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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이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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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디노
작성일
2025-11-10 17:27
조회
83
10월 추석 이후 2주간 재택근무를 하면서 느꼈던 불안감이 있었다. 말이 재택이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있었고, 실제로 반복 업무를 제외하면 크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리가 빨리 낮지 않아 재택이 길어진다면, 이라는 가정하에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매일 5, 6만 원의 택시비를 부담하며 고통스러운 출퇴근을 해야 할지, 어떻게든 재택근무를 지속하며 빠른 회복을 기원할지 말이다. 이런 상상의 배경에는 불안감이 있었다. 존재의 불필요함이 생겨나면 나의 책상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몸은 편해도 마음은 편치 않았던 2주였다.

 

일관된 관점이나 행동보다는 극과 극을 달리는 편이다. 아침에 최상의 기분 상태였다가 오후에는 밑바닥이 없을 정도로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면서 1시간 같은 1분을 견디기도 한다. 다른 이들도 그렇다고 하지만, 타인에게는 무한 긍정 에너지를 주면서 자신에게는 부정과 암울의 끝을 전하려고 노력한다. 얼마 전 친구의 아버지께서 서울로 올라와 수술받고 입원하셨을 때였다. 불안해하는 친구에게 근거 없이 수술은 잘될 거고, 금방 퇴원하실 거라고 반복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걷기 힘든 상태의 다리를 보며 위에 언급했던 생각들로 어두운 방 안에서 폐인처럼 보내기도 한다.

 

한 예로 든 상황이지만 일상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극과 극을 달리는 상황을 맞이한다. 인지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지만, 이런 지점들이 스트레스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반면 이런 모습이 나의 장점이기도 하다. 일관되지 않은 성향은 불필요한 고집을 부리는 일이 적다.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일 마음가짐이 되어 있어, ‘극혐’ 수준이 아니라면 모두 흡수한다. 더 좋은 것이, 나에게 맞는 것이 무엇인지 선택할 기회가 많아진다. 라며 장점을 설명할 수 있다.

 

취미가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취미가 많아서 여전히 하고 싶은 것,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생긴다는 것이 일상에 활력을 주는 것 같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몸으로 음악을 느끼고, 가끔 남의 글을 읽고, 몸이 약해 찌질했던 기억을 덮기 위해 운동을 한다. 무엇 하나 특출나게 잘하는 건 없지만, 제한된 시간을 쪼개 하나씩 하다 보면, 그제야 행복을 느낀다. 유일한 쾌락이랄까? 이제는 쾌락에서 그치지 않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싶어 끝없는 고민의 수레바퀴 속에 나뒹굴고 있다.

 

지난겨울 함께 전시했던 멤버들과 새로운 전시를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험난하지만 인정받고 공감받을 수 있는 사진을 위해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고, 적절한 시점에 필요한 고민을 하게 돼서 지금까지는 즐기는 중이다. 초속 42km로 스치는 시간을 잘 붙잡아 내가 만족하는 사진을 찍는 것이 목표다. 이왕이면 드라이빙의 경험을 살려 몇 줄의 글도 곁들이고 싶은 마음은 한가득하다.

 

일은 부업이고, 취미가 (돈 안 되는) 주업인 것 같다. 사실이긴 하다. 돈을 버는 이유가 취미 생활을 위해서니까. 그렇게 번 돈으로 어제 김동률 콘서트에 다녀왔다. 매번 역대급을 갱신하는 동률이 형의 공연이다. 그가 공연 때마다 자주 쓰는 단어가 ‘업그레이드’인데, 이번에는 소수점이 아닌 앞자리가 바뀌는 수준의 업그레이드였다. 마침, 200번째 콘서트 관람이었기에 나름 더 큰 의미를 새기며 귀가 했다.

 

가끔 취미로 가득한 일상을 보낸다면 어떤 삶일까 상상하며 잠드는 것이 새로운 취미가 되어버렸다. 구매하지도 않으면서 로또 1등 당첨을 상상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 어제의 뉴스를 살펴보고, 운동하고, 독서와 글 쓰기를 한 후 카메라를 메고 산책한다. 보고 싶은 전시를 보고 서점에 들러 관심 있는 분야나 작가의 신간을 사서 귀가하는 생활. 이런 상상을 하다 보면 내 삶에 ‘사람’은 없다. “‘누군가와 ‘무엇’을 하고 싶다”가 없다. 혼자는 외롭고 힘든 상태임에는 분명하다. 돌아보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함께 좋아해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응원하고, 지지하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먼저 나서서 타인에게 보여준 적도 없다. 매주 한 편씩 쓰는 글을 지인에게 전혀 공유하지 않는다. 부끄러움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솔직한 생각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점이 큰 것 같다.

 

그렇게 삶의 철학은 혼자서도 좋아하는 일을 병행하며 사는 것이 되어버렸다. 굳이 바꾸고 싶지도 않고, 마음이 동하지도 않는다. 여전히 오늘도 좋아하는 일에 머리 싸매가며 고민하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이렇게 살아야지. 이왕이면 오래 지속되길 기원하면서. 금방 끝나더라도 충분히 즐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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