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아직 다녀오지 않은 등산 이야기

창밖은
작성자
디노
작성일
2025-12-19 10:07
조회
26

크리스마스 이후 주말에 덕유산에 가기로 했다. 설천봉까지는 곤돌라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올 예정이라 등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하다. 계획은 곤돌라에서 내린 후 점심 식사를 하고 덕유산 능선을 두어 시간 걷는 것이다. 날씨는 맑지만 얼마 전까지 내린 눈으로 나무에는 눈꽃이 곱게 피어있기를 고대한다. 발은 아이젠과 스페츠를 착용하고, 상의는 플리스와 바람막이 그리고 패딩으로 단단히 무장한 상태로 고운 눈길을 걷고 싶다.

향적봉 대피소 숙박을 예약했기 때문에 느긋한 산행을 하고 싶다. 해 질 녘에는 정상에서 노을을 바라보고 싶고, 다음 날에는 일찍 일어나 일출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다. 등산을 좋아하고, 자연을 좋아하기 때문도 있지만, 이번 여행은 그것만은 아니다.

인터넷에서 본 글이 기억난다. 필자는 삶을 정리하기 위해 아무런 장비 없이, 편도 버스표만 가지고 산을 올랐다. (아마 지리산이었던 것 같다) 오르는 길에 등산가 같지 않은 차림의 필자를 보고 많은 이들이 먹을 것도 주고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는 그곳에서 희망을 보았고,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되었다는 대충 그런 이야기다.

이번 덕유산 산행은 조금은 그 글의 주인공과 비슷한 심정을 가지고 하게 될 것 같다. 이별의 트리거를 시작으로 나를 현실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지금까지의 삶은 쓰레기 같은 시간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우울, 불안, 공황장애, 신체적 질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한 해다. 정상에 올라 2025년의 모든 것을 잊겠다는 거창한 다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냥, 좋은 풍경을 보고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눈꽃산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만 아무 생각 없이 무언가를 바라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나는 내가 제일 잘 안다.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이나 마음속의 불안은 길고 짧은 여행이나 운동, 독서 따위로는 절대 사라지거나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오직 그 순간만큼은 모든 걸 다 잊는 시간만이 필요하다. 산에서 내려와 서울로 돌아오면 똑같은 일상이 계속되겠지. 그 속에서 좋았던 지난 시간을 떠올릴 추억하나를 쌓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번 주말은 오랜만에 동네 뒷산엘 가야겠다. 오랜만에 등산화를 꺼내서 발에 잘 맞는지 점검도 할 겸 해서. 이른 아침의 상쾌한 공기를 쐬고 싶구나. 이왕이면 적당히 눈도 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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