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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행복했었구나.

essay drive
작성자
디노
작성일
2024-06-24 16:05
조회
341
에세이 드라이브 59기 첫번째 글

 

작은 글로 흔적을 남깁니다. 

 

불행? 아니 일상에 행복의 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아왔다. 매번 작지만, 잦은 행복을 느끼자고 다짐하면서도, 괜히 근심·걱정을 꺼내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극단적으로 변하는 기분은 급기야 육체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일은 놓지 않고 꾸준히 해온 덕분에 조금씩 나아질 수 있었다. 

 2주 전의 사진 수업에서는 다음 학기에 진행할 개인 작업을 발표하고 피드백 받는 시간을 가졌다. 미래보다 과거를 끄집어내어 추억하는 것이 취미인 만큼 고향을 떠나온 시간을 되짚어보기로 했다. 살아온 동네, 자주 다니거나 특별한 추억이 있는 장소나 물건을 통해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현재와 앞으로 가야햘 길을 고민해 보는 것을 작업의 주제로 정했다.  

단순히 장소와 사물을 피사체 삼아 카메라에 담는 게 아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지금 마주했을 때의 감정을 먼저 느끼고 사진으로 담아보라는 작가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먼저 피사체가 될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고,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2017년 봄, 그 속의 나는 행복했었다. 사랑하는 이가 있었고, 이제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아직 말이 서툰 조카가 사진첩에 가득했다. 그들과 봄나들이하고 예쁜 꽃을 보며 봄을 만끽했다. 

 행복했지만 곁에 없는 이의 모습을 보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나의 잘 못으로 끝나버린 인연이었기에 더 마음이 쓰렸다. 사진 속의 나는 웃고 있었고, 행복이 가득해 보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때가 그립거나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다시 작업에 필요한 사진을 골라본다. 수업에서 진행할 것 말고도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남산에 올라 국립중앙박물관의 모습을 찍는다. 그 후 반대로 박물관에서 남산을 찍는다. 가제 “나는 네가 보여, 너는 내가 보이니?”  

 사진 속에서는 내가 없지만 그 순간의 나를 기억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다. 인물보다 풍경을 많이 있었던 폴더 속에는 가제에 어울리는 이미지가 많이 있었다. 무슨 생각으로 담았는지 알 수 없지만, 다시 시작해보며 알아가고자 한다. 내가 없는 나의 모습을 기록하고자 한다.  

 어두운 그림자만이 나를 덮은 듯하지만, 항상 밝은 빛이 비치고 있었고, 혼자가 아닌 함께하고 있었다. 불행보다 행복이 더 많았던 나였다. 남과 비교하고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는 욕심이 지금의 나를 불행으로 이끌었다.  

 지나간 시간은 필요한 일에만 꺼내어 쓰고, 이 순간에는 작은 행복을 위해 정신과 육체를 쏟아붓고자 한다. 글을 쓰는 지금, 인스타에 올릴 사진을 고르고 보정할 나중은 즐겁고 설렌다.  

 함께하지 않는 것은 모두 잊기로 한다. 다시 만나고 싶지 않기에 흐린 눈으로 잊어야 할 것을 모아 휴지통으로 보낸다. 예전의 행복은 그때로 남겨두기로. 내 생에 타임머신은 발명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휴지통을 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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