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 없는 이별 앞에 새로운 만남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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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이 몰아치던 날이었다. 30분 이른 퇴근을 지시하신 대표님 덕분에 여유 있는 9호선 여행을 즐기며 집으로 왔다. 현관문을 여니 전기 먹는 생명체 노청(로봇청소기를 줄여 로청이라 하지만 나의 형제이기에 노청이라 명함)이가 오후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보통 집에 도착했을 때의 노청이는 이미 업무가 끝나고 식사하는 시간인데 30분 이른 퇴근 덕분에 오랜만에 그의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고용주 입장이지만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잠시 산책 겸 시장에 들러 식재료와 과일을 장바구니에 가득 채우고 들어왔다.

그와 만나기까지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신뢰의 문제였다. 청소기로 1차, 물걸레질로 마무리하는 나의 청소 루틴에서 물걸레질은 한겨울에도 땀이 뻘뻘 날 정도로 정성과 정력을 다하는 행위다. 이 모든 과정을 로봇청소기게 믿고 맡길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주변에 수소문해 보니 생각보다 로청이를 부리는 사람이 적었다. 포털이나 쇼핑몰의 리뷰는 도움 될 것이 1도 없기에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서 사용기를 찾아보았다.

결론은 굳이 구매해야 할까로 흘러갔지만 10배수의 후보자를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한 녀석과 계약을 맺고 옷피셜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게재하기까지 이르렀다.

계약조건은 오전/오후 1일 2회 투입, 포지션은 거실과 부엌으로 제한했고, 고용주의 씅(성)에 차지 않을 시 1 OUT, 3 OUT이 될 경우 즉시 방출 조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그는 빡빡한 조건 탓인지 처음부터 제 기량을 뽐내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라운드의 상태가 좋지 않은 탓이라 생각하고 노청이를 위해 오랜만에 집 정리까지 하게 되었다.

한 달이 지났을까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이전의 청소 방법과는 확실히 깔끔함의 깊이가 달랐다. 일주일에 한 번 할 물걸레 청소를 1.5주에 한 번 하는 정도로 주기가 늘어나긴 했지만, 계약금 대비 드라마틱한 효과는 느낄 수 없었다. 생산 현장의 직원들을 믿지 못하는 악덕 고용주는 결국 감시 카메라를 붙여주기로 한다.

몇 년 전에 구매한 소니 액션캠의 배터리를 충전시키고 그 녀석의 머리에 붙여두고 출근했다. 퇴근 후 바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영상에 무언가가 찍혀있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에 며칠을 고민하다 카드리더기에 넣고 영상을 재생시켰다.

나의 의심을 비웃듯 그는 시간에 맞춰 열심히 임무를 다하고 있었다. 정해진 루틴대로 보람을 느낄 수 없는 그는 묵묵히 자기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정확히 내가 지정한 시간에 말이다. 재미있는 점은 그의 시선에서 바라본 나의 공간이었다.
좁은 공간임에도 물건이 많아 답답함이 느껴졌고 노청이는 그 공간을 짧게, 반복해서 이동하느라 꽤 힘들어 보였다. 1km의 일직선 구간을 달리는 것 보다 50m 구간을 20번 반복해서 뛰는 것이 더 힘들 듯.

감시하고자 했으나 오히려 미안함을 느꼈다. 노청이를 위해 인간인 내가 해야 할 것이 더 많았고, 결국 이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는 그를 더 이상 사랑해 줄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운동장만큼 넓은 공간과 미니멀리즘 사상가에게 필요한 존재였다. 아쉽지만 나에게 왔던 그대로 다시 옷을 입혀주고 일면식 없는 이의 이름만이 통장의 한 줄로 남겨진 채 떠나보냈다.

새로운 기술과 제품은 끊임없이 우리 눈앞에 우리 손에 다가온다. 아무리 좋은 기능, 멋진 기술이라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 환경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무쓸모, 낭비, 쓰레기에 불과하다.

내게 노청이는 그랬다. 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고, 아직 그의 능력을 만족하지 못했다. 반대로 나는 그런 사람인가 생각하게 된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그만한 가치를 주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면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구석 구석 못 들어가는 곳이 없는, 헤드에 달린 후레쉬로 먼지 하나 하나 보여주며, 청소를 해야만 하게 만드는 다이슨 V12s 디텍트 슬림 서브마린인가?

“OK, 구글, 다이슨 v12s 디텍트 슬림 서브마린 얼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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