TV
TV를 켜는 일이 1년에 10번도 채 되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볼 수 없는 방송이 있을 때 정도일까? 방송시간을 기다리며 채널 버튼을 누르다 보면 정말 볼 게 없다는 것을 느낀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영화를 볼까 했지만 잦은 광고와 불필요한 이미지들이 감상에 방해가 되어 그만 꺼버렸다. 요즘은 유튜브도 시청도 줄고 있는데, 반대로 독서하는 시간이 증가한 건 오히려 좋은 일이다. 세상사 모를수록 나에게는 득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