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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 알아서 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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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디노
작성일
2025-12-14 15:34
조회
42
옆 팀 고객센터에 전화가 불이 나기 시작했다. 뭔가 장애가 터졌나 보다. 담당은 아니지만 항상 고객 문의 접수 게시판을 보고 있는데, 문의 글이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서비스 장애였다. 서비스 전체가 문제인지 특정 페이지가 문제인지 확인하기 위해 PC와 스마트폰(아이폰, 갤럭시) 3대를 돌아가며 테스트를 진행했다. 오전에 반영된 수정 사항이 문제가 일으킨 듯하다. 아무도 테스트를 안 한 건지 의문을 가장한 한심함을 속으로 삼킨다. 잠깐 내 일을 접어두고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지속해서 테스트를 진행했다.

 

고객센터 담당자에게는 모든 전화를 받지 말라고 DM을 보냈다. 어차피 당장 해결이 되지 않고 있고, 똑같은 말을 반복해야 할거라면 굳이 안 좋은 소리 들어가며 응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업계 특성상 고객들은 개인사업자들이다 보니 일반 고객보다 강성일 경우가 많다. 당장의 매출 하락은 아니지만 영업에 지장을 주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개발팀은 시끄럽다. 무엇이 문제인지, 당장 고쳐질 수 있는 건지 그게 아니면 원복해야 하니 마니 논쟁하고 있다. 그 시간에 코드를 들여다보거나 재빨리 원복하는 게 좋지 않냐고 생각을 한다. 그렇게 자기네들끼리 쑥덕쑥덕 되다가 20분 정도  지나서야 겨우 원복했다. 알고 보니 작은 실수로 일어난 일이었다.

 

해결된 후에는 자기들이 잘했다는 듯이 떠들고 다닌다. 장애 후 저런 반응은 루틴이기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고생 했다는 얘기를 건넨다. 제 얼굴에 침 뱉기이지만 우리 회사 개발자들은 참으로 신기하다. 자신의 실수로 해결한 것도 성과로 보고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식으로 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천연기념물 수준이 아닐까?

 

눈은 모니터지만 마음은 그들을 향하여 뒷담화하다가 문득 내 모습이 비쳐 자신을 돌아본다.

 

- 나는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인가?

- 아니, 많은 실수를 한다.

 

- 실수 후의 대응은 어떠한가?

- 우선 사과를 하고, 실수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한다.

재발을 방지하는 방안이 떠오르지 않을 경우 의견을 구한다.

 

나는 자신을 잘 안다. 요즘은 메타인지가 높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자신을 잘 알기 때문에 장단점을 명확히 알고 있다. 아니, 장점은 없고, 단점만 깨알같이 많다.

 

- 내가 한 일을 포장할 줄 모른다. 대단한 일이라도 별거 아닌 양 넘어간다.

- 누가 봐도 잘한 일임에도 알리지 않는다.

- 나의 결과물에 만족한 적이 없다. 타인의 인정 여부와는 관계없다.

 

타인에게 건네는 말에는 항상 긍정적이지만, 나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부정 혹은 그 끝을 달린다. 초면인 사람이나 모임에서는 먼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것이 그 이유다. 가끔은 빈말로 나를 사랑하는 듯한 표현을 한다. 기분은 썩 좋지 않다. 상황의 분위기를 맞추기 위한 감정 노동이다.

 

한 인간이 가진 기질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지속되지 않는다. 마음에 없는 말이라도 좋은 이야기를 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나를 만나볼 수 있을 텐데도 말이다.

 

문득 노홍철 형님이 자주 하시던 말이 생각난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다! 웃어서 행복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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