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는 건지 밀리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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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밀고 나가는 방식’이라는 글감이 인상적이어서 한참 바라만 보았다. 버티거나 견디기도 하지만 꾸역꾸역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고통을 등에 업고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만큼 오늘을 밀고 가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힘들게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약간의 불안함은 있지만 내 손으로 어떻게든 해결 가능하다. 괴롭히는 사람도 없고, 빚 독촉 문자도 없고, 비교적 여유로운 직장 생활에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주관에 따라 살아간다고 하지만 결국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버지는 집안의 둘째이자 장남이다. 고로 나는 장손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두 돌아가셨고, 지금까지 장남과 장손이라는 낡아빠진 유교적 지위를 인지하지 않았지만, 최근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친가의 막내 삼촌 내외는 지금 일본에 거주하고 계시고 자식들, 나에게는 사촌 동생이 되는 두 아이는 모두 미국에서 살고 있다. 모두 1년 간격으로 결혼을 했고, 그중 첫째인 동생은 다음 달에 한국에서 결혼식을 한다는 소식을 삼촌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식장은 서울이라 부모님과 친척 모두 이곳으로 오실 예정이다. 서울 거주자인 나는 불참해야 할 명분이 없다. 참석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이제 집안에서 결혼하지 않은 자식은 나 혼자 남았기 때문이다.

결혼을 안 한 것이지만, 못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친지분들을 뵙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지만, 그런 장소에서 부모님과 함께하는 것이 불편하다. 미혼인 나 때문에 불편한 마음을 가지실 상황이 불편하다. 부모님 세대에 결혼과 출산은 필수이니까.

 

이번 설에는 부모님의 섭섭함을 뒤로 한 채, 24시간도 머물지 않고 서울로 와버린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여전히 세뱃돈을 주시는 부모님. 집에 와서 봉투를 확인해 보니 드린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음에도 눈물을 감추려 샤워실로 들어갔다.

하고 싶은 거, 아니 마음대로 살아온 시간이 후회되지는 않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면 수많은 선택들이 옳은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적당히 남들처럼 살아가는 것이 그들과 나에게도 안정적이며 빈도와 크기가 커진 행복과 함께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생각도 내일부터 시작될 지옥철 속으로 들어가 좌우 앞뒤 할 것 없이 밀리다 보면 머릿속 저 구석으로 밀려나겠지. 스트레스 주는 직장 동료를 상대하다 보면 한동안 흐릿해지다 갑자기 눈앞에 펼쳐지며 혼란을 가져다주겠지.

 

이제 비슷한 환경의 지인들이 줄어들고 있다. 얼마 전 만난 고등학교 친구와의 대화 주제도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작별 인사하고 돌아서면서 교실 뒤편에서 <드렁큰 타이거> 랩을 따라 하며 놀던 때가 떠올랐다.

‘한잔 두잔 비워내는 술잔. 혀를 지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이제부터 시작되는 너와 나의 시간…’

마음속에 복잡하게 얽힌 것들을 밀어내기 위해 오랜만에 ‘Good Life’를 재생한다.

 

‘항상 내 기대치만큼 더 이상에 만큼 좀더 깊이 다가가지 못할지라도 항상 텅빈 나의 가슴 채우지 못할지라도 내 인생과 난 모든 진실을 위해 내 인생 그것을 위해 우리들에 입에 straight on shots’

 

오늘은 자기 전에 한잔해야겠다. 오늘까지 쌓인 것들을 밀어내고, 내일 폭풍처럼 밀려올 것들을 막아 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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