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태재님의 글쓰기 강좌 에세이 스탠드 홍대 4기에 참여했다.
에세이라는 형식의 글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었고, 본격적인 글쓰기의 시작을 정한 지점이었다. 3번의 수업에서 첫 시간에는 에세이란 무엇인가, 2, 3번째 수업에서는 각자가 써온 글을 통해 태재님과 참여자의 피드백를 중심으로 진행했다.
아래의 글은 첫번째 글로 이후 다듬지 않은 상태에서 그대로 올려 본다.
첫 글에서 피드백은 너무 혼자만의 이야기라는 것, ‘삶’이라는 단어 처럼 너무 광범위한 내용을 담으려고 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느꼈다.
에세이는 나의 이야기지만 나의 생각과 경험에 타인의 무언가를 첨부한다면 재미있는 글이 될거라고 했다.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점이랄까.
이전에도 글쓰기, 에세이 쓰기에 대한 책을 몇권 읽었지만 남는게 없었다. 집중하지 못 한 탓이 크지만 행돌하면서 나의 글에 대한 단점을 파악하고 고쳐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배우기만 해서는 쓸모가 없다. 실행해야 한다.
이전에 읽었던 좋은 책을 다시 읽어 보면서 글의 퀄리티를 높이고자 한다.
오늘의 나는 많은 시간, 경험, 생각이 켜켜이 쌓이고, 섞이고. 변화하며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부족하거나 부적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혼자보다는 더불어 살아야 좋은 세상이 된다고 믿으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도우며 살기 위해 노력해왔다. 간혹 실수가 있어도 빠르게 사과하는 편이다. 이런 관점이 확장되어 여러 사회 문제에 관심도 많다.
이런 가치관과 현실 세계의 삶은 괴리감이 크다. 여전히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일이 어렵고 두렵다.
돌아보면 시기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으며 잘 지내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커뮤니티의 소속원으로서 관계였지. 나라는 사람에 흥미와 관심이 있는 이는 많지 않았다.
랜덤 재생으로 구름 속에 숨겨진 음악을 듣다가 문득 ‘Karma’라는 단어가 깊숙이 들어온다. 듣고 있던 음악의 정지 버튼을 누르고 Karma, 지금의 내가 된 업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최초의 기억부터 최근까지 나의 언어와 행동을 곱씹으며 돌아본다. 무엇이 이토록 외롭고 관계 속에 녹아들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타인에 비해 부족한 자기애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심각한 문제는 발견할 수 없다.
그럼 성격이 문제일까? 먼저 다가가기 어려워하고 사교성이 없는 나의 기질도 업보일까? 정말 모르겠다. 누군가 정답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넌 그렇게 살지 마, 이렇게 저렇게 살아봐.’라고 말이다. 최소한 자기반성을 통해 변화하려는 열린 마음은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타인의 삶에 관심이 없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여전히 품고 있지만 이제는 혼자인 삶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빨리 걷고 싶을 때 빨리 걷고, 좋은 작품 앞에서 1시간을 머무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니까.
아…! 이런 모습이 수많은 사람들 속에 홀로 떠다니는 내 삶의 업보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