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저기든 여기든 어디든

essay drive
작성자
디노
작성일
2026-01-22 11:18
조회
6
유명인을 찍는 이로 유명한 조선희 사진작가의 전시를 다녀왔다. 조금은 충격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작품이다. 피사체는 새(bird)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닌 죽은 새다. 얼어붙은 죽은 새. ‘얼어붙은’은 작가가 만들어낸 물체다. 본인 혹은 타인이 보내온 새를 얼렸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일부러 그의 텍스트를 보지 않았다. 스스로 느끼고, 표현하고 싶었으나, 며칠이 지난 아직까지 강렬한 사진만이 기억속을 해집고 있다. 

 

작품을 모두 감상하고 루프탑에 올랐다. 삼청동의 끝자락에 위치한 곳에서 보여지는 풍경은 북악산의 자락과 알 수 없는 군사시설 그리고 가지만이 앙상한 나무였다. 그 곳에 새의 둥지가 있었다. 그 곳에는 살아있는 새가 있었다. 

 

죽은 새, 죽고난 후에도 그들의 죽음과 과거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 색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새의 모습을 보고난 후 둥지는 색다르게 느껴졌다. 

 

죽은 사람의 모습을 본 것은 20년 전 할아버지, 할머니의 장례식 때였다. 20년 도 지났지만, 어렸을 때였기에 그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살가운 관계보다 할아버지, 할머니로서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닌 관계였기 떄문이었을까?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날 수록 그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고, 그리움으로 전환된 감정이 아주 가끔 푹하고 가슴 속에 파고 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둥지로 새 한마리가 날아든다. 살아있는 둥지였다. 이 추운날 저들은 어찌 지낼까 괜한 걱정하며 삼청동 길을 내려왔다. 

 

5월에는 동생과 여행을 계획했다. 단 둘이 여행은 처음이다. 목적지는 제주. 도쿄로 정했다가 변경했다. 동생과 등산이 하고 싶어졌다. 20년 동안 같은 둥지에서 아둥바둥 지내다 각자의 자리에서 지낸지도 17년이 지났다. 까불거리던 그 녀석은 귀여운 조카라는 생명체를 안겨 주었다. 휴대전화에서 동생의 이름은 여전히 ‘겨운동생’이다. 

 

그와의 여행은 무엇을 남길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생각해 본다. 진지한 얘기보다는 옛날 이야기를 하며 과거를 추억하고 싶다. 진지한 이야기는 결국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일테니. 힘든 것, 두려운 것, 무서운 것이 싫다. 피하고 싶다. 그렇게 피하고 피하다 보니 지금 이 곳에 서 있다. 사실 어디인지 모른다. 

 

작년에 다녀온 여행지를 떠 올린다. 한적했던 켄싱턴 공원, 열심히 러닝하다 무릎 이슈가 생긴 우에노 공원, 흐리디 흐린 날 친구와 트래킹했던 다대포 해수욕장. 어디든,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는 곳이다. 아니 어디든 갈 수 있는 몸이라 생각해 본다. 

 

캠핑에 마음이 동한다. 어디에도 갈 수 있는 등 뒤의 큰 배낭에 이것저것 쑤서넣고 어디든 가서 몸을 뉘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지난 덕유산에서의 밤이 꽤나 좋았나 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전히 어둠과 함께 했던 시간이 그리운가 보다.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전체 0

전체 122
번호 제목 작성일 추천
122
꿀만 빠는 사람이 제일 싫어요.
디노 | 2026.03.15 | 추천 0 | 조회 7
2026.03.15 0
121
취향이 실력인 시대, 랍니다.
디노 | 2026.03.08 | 추천 0 | 조회 7
2026.03.08 0
120
아직 나 정도면 양호하네.
디노 | 2026.02.16 | 추천 0 | 조회 7
2026.02.16 0
119
잊을 수 없는 흰쌀밥의 향기
디노 | 2026.02.09 | 추천 0 | 조회 6
2026.02.09 0
118
섞어서 주세요.
디노 | 2026.02.05 | 추천 1 | 조회 120
2026.02.05 1
117
저항을 이겨내는 것이 관건이다
디노 | 2026.01.27 | 추천 2 | 조회 119
2026.01.27 2
116
바람따라 사는걸 바람
디노 | 2026.01.26 | 추천 0 | 조회 7
2026.01.26 0
115
저기든 여기든 어디든
디노 | 2026.01.22 | 추천 0 | 조회 6
2026.01.22 0
114
수십번의 시작이지만, 또 시작.
디노 | 2026.01.22 | 추천 0 | 조회 5
2026.01.22 0
113
동굴에서 빠져나오기.
디노 | 2026.01.19 | 추천 1 | 조회 120
2026.01.19 1
112
멀어지는 슬픔
디노 | 2026.01.18 | 추천 0 | 조회 114
2026.01.18 0
111
창밖은 겨울
디노 | 2026.01.11 | 추천 0 | 조회 112
2026.01.11 0
110
원팀
디노 | 2026.01.09 | 추천 0 | 조회 163
2026.01.09 0
109
친구 같은 친구 같지 않은 그들
디노 | 2025.12.26 | 추천 0 | 조회 158
2025.12.26 0
108
하고 싶은 건 많지만, 하나씩
디노 | 2025.12.20 | 추천 1 | 조회 181
2025.12.20 1
107
아직 다녀오지 않은 등산 이야기
디노 | 2025.12.19 | 추천 0 | 조회 114
2025.12.19 0
106
너무 잘 알아서 탈이야
디노 | 2025.12.14 | 추천 0 | 조회 166
2025.12.14 0
105
나를 드러내는 유일한 방식
디노 | 2025.12.06 | 추천 0 | 조회 148
2025.12.06 0
104
HOME
디노 | 2025.11.29 | 추천 0 | 조회 133
2025.11.29 0
103
오랜만이야 
디노 | 2025.11.22 | 추천 1 | 조회 205
2025.11.2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