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
essay drive
작성자
디노
작성일
2024-03-25 15:54
조회
409
에세이 드라이브 55기 네 번째 글
7년전 임원들로부터의 부당한 대우를 이기지 못해 뛰쳐나간 후 4개월이 지났을 때부터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불안한 심리상태로 인해 연인과 헤어지면서 초조함은 생존 의지의 상실로 옮겨간 듯했다. 마음을 다스리고 다른 생각으로 채우기 위해 하루의 시작과 끝을 중랑천에서 보냈다.
평일 밤 강변의 산책로는 한적했고, 동부간선도로에는 퇴근하고픈 사람들의 욕망은 모른 채 바닥에 양면테이프를 붙여놓은 것 마냥 자동차들이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그들과 같은 속도로 지금의 기분에 맞춰 걷는다. 우울할 때는 되려 우울한 음악을 들어야 풀리는지 발라드 5곡만 모은 플레이리스트만 무한 재생시킨 채로.
어느 날 밤의 산책을 즐기던 중 이어폰 사이로 강한 비트의 신나는 뽕짝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어폰을 귀에서 잠시 떨어뜨려 놓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바라보니 공터에서 아주머니 십여 분이 리더의 힘찬 구령과 몸동작을 따라 하며 에어로빅에 심취해 계셨다. 다른 때였으면 다시 이어폰을 귀에 넣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을 텐데, 그때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시며 신나는 음악에 몸과 마음을 맡긴 그들을 먼발치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속에 들어가 함께할 용기는 없었지만, 지그시 바라보며 마음만은 힘차게 움직였다. 심장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하긴 마음은 가슴속에서 부풀어 오르니까 더 빨리 깨달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가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중랑천으로 발걸음을 옮겼을지도 모르겠다.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한 3월부터 그들은 매주 1번씩 에어로빅 시간을 가졌고, 나의 산책 스케줄도 그에 따라 바뀌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되었다. 대부분 집에 있었던 시절이라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건 그곳에서 밖에 느낄 수 없었기에 어찌 보면 살아가고자 하는 힘을 얻기 위함이었겠다.
중랑천 산책에서 중요한 장소는 중랑교 아래의 벤치였다. 눈 앞에는 강위를 떠 받치는 교각이 있는데 그곳에 집중하면 마치 매직아이 같은 느낌이다. 머리 위에서는 지나가는 차소리의 묵직한 저음이 내려앉으면서 다른 소리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선과 청각을 그곳에 뺴앗기면 세상과 분리된 듯한, 마치 노이즈 캔슬링 같다. 그때는 이어폰을 잠시 주머니에 넣어두고 하루동안 채워진 부정의 기운을 떠나 보냈다.
서울에 살면서 중랑교 같은 곳이 여럿 있었다. 동호대교 북단, 반포대교 남단, 목동교 그리고 양화대교. 동호대교 아래는 야경이 아름다워 자전거를 타면 휴게소 같은 곳이었고, 반포대교 남단은 군중 속에 홀로 있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강 건너 멀리 남산타워를 바라보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 그곳들에서 묵혀있던 마음을 내뱉거나 우울함을 극도로 끌어올려 벗어나고자 했다.
홍대, 합정 부근에서 일정이 있다면 항상 양화대교 위를 걸었다. 양쪽 모두 매력있지만 밤에는 역시 여의도 방향이 좋다. 야경 맛집이다. 특히나 비가 오고난 후 깨끗한 하늘 덕분에 서울의 밤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고, 그 날은 유난히도 함께 걷는 이들이 많았다. 단순히 이동을 위해서였을 수도 있지만,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도 적잖이 있었을 것이다. 가끔 자전거를 탄 채로 건너는 사람들을 보며 욕하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에 꽤나 도움이 되었다. (다리 위에서는 자전거를 타면 안되요!)
서울에 한강이 없었다면, 수많은 다리가 없었다면 내 삶은 지금과는 달라져있었을 것이다. 이것 또한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뉴욕에 센트럴 파크가 없었다면 그 만한 정신병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말 처럼. 이번에는 절대라는 말을 붙여도 될 듯하다.
뜬금 없지만 뉴욕에 가고 싶은 첫 번째 이유가 센트럴파크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얼마 전 재미있게 있는 에세이의 배경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그리고 브루클린 브리지를 걸으며 도시를 감상하고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
지난 주말, 망원동에 가기 위해 탄 버스는 성산대교를 건넌다. 저 멀리 망원한강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봄날을 즐기고 있었고, 몇몇은 오리 배를 타며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 다리 위에 있으며 그들의 일상을 바라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가끔 넓게, 멀리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버스를 타고 양화대교 전망카페에서 내린다. 선유도 한 바퀴를 돌고, 양화대교를 건너, 옥동식에서 돼지곰탕 한 그릇을 하거나 대흥역의 을밀대에서 시원한 평양냉면 한 그릇을 비워낸다. 그거면 된다. 서울살이.
나를 알고 싶어 매일 씁니다.
7년전 임원들로부터의 부당한 대우를 이기지 못해 뛰쳐나간 후 4개월이 지났을 때부터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불안한 심리상태로 인해 연인과 헤어지면서 초조함은 생존 의지의 상실로 옮겨간 듯했다. 마음을 다스리고 다른 생각으로 채우기 위해 하루의 시작과 끝을 중랑천에서 보냈다.
평일 밤 강변의 산책로는 한적했고, 동부간선도로에는 퇴근하고픈 사람들의 욕망은 모른 채 바닥에 양면테이프를 붙여놓은 것 마냥 자동차들이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그들과 같은 속도로 지금의 기분에 맞춰 걷는다. 우울할 때는 되려 우울한 음악을 들어야 풀리는지 발라드 5곡만 모은 플레이리스트만 무한 재생시킨 채로.
어느 날 밤의 산책을 즐기던 중 이어폰 사이로 강한 비트의 신나는 뽕짝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어폰을 귀에서 잠시 떨어뜨려 놓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바라보니 공터에서 아주머니 십여 분이 리더의 힘찬 구령과 몸동작을 따라 하며 에어로빅에 심취해 계셨다. 다른 때였으면 다시 이어폰을 귀에 넣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을 텐데, 그때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시며 신나는 음악에 몸과 마음을 맡긴 그들을 먼발치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속에 들어가 함께할 용기는 없었지만, 지그시 바라보며 마음만은 힘차게 움직였다. 심장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하긴 마음은 가슴속에서 부풀어 오르니까 더 빨리 깨달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가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중랑천으로 발걸음을 옮겼을지도 모르겠다.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한 3월부터 그들은 매주 1번씩 에어로빅 시간을 가졌고, 나의 산책 스케줄도 그에 따라 바뀌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되었다. 대부분 집에 있었던 시절이라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건 그곳에서 밖에 느낄 수 없었기에 어찌 보면 살아가고자 하는 힘을 얻기 위함이었겠다.
중랑천 산책에서 중요한 장소는 중랑교 아래의 벤치였다. 눈 앞에는 강위를 떠 받치는 교각이 있는데 그곳에 집중하면 마치 매직아이 같은 느낌이다. 머리 위에서는 지나가는 차소리의 묵직한 저음이 내려앉으면서 다른 소리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선과 청각을 그곳에 뺴앗기면 세상과 분리된 듯한, 마치 노이즈 캔슬링 같다. 그때는 이어폰을 잠시 주머니에 넣어두고 하루동안 채워진 부정의 기운을 떠나 보냈다.
서울에 살면서 중랑교 같은 곳이 여럿 있었다. 동호대교 북단, 반포대교 남단, 목동교 그리고 양화대교. 동호대교 아래는 야경이 아름다워 자전거를 타면 휴게소 같은 곳이었고, 반포대교 남단은 군중 속에 홀로 있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강 건너 멀리 남산타워를 바라보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 그곳들에서 묵혀있던 마음을 내뱉거나 우울함을 극도로 끌어올려 벗어나고자 했다.
홍대, 합정 부근에서 일정이 있다면 항상 양화대교 위를 걸었다. 양쪽 모두 매력있지만 밤에는 역시 여의도 방향이 좋다. 야경 맛집이다. 특히나 비가 오고난 후 깨끗한 하늘 덕분에 서울의 밤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고, 그 날은 유난히도 함께 걷는 이들이 많았다. 단순히 이동을 위해서였을 수도 있지만,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도 적잖이 있었을 것이다. 가끔 자전거를 탄 채로 건너는 사람들을 보며 욕하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에 꽤나 도움이 되었다. (다리 위에서는 자전거를 타면 안되요!)
서울에 한강이 없었다면, 수많은 다리가 없었다면 내 삶은 지금과는 달라져있었을 것이다. 이것 또한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뉴욕에 센트럴 파크가 없었다면 그 만한 정신병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말 처럼. 이번에는 절대라는 말을 붙여도 될 듯하다.
뜬금 없지만 뉴욕에 가고 싶은 첫 번째 이유가 센트럴파크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얼마 전 재미있게 있는 에세이의 배경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그리고 브루클린 브리지를 걸으며 도시를 감상하고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
지난 주말, 망원동에 가기 위해 탄 버스는 성산대교를 건넌다. 저 멀리 망원한강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봄날을 즐기고 있었고, 몇몇은 오리 배를 타며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 다리 위에 있으며 그들의 일상을 바라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가끔 넓게, 멀리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버스를 타고 양화대교 전망카페에서 내린다. 선유도 한 바퀴를 돌고, 양화대교를 건너, 옥동식에서 돼지곰탕 한 그릇을 하거나 대흥역의 을밀대에서 시원한 평양냉면 한 그릇을 비워낸다. 그거면 된다. 서울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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