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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럽지 않네.”

essay drive
작성자
디노
작성일
2025-10-20 08:03
조회
153
“… 스럽지 않네.”

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에는 많은 단어가 해당이 된다. ‘남자’, ‘장남(장손)’, ‘팀장’, ‘나이’ 등등 내게 해당하는 거의 모든 자격, 위치, 역할이 포함된다. 대부분 남보다 한 발은 앞선 자리들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1인자보다는 2인자,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의자리에서 서포트하는 것이 내 자리라 생각했고, 열심히 했고, 보람 있었다. 물론 첫 회사에서의 몇 년간은 팀장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했던 시간도 있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열심히, 잘할 수 있는 자신감은 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연인 관계에서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했지만, 대부분 내가 먼저 해주길 바라고, 더 많이 주길 바란 이들이 많았다.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만족하지 못했고, 그것이 직접적인 이유가 되지 않았더라도 이별의 이유 중에 작은 부분은 차지했다. 남은 건 허무함이었고, 무기력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라는 질문이 풍선처럼 떠다니며, 바늘로 콕콕 찔러 터트리지만, 풍선 속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나약한 사람이다. 불행을 증폭시키는 사람이다. 부정적인 감정이나 일이 닥치면, 머릿속에 꾹꾹 눌러 담고 터질 때까지 바람을 불어 증폭시킨다. 동굴 밖으로 빠져나가고 싶지만, 눈앞에 출구를 보면서도 뒷걸음질 치며 어둠속으로 들어간다. 누군가 꺼내주길 바라지만, 그럴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헛된 바램으로 재차 불행을 가득 앉고 더 깊숙이 들어간다.

무슨 말 하는지도 알 수 없는 이 글이 지금의 나를 가장 잘 표현한다. 길은 있지만 일부러 길이 아닌 풀숲을 헤치고 나아간다. 앞으로는 가지만 목적지로 향하지는 않는다. 필요한 건 어두운 동굴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횃불이다. 아픈 왼쪽 무릎을 대신해 의지할 수 있는 목발이다. 동굴 속 뾰족한 돌부리에 걸리지 않을 튼튼한 등산화이다.

중년의 나이임에도 타인이 아닌 나를 보호해 줄 무언가를 바란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이럴 때 참 나잇값 못한다며 자책하고 마음에 깊은 흠집을 남긴다. 지난 몇 개월간 상담받고, 약 먹으며 버텨낸 시간은 아무런 효과 없이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무언가에,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보호받는 것보다 중요한 건 본인의 의지였다.

아무 생각 없이, 다시 보지 않은 글을 쓰고, 공유하는 것이 폭력으로 느껴진다.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지만, 폐의 오오라를 내뿜으며 다니는건 아닌지, 보이지도 않으면서 어둠의 오오라가 없는지 뒤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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