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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만들어 가는야

essay drive
작성자
디노
작성일
2024-05-27 15:58
조회
222
에세이 드라이브 58기 첫 번째 글

 

작은 글로 흔적을 남깁니다. 

 

겨우내 고생스럽게 준비한 그녀의 카페가 3월에 오픈했다. 인테리어 업체에 맡겨서 꾸미지 않고 직접 설계해서 정확한 치수까지 작성한 설계 PPT로 인부를 섭외하고, 하나씩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면서도 자영업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피부로 느꼈다. 그렇게 완성된 카페의 모습은 편안하고 아름답다. 햇살이 좋은 날 큰 창을 마주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이 샘솟는다. 거기다 그녀가 직접 만든 머핀과 음식, 우리의 단골 카페에서 로스팅한 원두로 내린 브루잉 커피는 완벽한 하루를 위한 유일하고 마지막 퍼즐과도 같다. 

 준비 기간과 영업 중인 현재도 가끔 방문해서 사소한 일은 돕고 있지만 별다른 능력이 없기에 ‘힘껏!’ 도와주지는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지인이 많지 않아 홍보할 사람도 없다. 얼마 되지 않은 카톡의 친구와 채팅방 목록을 보다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독서모임 방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어 몇 번이나 메시지를 쓰고 지우고 하며 고민하길 며칠째, 안부 인사로 시작해 정성스레 작성한 카페의 소개 문구와 약도를 올렸다. 다행히 반응은 좋았다. 짧게 쓴 만남의 제안에 다들 호응해 주셔서 오랜만에 다 같이 모이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하필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꽤 많은 비가 내리고 있어서 다들 모일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하나둘씩 모이다 보니 8인 테이블이 꽉 차 의자를 추가해야 했다. 나 포함 9명이 모였고, 우리 모임에서 무려 두 커플이나 탄생했고 그들의 작고 소중한 아이까지 11명이 모였다. 마지막으로 함께 모인 것도 망원한강공원이었는데, 이번에도 망원동이라는 점도 재미있었다. 

2018년 가을에 첫 모임을 가진 안국의 작은 공간에서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멀지만 가까운 사이랄까. 1년 혹은 몇 년 만에 만나도 서먹하기는커녕 금세 웃음꽃이 피게 하는 우리가 참 좋다.   

 예상치 못하게 많이 모인 탓에 주방에 있던 여자 친구와 직원분은 혼이 빠져나갈 정도로 바빴지만 다들 맛있게 드시고 돌아갈 때 머핀 하나씩 포장해 가시는 모습에 뿌듯했다. 덕분에 좋은 모임을 할 수 있었다. 소심하게 보낸 메시지가 지금의 우리를 마주하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올해 들어 잘한 일 중의 하나가 될 수도. 

 우리의 이야기는 무려 4시간 동안 이어졌다. 다음에 만날 때까지 잘 지내보자며 작별 인사를 했다. 돌아가는 시간에도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지만, 그 비마저 고맙고 좋았다. 

 그날 저녁 함께 찍은 사진을 공유하고 살펴봤다. 그리고 첫 독서 모임의 단체 사진과 그동안 함께했던 우리의 모습을 보며 잠시나마 추억에 잠겼다. 사진 속에서 시간의 흐름은 보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즐겁고 행복했다. 함께라서 행복했다. 

 최근 육체,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왜 수많은 사람이 불행한 결정을 하는지 이해하고 공감하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하루를 지낸다기보다 겨우 버틴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57기 드라이브에 시동을 걸지 못한 것도 이 문제 때문이다. 해결되지 않았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지만, 쓰며 이겨내기 위해 다시 워드 파일을 연다. 

 과거에 연연해하고 얽매이는 것이 단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는 게 우울함에 도움이 된다. 과거는 흘러가게 마련이고 잊힌다. 그렇다면 행복한 시간을 계속해서 만들어 간다면 지금도, 과거를 반추하는 미래도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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