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릴 수 없으니, 쓴다.
essay drive
작성자
디노
작성일
2025-10-13 08:02
조회
126
기나긴 추석 연휴 한 치의 여유도 없이 보낼 수 있었다. 꽉 꽉 채워보았으나, 남은 건 저 멀리 날아간 무릎만이 전리품으로 남아있다. 부모님과 동생네가 서울로 올라와 2박을 보냈다. 3일 내내 흐린 날씨는 아쉬웠지만 더 소중한 시간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짧은 기간 동안 창경궁, 국립중앙박물관 등 여러 곳을 다니면서, 감사함도 많이 느낀 시간이다. 함께 여행할 수 있는 부모님의 건강에 감사했고, 동생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평양냉면으로 3끼를 채울 수 있는 통장 잔고에 감사했다. 그러니까 한 그릇당 1만 6원 잡고, 6명에 3끼 거기다 다른 음식까지 하면, 그만하자.
3일 간의 짧은 서울 여행을 마치고 가족들을 가득 태운 동생의 차는 부산으로 향했다. 나는 내일 떠날 런트립(Run Trip) 도쿄를 위해 재빨리 은색 캐리어를 꺼내 준비물을 가득 채웠다. 이번에도 ‘달리기 개근상’을 위해 운동복을 1순위로 챙기고, 러닝화는 현지에서 조달할 생각으로 캐리어의 빈 공간은 설렘으로 채워놓았다. 도쿄로 떠나기 전 날씨를 계속 체크했지만, 여전히 흐린 날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날씨 요괴가 분명하다. 최근 국내외 여행에서 밝은 햇살을 만난 적이 1번밖에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날씨 앱을 켰는데 아뿔싸! 저 멀리 태평양에서 태풍이 거대한 몸을 이끌고 엉금엉금 기어 오고 있다. 일기 예보상 귀국하는 날에 도쿄를 지나친다고 하는데, 마지막 남은 연차를 소진하는 여행에서 내년 것까지 당겨 쓰고 싶지는 않았다. 기도한다. 마지막 연차를 맹렬히 불태우기 위해 도와 달라고, 하지만 태워진건 다름 아닌 내 다리였다.
후지산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창가로 예약했지만, 역시나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했다. 후다닥 짐을 풀고 내일부터 달리기 위해 신주쿠의 거대한 스포츠 샵과 아식스 매장에 들렀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다양한 브랜드의 러닝화가 가득했다. 마음 같아서는 브랜드 별로 하나씩 사고 싶었지만, 계획한 데로 러닝화 한 켤레와 땀이 많은 이 몸을 위한 운동용 발가락 양말을 구매했다. 내일부터 달릴 것이다. 달리고야 말 것이라는 의지가 카드 영수증으로 출력되었고, 평양냉면으로 비어버린 통장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음 날 6시에 기상. 한반도보다 동쪽에 자리한 탓에 이미 해는 공원의 거대한 나무 뒤편에서 살짝 햇살을 내비치고 있다. 숙소 근처의 우에노 공원을 뛰기 시작한다. 첫날이니 3km 정도 뛰었고, 다음 날은 5km 그리고 황궁 주변 7km를 뛰었다. 아침의 러닝을 포함해 하루 평균 2만 5천 보를 걷다 보니 금요일 아침부터 무릎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고작 그거 뛰었는데 이런다고? 무릎에 ’19-1, 19-1’ 외치며 타박했지만, 통증은 더 거세지기 시작했고, 걷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럼에도 왼쪽 다리를 질질 끌며 도쿄에서의 일정을 소화했다. 무엇보다 꿈에 그리던 블루노트 도쿄에서의 공연은 포기할 수 없었다. 이번 여행의 또 다른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걸음이 느린 아이가 되어버린 것이 여행에서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 재즈 연주의 그루브함과 열정을 온몸에 가득 채운 후 느린 걸음으로 걷는 야간의 도쿄 산책은 공연 후의 여운을 더 깊고, 길게 남겨놓았다. 휴대전화를 열고 블루노트 도쿄 홈페이지를 열어 공연 일정을 살펴본다. 머지않아 주말을 활용해 다시 아오야마의 밤거리를 걷는 나를 마주하게 될 것 같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께서 앞으로는 무리하지 말라신다. 생각보다 내 무릎은 연약했다. 나이 들어서 하는 운동은 골병든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하지만 새 러닝화도 샀는데, 지루하고 피곤한 일상에서 꾸역꾸역 살아가게 만드는 유일한 행위가 운동인데, 못 하게 된다면 끔찍하다.
좋은 여행이었지만, 끔찍한 결과를 마주했다. 계속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받고, 충분한 휴식을 하면서 다시 달릴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 당분간은 상체와 글쓰기 근육을 단단히 하며 안전한 드라이빙에 집중할 시간이다. 글쓰기가 일상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게 이런 방식으로 위안을 준다. 이젠 몸이 망가져도 무너지지 않는 정신력을 가졌다는 것에 자신을 칭찬한다. 여태 살면서 나를 칭찬한 적도 거의 없고, 여전히 어색하지만, 글을 쓰니 가능하다. 달릴 수 없다면 쓰자.
3일 간의 짧은 서울 여행을 마치고 가족들을 가득 태운 동생의 차는 부산으로 향했다. 나는 내일 떠날 런트립(Run Trip) 도쿄를 위해 재빨리 은색 캐리어를 꺼내 준비물을 가득 채웠다. 이번에도 ‘달리기 개근상’을 위해 운동복을 1순위로 챙기고, 러닝화는 현지에서 조달할 생각으로 캐리어의 빈 공간은 설렘으로 채워놓았다. 도쿄로 떠나기 전 날씨를 계속 체크했지만, 여전히 흐린 날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날씨 요괴가 분명하다. 최근 국내외 여행에서 밝은 햇살을 만난 적이 1번밖에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날씨 앱을 켰는데 아뿔싸! 저 멀리 태평양에서 태풍이 거대한 몸을 이끌고 엉금엉금 기어 오고 있다. 일기 예보상 귀국하는 날에 도쿄를 지나친다고 하는데, 마지막 남은 연차를 소진하는 여행에서 내년 것까지 당겨 쓰고 싶지는 않았다. 기도한다. 마지막 연차를 맹렬히 불태우기 위해 도와 달라고, 하지만 태워진건 다름 아닌 내 다리였다.
후지산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창가로 예약했지만, 역시나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했다. 후다닥 짐을 풀고 내일부터 달리기 위해 신주쿠의 거대한 스포츠 샵과 아식스 매장에 들렀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다양한 브랜드의 러닝화가 가득했다. 마음 같아서는 브랜드 별로 하나씩 사고 싶었지만, 계획한 데로 러닝화 한 켤레와 땀이 많은 이 몸을 위한 운동용 발가락 양말을 구매했다. 내일부터 달릴 것이다. 달리고야 말 것이라는 의지가 카드 영수증으로 출력되었고, 평양냉면으로 비어버린 통장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음 날 6시에 기상. 한반도보다 동쪽에 자리한 탓에 이미 해는 공원의 거대한 나무 뒤편에서 살짝 햇살을 내비치고 있다. 숙소 근처의 우에노 공원을 뛰기 시작한다. 첫날이니 3km 정도 뛰었고, 다음 날은 5km 그리고 황궁 주변 7km를 뛰었다. 아침의 러닝을 포함해 하루 평균 2만 5천 보를 걷다 보니 금요일 아침부터 무릎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고작 그거 뛰었는데 이런다고? 무릎에 ’19-1, 19-1’ 외치며 타박했지만, 통증은 더 거세지기 시작했고, 걷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럼에도 왼쪽 다리를 질질 끌며 도쿄에서의 일정을 소화했다. 무엇보다 꿈에 그리던 블루노트 도쿄에서의 공연은 포기할 수 없었다. 이번 여행의 또 다른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걸음이 느린 아이가 되어버린 것이 여행에서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 재즈 연주의 그루브함과 열정을 온몸에 가득 채운 후 느린 걸음으로 걷는 야간의 도쿄 산책은 공연 후의 여운을 더 깊고, 길게 남겨놓았다. 휴대전화를 열고 블루노트 도쿄 홈페이지를 열어 공연 일정을 살펴본다. 머지않아 주말을 활용해 다시 아오야마의 밤거리를 걷는 나를 마주하게 될 것 같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께서 앞으로는 무리하지 말라신다. 생각보다 내 무릎은 연약했다. 나이 들어서 하는 운동은 골병든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하지만 새 러닝화도 샀는데, 지루하고 피곤한 일상에서 꾸역꾸역 살아가게 만드는 유일한 행위가 운동인데, 못 하게 된다면 끔찍하다.
좋은 여행이었지만, 끔찍한 결과를 마주했다. 계속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받고, 충분한 휴식을 하면서 다시 달릴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 당분간은 상체와 글쓰기 근육을 단단히 하며 안전한 드라이빙에 집중할 시간이다. 글쓰기가 일상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게 이런 방식으로 위안을 준다. 이젠 몸이 망가져도 무너지지 않는 정신력을 가졌다는 것에 자신을 칭찬한다. 여태 살면서 나를 칭찬한 적도 거의 없고, 여전히 어색하지만, 글을 쓰니 가능하다. 달릴 수 없다면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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