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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서울수집.m4a 69'34" · 현장 사진 17매
SOURCE 01
서울수집.m4a — 강연 음성 녹음, 69분 34초 (직접 업로드)
SOURCE 02
IMG_1801–1819.jpeg — 강연 현장 사진 17매 (직접 업로드)
SPEAKER
서울수집 @seoul_soozip ↗ — 강연자의 인스타그램 아카이브
PROCESS
음성을 로컬 AI로 전사한 뒤 슬라이드 사진·웹 검증과 대조하여 재구성
FIELD RECORD · 강연 채록 · 2026년 여름

서울수집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는 방법

'기록'이라는 말이 무겁게 느껴진다면, '수집'이라는 말로 시작해도 된다. 인스타그램 계정 '서울수집' 운영자가 극장과 시장과 목욕탕과 버스 식당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며, 사진과 지도와 글과 인터뷰로 자신만의 기록법을 만들어 온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풀어놓은 70분의 강연을 표본 카드처럼 정리했다.

기록 형태
강연 채록 + 리서치 보강
강연자
'서울수집' 운영자 (도시 기록 활동가)
수집 연대기
2018 아현동 기록 → 현재 한남·보광 (진행 중)
강연 시점
2026년 8월 1일 *확정 경위는 편집자 노트
분량
본강연 약 58분 + 질의응답 약 11분
"도시가 변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존재했다가 사라지기를
무한히 반복한다." 강연 첫 슬라이드에서
EXECUTIVE SUMMARY

다섯 문장으로 읽는 강연

'기록' 대신 '수집'. 기록은 활용까지 생각해야 해서 부담스럽다. 우표나 엽서를 모으듯 좋아하는 것을 가볍게 모은다는 마음으로 '수집'이라는 단어를 골랐고, 그 대상을 눈에 보이지 않는 '도시'로 정한 것이 모든 활동의 출발점이 됐다.
사라짐을 목격하며 질문이 생겼다. 원주의 단관극장, 상도동의 건물형 시장, 아현동의 목욕탕, 강남의 버스 식당 스낵카, 군부대 자리의 아파트 — 일상 공간이 시대의 논리에 따라 사라지는 것을 반복해 마주하며 "이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는 것은 없을까"를 묻기 시작했다.
아현동에서 방법을 실험했다. 재건축을 앞둔 동네를 반년 동안 매주 찾아가 사진을 찍고, 지도를 손으로 그리고, 버려진 물건의 위치를 표시하고, 일지를 쓰고, 독립출판 사진집까지 만들며 기록의 형식을 하나씩 몸으로 익혔다.
사진 → 키워드 → 리서치 → 글쓰기 → 인터뷰의 순환. 찍은 사진을 다시 보고 관심 대상을 골라 키워드를 정한 뒤, 서울역사박물관·대한뉴스·국토지리정보원 같은 공공 아카이브로 빈칸을 채우고, 해석을 덧붙여 글을 쓰고, 구술 인터뷰로 문헌의 빈틈을 메운다. 조각 글이 쌓이면 맥락과 흐름이 생기고, 그것이 기록이 된다.
결론: 매뉴얼은 없다. 1단계·2단계식 매뉴얼은 획일적인 결과물만 만든다. "왜 사라지는 것을 기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며 이것저것 해 본 시행착오의 과정 그 자체가, 결국 각자의 방법으로 자리 잡는다.
CH.00 · PROLOGUE

왜 '기록'이 아니라 '수집'인가

강연자는 방법을 가르치는 대신, 자신의 수집이 기록이 되기까지의 흐름을 통째로 보여주는 쪽을 택한다. 그 첫 갈림길은 단어 하나였다.

CH.00 채집 요약
  • '기록'은 나중의 활용까지 생각해야 해서 부담스러운 말 — 그래서 가벼운 진입을 위해 '수집'을 골랐다.
  • 우표·엽서를 모으듯, 수집의 맥락은 그대로 두고 대상만 눈에 보이지 않는 '도시'로 바꿨다.
  • 오늘 강연은 방법을 가르치는 대신, 수집이 기록이 되기까지의 흐름을 통째로 따라간다.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는 방법을 말씀드리기 전에, 우리가 왜 사라지는 것을 기록해야 하는지부터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제 계정 이름이 '수집'이잖아요. 이 수집이 기록이 되기까지의 흐름을 보여드리면, 방법은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보이실 것 같아서요.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하세요"라고 알려주는 방식이 아니라, 그 흐름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익히실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계정 이름을 왜 '서울수집'이라고 지었느냐 하면 — 기록이라는 건 기록하는 행위 자체도 중요하지만, 나중에 이 기록들을 모아서 어떻게 활용할지까지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기록을 한다'고 하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거든요. 저는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내가 관심 있는 것들을 조금씩 남겨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수집'이라는 단어를 골랐습니다.

보통 수집이라고 하면 우표나 엽서 같은, 눈에 보이는 물건을 모으는 걸 떠올리시잖아요. 저는 그 맥락을 그대로 가져왔어요. 수집이라는 행위 자체가 자기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을 모으는 일이니까, 대상만 달라질 뿐 맥락은 같다고 본 거죠. 그렇다면 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도시'라고 하는 공간을 한번 수집해 보자 —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기록 = 부담, 수집 = 취미의 언어. 진입장벽을 단어로 낮춘다
강연장 스크린에 띄워진 첫 슬라이드 사진
FIG.01강연의 첫 명제가 띄워진 스크린. 이 문장이 이후 70분 전체를 지배한다.
CH.01 · COLLECTING

채집함: '도시'와 '서울'이라는 키워드

수집의 대상은 마인드맵 하나로 요약된다. 책, 역사, 건물, 주거, 도시 변화 —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모이는 곳은 인스타그램이다.

CH.01 채집 요약
  • 채집 키워드는 '도시'와 '서울' — 그 아래로 책, 도시사, 오래된 건물, 주거, 도시 변화가 가지를 뻗는다.
  • 대중서·지자체 발간물·동료 기록가의 책을 함께 모아, 같은 키워드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을 비교한다.
  • 젠트리피케이션과 재개발·재건축·도시재생 등 '도시 변화'에 집중하고, 정리한 것은 인스타그램에 공유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수집해 왔느냐면, '도시'와 '서울'이라는 큰 키워드를 바탕으로 제가 좋아하고 관심 가는 것들을 모은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화면에 배치해 둔 단어들은 여러 가지 중에서도 특히 집중해서 모으고 있는 것들이고, 그 밖의 것들도 많이 모으고 있어요.

예를 들면 이 두 키워드로 쓰인 책을 굉장히 많이 모읍니다. 모은 책을 다 읽지는 못하지만, 가지고 있으면 이런 이야기를 할 때 표현이 훨씬 풍부해지거든요. 대중서만 모으는 게 아니라 각 지자체가 지역 차원에서 발간하는 책들도 찾아보고, 저처럼 도시와 서울을 주제로 기록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쓰신 책도 모읍니다. 똑같은 키워드를 두고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니까,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거죠.

역사를 좋아해서 도시사(都市史), 서울사라는 측면에서도 들여다봅니다. 학교에서는 대부분 대한민국 전체의 역사를 배우잖아요. 그런데 이 나라에는 수많은 도시가 있고 도시마다의 역사가 있는데, 그걸 들어볼 기회는 많지 않아요. 개인이 관심을 가지고 관련된 책을 읽으며 하나둘 알아가면, 내가 사는 도시를 훨씬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걸 혼자만 알고 있으면 아쉬우니까, 잘 정리해서 인스타그램에 공유하고 있어요.

걷는 것도 좋아해서 자주 걸어 다니는데, 걷다 보면 제일 많이 마주치는 게 건물입니다. 특히 서울은 건물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데, 저는 신축보다는 오래된 건물 — 딱 봤을 때 어떤 이야기나 역사가 읽히거나, 그 건물을 지은 사람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는 건물 위주로 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집'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 변화 과정에서 우리가 되짚어야 할 부분은 없는지 질문하기 위해 물리적 공간을 많이 봐요. 도시와 연관된 키워드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저는 '도시 변화'에 집중합니다. 도시가 변하면서 생겨나는 현상들 —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나, 도시 공간의 재구성을 유도하는 재개발·재건축·도시재생 사업 같은 것들을 관심 있게 살펴보고, 공유할 만한 것들을 인스타그램에 모아서 글을 쓰는 개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렇게 제가 좋아하는 것에서 출발해 점점 확장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도시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집 대상 마인드맵 슬라이드 사진
FIG.02수집 대상 마인드맵. '도시'와 '서울'을 중심으로 책·역사·건물·주거·도시 변화가 가지를 뻗는다.
CH.02 · SPECIMENS

사라짐의 표본들 — 다섯 개의 목격담

수집을 위해 다니던 공간들이, 의도하지 않았는데 자꾸 사라졌다. 극장이, 시장이, 목욕탕이, 버스 식당이, 군부대가. 강연의 한가운데 놓인 다섯 표본을 카드로 정리했다.

CH.02 채집 요약
  • 수집하러 다니던 공간들이 의도치 않게 계속 사라졌다 — 책방·슈퍼·시장·골목, 그리고 그곳의 사람과 커뮤니티까지.
  • 다섯 표본: 원주 아카데미극장, 상도동 영도시장, 아현동 행화탕, 강남 스낵카, 금천 부대 터.
  • 알고 보는 도시와 모르고 보는 도시는 다르다 — 변화는 못 막아도 '놓치는 것은 없는가'라고 묻는 일은 개인의 선택이다.

수집하는 과정에서 제가 주로 가는 곳은 어떤 동네, 어떤 지역, 어떤 도시 — 주로 물리적인 공간인데요. 그런 공간들을 살펴보다 보니, 제가 의도한 게 아닌데 자꾸 그 대상들이 사라지더라고요. 사라졌거나, 사라질 예정이거나. 동네에 있던 책방, 슈퍼, 시장, 골목이 계속 사라지고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사라집니다. 그 공간에 살아가던 사람들은 변화가 일어나면 어디론가 이사를 가야 하니까 사라지고, 그 사람들이 맺고 있던 커뮤니티와 그들이 하던 행위들도 같이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공교롭게도 제가 거주하거나 다녔던 지역들이 그런 변화가 빨리 일어나는 곳이었습니다. 서울을 넓게 보면 20년이 지나도 별로 변하지 않는 지역이 있고, 2~3년, 5년 안에 금방금방 바뀌는 지역이 있거든요. 저는 그 빨리 변하는 지역들 위주로 생활했던 거죠. 처음에는 '사라진다'는 개념 자체가 저한테도 없었는데, 어느 순간 이걸 반복해서 목격하고 마주하게 되니까 — 과연 이게 의미하는 게 뭘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됐어요.

SPECIMEN 01 · 극장

원주 아카데미극장

강원 원주 · 1963 개관 · 2023.10 철거

일대에 여럿 있던 단관극장 중 최근까지 남은 마지막 극장. 원주가 문화도시로 지정되며 시민들이 극장을 지역 자원으로 활용하자고 시의 매입까지 단계적으로 이끌어냈지만, 시장이 바뀌면서 보존·리모델링 계획이 철거로 뒤집혔다.

현재: 주차장 + 소규모 야외무대
↗ 기사: 철거 반대 시민 24인 무죄 확정 (주간경향, 2026.4)
SPECIMEN 02 · 시장

상도동 영도시장

서울 동작구 · 1968 개장 · 2021 철거

1960년대 후반에 지어진 건물형 시장. 당시로서는 규모도 크고 형식도 앞선 곳이었지만, 강연자가 우연히 발견했을 때는 이미 재개발이 확정된 상태였다. 동작구 행정복합타운이 들어서기 전까지 철거의 순간까지를 기록했다.

현재: 동작구 종합행정타운 부지
SPECIMEN 03 · 목욕탕

아현동 행화탕

서울 마포구 · 1958 건립 · 2021 철거

재개발이 확정된 동네의 목욕탕을 한 문화기획자가 전시·문화 프로그램·카페로 살려 썼다. "철거되니까 철거되는구나" 하는 것과, 철거되기까지 공간에 의미를 부여해 쓰는 것은 다르다. 마지막에는 공간의 '장례식'이 열렸고, 강연자도 부의금을 내고 벽에 작별 인사를 남겼다.

현재: 철거 완료, 아현동 재개발 구역
► 영상 기사: 목욕탕을 '3일장' 지내다 (MBC 뉴스데스크, 2021.5)
SPECIMEN 04 · 버스 식당

강남 스낵카

서울 강남 · 1970년대 말~ · 1대 잔존

강남 개발기의 일용직 노동자들이 끼니를 해결할 곳이 없자 폐차 버스를 개조해 만든 이동식 식당.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정부가 아예 공식적으로 버스 13대를 공급했고, 번호판은 모두 '86'으로 시작한다. 강연자는 한티역 인근 스낵카의 소멸 기사를 보고 직접 찾아가 비빔밥을 먹었다.

현재: 강남에 단 1대 (역삼 스낵카)
↗ 기사: 푸드트럭 원조 스낵카, 서울에 딱 한 대 (이데일리 스냅타임, 2023.1)
SPECIMEN 05 · 군부대

금천구 부대 터

서울 금천구 · 부대 이전 후 재편

금천구청 위쪽, 군부대가 있던 자리가 이전 후 롯데캐슬 아파트 단지가 됐고, 최근에는 일대에 서서울미술관이 들어섰다. 특수한 목적의 공간이 사라지면 잠시 비었다가 새로운 공간이 들어오고, 도시는 새로운 성격으로 재구성된다.

현재: 아파트 단지 + 서서울미술관

시장이라는 공간은 일상에서 자주 보는 곳인데, 어느 순간 시대적인 상황에 의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인지했습니다. 스낵카도 마찬가지예요. 저랑 버스가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 버스에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지만, 이런 게 있다니까 가 봤고, 내부를 보면서 그 시대를 반영하는 공간이 강남에 남아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된 거죠. 이런 걸 알고 도시를 바라보는 것과 모르고 바라보는 것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결국 도시가 변하는 걸 우리 개인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 안에서 무언가가 계속 사라졌다 생겨났다를 반복한다는 것을 알게 되죠. 그걸 당연하게 여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을까 — 그 질문을 한번 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것도 사실 개인의 선택입니다. "잘 모르겠어, 그냥 지나쳐야지" 하면 지나가는 거고요. 저는 이걸 조금 들여다보면서, 그 과정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 인스타그램에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 오고 있는 겁니다.

"이런 걸 알고 도시를 바라보는 것과
모르고 바라보는 것은 다르다."
— 강남 스낵카에서 비빔밥을 먹은 뒤
CH.03 · AHYEON

아현동, 반년의 기록 — 철거될 때까지

질문이 쌓여가던 무렵, 회사 근처를 둘러보다 우연히 발견한 동네가 실험실이 됐다. 아현2구역. 2018년 8월부터 2019년 2월까지, 매주 주말.

CH.03 채집 요약
  • 회사 근처에서 우연히 발견한 아현2구역을, 사업 재개부터 철거까지 반년간 매주 주말 기록했다.
  • 사진에서 시작해 지도 손그림, 버려진 물건·손made 우편함·급식소 위치 표시, 관찰 일지로 도구가 하나씩 늘었다.
  • 폴라로이드와 디카는 제지당해 휴대폰이 주력이 됐고, 결과물은 독립출판 사진집 「철거풍경록」으로 남았다.
  • 재개발은 도시 조직을 통째로 지우므로, 기록하지 않으면 그곳이 어떤 동네였는지 알 길이 사라진다.

이런 질문들이 계속 생겨나는 과정에서, 우연히 아현동이라는 재개발 동네를 발견하게 됐어요. 알고 찾아간 게 아니라 근처에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주변을 둘러보다 마주친 동네였습니다. 언덕배기에 가파른 계단이 많고, 주택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듯 밀집한 동네였는데 — 그냥 지나가면 여기서 재개발을 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동네를 찬찬히 둘러보면 지금 뭔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재건축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현수막이 군데군데 걸려 있었거든요. 정확한 명칭은 아현2주택 재건축 구역인데, 반대하는 분들이 남아 계셔서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대부분의 주민은 이미 이주해서 건물 내부는 텅텅 비어 있었고요.

그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지금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뭘까'를 생각해 봤던 것 같아요. 이전의 경험들이 쌓여 있으니까요. 이 동네도 결국 사라지게 될 텐데, 그냥 두는 게 맞을까. 그래서 건물들이 다 철거될 때까지 한번 기록해 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사실 그때는 기록이라는 개념보다는, 사진을 찍어서 사라지는 과정을 남기자는 쪽이었어요. 사진을 계속 찍으면서 동네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눈으로 보게 된 거죠. 골목이 굉장히 많았고 아직 철거되지 않은 건물이 많아 기존 골목의 형태와 동네의 모습이 남아 있었습니다. 반면 어떤 구역은 이미 건물이 철거돼 잔해가 바닥에 남아 있고 공사 가림막이 설치돼 있었어요. 풍경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상태였던 거죠. 시간이 지나니 철거된 구역에는 풀이 자라났고, 가림막에 빨간 글씨로 어떤 이름이 적혀 있길래 찾아보니 조합장인 것 같더라고요. 이분과 관련해 뭔가 일이 일어나고 있다 — 그렇다면 중단된 사업이 다시 진행돼 건물이 철거될 때까지 기록해 보자. 그래서 2018년 8월부터 2019년 2월까지 매주 주말마다 가서 사진을 엄청나게 찍었습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아파트가 완성되어 있는데, 요즘도 가끔 가서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어요.

그때 찍은 사진들은 원래 그냥 인화만 해서 가지고 있으려다가, 키워드로 분류해 독립출판 형태의 사진집으로 만들었습니다. 「철거풍경록」이라는 책이에요. 그리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사진만 계속 찍다 보니, 어느 순간 '사진 말고 다르게 기억해 볼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됐고 — 그림을 정말 못 그리는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건물 하나하나를 드로잉하면 제일 좋겠지만 그 정도 실력은 아니라서, 지도 앱에서 볼 수 있는 상태의 지도를 여러 번 반복해서 그렸어요.

그리면서 느낀 건 이겁니다. 이미지로 지도만 보면 외관만 보고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끝나는데, 하나하나 그리다 보면 골목길이 어떻게 구성되고 연결되는지, 골목과 골목 사이에 집들이 어떤 식으로 배치되어 있는지 알게 돼요. 주택가지만 사이사이 가게가 몇 개 있었는데 어떤 가게가 있는지 표시도 해 보고요. 그렇게 그려 가면서 동네가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구나, 건물도 하나하나 모양이 다 다르고 그것들이 채워져서 하나의 동네를 이루고 있구나를 인식하게 됐습니다. 이걸 2018년, 완전히 철거되기 전에 그렸는데 — 지금 아파트 단지가 된 지도를 옆에 놓고 보면 길이나 모양이 전부 달라져 있잖아요. 재개발 사업이라는 건 기존의 도시 조직을 싹 지우고 새로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하거나 사진을 남기거나 기억하지 않으면, 바뀌고 난 다음에는 과거에 여기가 어떤 동네였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되는 거죠.

지도를 손으로 반복해 그린 기록 슬라이드 사진
FIG.03지도 앱의 지도를 손으로 반복해 그린 기록. 그리는 행위가 골목의 구조를 몸에 새긴다.

전체 동네에서 블록마다 특색이 있을 수 있으니 블록을 일부 잘라서 그려 보기도 했고,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굉장히 많은 물건을 버리고 갔기 때문에 그 물건들을 하나씩 찍으면서 버려진 위치가 어디였는지도 표시해 봤습니다. 특이해 보이는 창문 같은 특징이 있으면 찍어 보기도 하고요. 촬영은 휴대폰, 디지털카메라, 폴라로이드 세 가지로 하려 했는데 — 사실 폴라로이드와 디지털카메라는 쓰지 못했어요. 들고 찍고 있으면 관리하시는 분들이 와서 찍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즉각적으로 찍으며 기록을 남길 방법은 결국 휴대폰밖에 없다는 생각에 휴대폰으로 많이 찍었고, 폴라로이드 사진은 딱 한 번 찍었을 때 나온 결과물 하나가 유일합니다.

블록마다의 특성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는데, 어떤 블록에는 손으로 만든 우편함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 우편함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주소를 체크해 그려 보고, 이 동네에 길고양이가 많아서 고양이를 돌보던 캣맘들이 설치한 급식소가 어디에 있었는지도 표시해 보면서, 동네의 구성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다녀와서 지도나 그림을 그리는 것과 별개로, 매주 가다 보면 도시를 관찰하며 드는 생각들, 이 공간을 스스로 해석하게 되는 시선들이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일기처럼 짧게 적었어요. 동네의 공간이 달라지는 걸 포착할 때마다 적으면서 일지를 남긴 거죠. 공식적으로는 「철거풍경록」이라는 책을 만들었고, 비공식적으로는 일지를 계속 썼던 셈입니다.

사진 → 지도 그리기 → 위치 표시 → 일지. 도구가 하나씩 늘어난다
CH.04 · LEFT BEHIND

남겨진 것들 앞에서 — 액자, 서류, 고양이, 나무

기록하러 자주 가다 보면, 대충 볼 것도 이상하게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그 시선은 공간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사람 아닌 존재들로 넓어진다.

CH.04 채집 요약
  • 깨진 창 너머 남겨진 액자가 '이 동네에 살던 사람들'에 대한 질문으로 시선을 확장시켰다.
  • 개인정보 서류가 펼쳐진 채 버려진 풍경, 철거 후 유일한 보행자가 된 경험, 그리고 길고양이라는 또 다른 주민.
  • 둔촌냥이 이주(「고양이들의 아파트」)와 개포 나무 추적(「콘크리트 녹색섬」)이 비인간 존재로의 확장 사례다.
  • 아현시장의 업종 변화와 시장 안 재개발 사무실 두 곳 — 소멸과 생성이 같은 자리에서 동시에 관찰된다.

기록을 하려고 자주 가다 보니까,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도 한 번 더 보고, 이게 의미하는 게 뭘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창문이 깨져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건물이 몇 있었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흔적이 남아 있으니 보게 되거든요. 그중 한 집에 액자가 걸려 있었어요. 액자 속 사진의 풍경이 굉장히 아름다운 시간들인 것 같은데, 왜 이걸 그냥 걸어 두고 갔을까. 개인의 사정이 있었겠죠. 그런데 그 남겨진 액자를 통해서, 원래는 동네만 바라보다가 이 동네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지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지만,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고, 왜 이 사람들은 재개발 때문에 이사를 가야만 했을까를 생각해 보고 — 그런 식으로 약간의 확장을 해 보게 된 거예요.

버려진 물건 중에는 개인정보가 담긴 서류가 생각 외로 많았습니다. 보험 서류, 통장 사본, 신분증, 등본 같은 것들이 개인정보가 그대로 적힌 채로 — 한군데 잘 모아서 버린 것도 아니고 펼쳐진 채로 버려져 있는 걸 보면서, 생각보다 사람들이 개인정보를 흘리고 다니는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솔직히 나쁜 마음을 먹으면 누군가 악용할 수도 있잖아요.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깨지는 경험이었습니다.

건물이 거의 다 철거되고 나서는, 일대를 돌아보는 사람이 유일하게 저밖에 없었어요. 그 전에는 오가는 사람이 많았는데 철거로 길이 막히니 더는 돌아다닐 사람이 없었던 거죠. 저만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 이 일대에 사람만 살았던 게 아니라, 여기를 영역으로 갖고 있던 길고양이들도 살고 있었다는 걸 그때 깨닫게 됐습니다. 도시 공간을 바꾸는 건 인간이 더 나은 환경에서 살기 위해서인데, 그 안에는 사람만 사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생명체들이 공존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실제 변화 과정을 보면 다른 생명체의 생존권에 대한 고려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물론 사람의 주거권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걸 생각하는 게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기존 생태계의 변화를 최소한으로 지키면서 같이 갈 방법은 뭘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실제 사례가 있습니다. 강동구 둔촌주공 아파트 — 굉장히 큰 대단지인데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단지 안에 살던 수많은 길고양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민들과 캣맘들이 논의했고, 공사 시작 전 일정 기간을 정해 고양이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는 프로젝트를 실제로 진행했어요. '이사하는 둔촌냥이'라는 프로젝트입니다. 그 과정을 담은 영화가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들의 아파트」이고요. 이런 사례가 늘어날수록 도시 공간을 해석하는 방법, 다른 존재와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할 여지가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연 생태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아현동을 기록하면서 여름, 가을, 겨울, 봄 — 네 계절을 그 동네에서 보냈는데, 사람은 살고 있지 않지만 자연의 풍경이 계절마다 어떻게 변하는지를 체감할 수 있었어요. 재개발이 진행되면 이 생태계도 다 훼손되고 사라지는 건데,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같이 가는 변화를 유도할 수는 없을까. 실제로 개포주공 아파트의 한 주민은 단지의 나무들이 공사가 시작되면 베어지는데, 그 나무들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추적한 영화를 만드셨습니다. 「콘크리트 녹색섬」이라는 영화이고, 이번에 8월 19일에 개봉한다고 하더라고요. 이분들은 영상이라는 미디어로, 영화라는 형태로 더 대중적으로 알리는 — 이것도 기록의 한 형태죠.

저는 영화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아현동 일대에 지속적으로 가서 사진으로 변화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근처의 아현시장이라는 오래된 시장이 지금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도요. 아파트가 생기면서 시장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성격이 바뀌고, 주변의 오래된 상가 건물들이 신축으로 바뀌면서 업종이 싹 달라졌는데, 그 영향이 시장과 연결되어 있다 보니 시장 내부 가게들의 업종도 많이 바뀌는 걸 볼 수 있었어요. 원래 없던 와인샵이 생겼고, 어린이 서점이 생기기 시작했고, 소품샵이 생겼고,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 같은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가 보니 — 아직 재개발되지 않은 주택가와 예전 그대로의 시장이 남아 있는데, 그 시장 내부에 재개발을 추진하는 사무실이 두 개나 생겼더라고요. 이런 변화들이 의미하는 게 뭘까를 조금 더 생각해 보게 되는 거죠.

전반적으로 이런 흐름은, 기존에 형성되어 있던 동네 생태계가 소멸하고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소멸하는 것을 사진 찍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사라지는 것을 기억한다는 건 어떤 이유에서인가 — 이 질문을 놓치지 않고 계속 살펴보면서 이것저것 시도하게 되는데, 결국 그렇게 시도했던 것들이 방법으로 자리 잡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는 일은,
사랑하는 도시와 동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과정이다."
— 그리고 누가, 왜, 누구를 위해 기록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CH.05 · METHOD

걷고, 찍고, 다시 본다 — 홀로 남은 주택 한 채

여기서부터가 방법의 해부다. 인스타그램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실제 순서: 최대한 많이 가서 찍는다, 찍은 것을 다시 본다, 파고들 대상을 정해 키워드를 세운다.

CH.05 채집 요약
  • 한남동·보광동 재개발 일대를 지금도 매주 주말마다 가서 최대한 자세히 관찰하고 찍는다.
  • 핵심은 '다시 보기' — 찍은 사진 안에서 발견할 것을 골라내고, 더 알고 싶은 대상에 키워드를 세운다.
  • 사례: 홀로 떨어져 비어 있는 오래된 주택 한 채 → 어떤 집인지, 언제·왜 지어졌는지 묻는 리서치가 시작된다.

사라지는 것을 어떻게 기록했나 — 앞에서 말씀드린 사진 찍기, 그림 그리기, 책 만들기가 있었고,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이건 제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콘텐츠를 만드는 방식과 연결됩니다. 제가 지금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사진을 찍는 거예요. 그래서 대상이 되는 지역이나 동네, 공간에 최대한 많이 가서 관련된 사진을 최대한 많이 남깁니다. 한남동·보광동 일대가 지금 엄청난 규모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어서, 지금도 매주 주말마다 가서 사진 기록을 계속 남기고 있거든요. 가서 찍으면서 이 동네를 최대한 자세하게 관찰합니다.

그다음 관건은 찍은 사진들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인데 — 찍었던 사진을 다시 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다시 보는 과정에서 이 안에서 내가 발견할 수 있는 게 뭔가를 살펴보고, 그걸 끄집어내서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찍은 것들 중에서 더 깊이 알아보고 싶은 것을 정해서 키워드를 설정합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굉장히 오래되어 보이는 주택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어떤 주택인지 모르고 일단 찍었어요. 왜냐하면 다른 집들은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이 주택만 유일하게 단독주택처럼 따로 떨어져 있었고, 앞쪽에 약간 넓은 부지가 있어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었거든요. 왜 이 주택만 혼자 동그마니 떨어져 있을까, 그리고 찍을 때 보면 비어 있는 상태인데 왜 이 상태로 계속 유지되고 있을까 — 의문이 들어서 이 주택에 대해 알아봐야겠다고 정한 겁니다. 관심 대상을 정한 다음에는 무엇을 볼 것인가를 세웁니다. 이 주택은 도대체 어떤 주택이며, 언제 형성됐고, 지은 목적은 무엇이고, 어떻게 생겼는가 — 이런 것들을 하나씩 살펴보는 거예요. 혼자서는 알 수 없으니, 자료를 찾아보게 됩니다. 리서치를 하게 되는 거죠.

사진 다시 보기와 키워드 설정 방법을 설명하는 슬라이드 사진
FIG.04방법 슬라이드. 찍은 사진을 다시 보고, 관심 대상을 정하고, 무엇을 볼 것인지 질문 목록을 세운다.
"찍는 것"만큼 "다시 보는 것"이 방법이다
CH.06 · ARCHIVES

자료가 빈칸을 채운다 — 상이용사 주택에서 김여정의 에세이까지

한 장의 사진이 박물관 조사 보고서를 만나고, 60년 된 뉴스 영상을 만나고, 한 권의 에세이를 만난다. 리서치는 사진에 이름을 붙이고, 이름은 동네 전체의 이해로 확장된다.

CH.06 채집 요약
  • 서울역사박물관의 보광동 지역 조사(2007) 자료와 매칭해, 찍어 둔 주택이 '상이용사 주택'임을 확인했다.
  • 입주식을 담은 대한뉴스 영상으로 시야를 넓히고, 주변에 남은 주택들을 추가로 촬영했다.
  • 김여정 「우리가 서로를 잊지 않는다면」으로 확장 — 불꽃축제 소리가 누군가에게는 전쟁의 기억이라는 것을 배웠다.
  • 이렇게 쓰는 공공 아카이브 목록을 QR로 청중과 공유했다(이 문서의 '원자료 서고'가 그 디지털판이다).

저는 지역과 동네를 많이 보다 보니 서울역사박물관 자료를 활용합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해마다 두 개의 동네를 정해 지역 자원 조사를 하거든요. 그 조사 자료를 그냥 갖고만 있는 게 아니라 웹에 전부 업로드해 놓아서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고, 이북으로도 볼 수 있고, 책자로 제작해 판매도 합니다. 이런 자료를 활용하면 내가 처음에 그냥 찍었던 사진에 정보들이 모이게 되는 거죠. 실제로 한남동·보광동·이태원 일대의 지역 조사 자료가 있는데, 2000년대에 — 이제 20년 가까이 지난 조사입니다만 — 그때 조사했던 내용을 지금 시점과 비교해서 많이 보고 있어요. 내가 찍은 사진과 이분들이 당시 남겨 놓은 자료를 매칭해서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는 겁니다.

이 조사 자료는 사진만 올려놓는 게 아니라 아래쪽에 어떤 주택인지, 언제 지어졌는지 같은 정보를 간략하게 적어 놓거든요. 그걸 보고 제가 찍은 주택이 뭐였는지 알게 됐어요. 상이용사 주택이었습니다. 상이용사라는 건 전쟁 때 부상을 입은 군인들을 지칭하는 말이고, 그분들이 살 수 있는 주택을 당시 정부에서 공급했던 거예요. 그렇게 공급된 상이용사 주택이 보광동에 지어졌고, 그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던 거죠.

그런데 제가 본 건 딱 한 채잖아요. 이 집 말고도 주변에 여러 채가 있었을 텐데 다 어디로 갔을까 — 그런 생각으로 자료를 더 찾다 보니, 당시 상이용사 주택이 지어졌을 때 입주식을 했던 영상 자료가 남아 있더라고요. 짧게 지나가긴 하지만 당시 보광동의 풍경을 살짝 볼 수 있고, 상이용사 주택 여러 채가 지어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진 찍었던 위치를 기준으로 다른 곳에도 상이용사 주택이 남아 있지 않을까 살펴보니 실제로 많이 남아 있더라고요. 그 이후에 가서 남아 있던 주택들을 사진 기록으로 남겨 놨습니다.

↳ 그 영상 보기: 대한뉴스 제190호 '상이용사 입주식 거행' — e영상역사관

여기서 끝내는 게 아니라 조금 더 확장해서 생각해 봅니다. 상이용사는 결국 전쟁과 연결된 사람들인데, 그렇다면 이분들 말고도 6·25 전쟁을 경험한 분들이 이 일대에 거주하고 있지 않을까. 보광동에 정착한, 전쟁을 경험한 주민들의 이야기는 없을까 — 열심히 리서치를 하다가 책 한 권을 발견했어요. 김여정 작가님이 에세이 형식으로 쓰신 「우리가 서로를 잊지 않는다면」입니다. 보광동에 살고 있는, 6·25를 경험하신 주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작가님이 주민들과 관계를 맺으며 인터뷰한 내용도 있고 그냥 일상의 이야기들도 있는데, 이런 것들이 보광동이라는 지역 전체에 대한 이해를 돕는 거죠. 이 동네에 이런 주택이 지어졌고, 거기 살았던 부상 입은 군인들이 있고, 연관해서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 이렇게 확장해 나가면서 이해가 깊어지는 겁니다.

이 책에서 굉장히 인상 깊게 본 대목이 있어요. 9월, 10월쯤 여의도에서 불꽃축제를 하잖아요. 그런데 그 불꽃이 터질 때, 6·25를 경험하신 주민분들에게는 그 소리가 전쟁 때 폭탄 떨어지는 소리와 비슷하게 들려서, 이 기간 동안 바깥에 나오지 않으신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똑같은 불꽃축제라는 키워드가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낭만적으로 보이고,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슬프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구나 — 그 지점을 인식하게 됐던 것 같아요.

"같은 불꽃놀이가 누군가에게는 낭만이고,
누군가에게는 피하고 싶은 소리다."
— 김여정 「우리가 서로를 잊지 않는다면」을 읽고

서울역사박물관뿐만 아니라 참고할 수 있는 자료들이 업로드되어 있는 사이트가 쭉 있습니다. 말로만 하면 잘 모르실 것 같아서, QR을 찍으시면 볼 수 있게 리스트를 정리했어요. 웹 주소와 함께, 들어가면 어떤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지 유형을 분류해 뒀습니다. 특히 역사나 공간 구성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관심 있는 분들은 이 사이트들을 활용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참고 자료 사이트 목록과 QR 코드 슬라이드 사진
FIG.05참고 자료 사이트 목록 슬라이드. 서울역사박물관부터 항공사진 서비스까지, 공공 아카이브의 지도를 QR로 나눠 준다.
CH.07 · WRITING

글쓰기, 기록이 되다 — 조각 글이 맥락을 만들 때

사진과 자료가 모이면, 마지막 선택은 글쓰기다. 아이폰 메모에서 시작한 조각 글이 쌓여 흐름이 되는 과정, 그리고 강연에서 가장 또렷한 정의 하나.

CH.07 채집 요약
  • 파이프라인: 아이폰 메모에 느낀 그대로 쓰기 → 구글 시트에 정리 → 인스타그램 업로드.
  • 조각 글이 쌓이면 서로 연결되며 맥락과 흐름이 생기고, 그것이 하나의 기록이 된다.
  • 정의: 글쓰기 = 생각의 구조화·표현·창조 / 기록 = 사실·정보를 남기는 행위 — 서울수집은 둘의 결합이다.
  • 아무리 객관적 자료가 있어도 관점에 따라 빈틈이 생긴다 — 그 빈틈은 인터뷰로 채운다.

이렇게 확보한 자료들을 어떻게 기록해 나갈 것인가 — 저는 글쓰기라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현장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과, 아까 그 사이트들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조합해서, 이걸 어떻게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 글을 써 보는 거예요. 글을 정확하게 쓸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내가 느끼는 그대로 적는데, 저는 아이폰 메모에 쭉 쓰고, 어느 정도 쌓이면 구글 시트에 정리하고, 그다음에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

결과적으로 인스타그램에는 조각조각, 단편의 이야기처럼 업로드가 되는데 — 이게 계속 쌓이다 보면 서로 연결되면서 맥락이 만들어지고 흐름이 형성돼서, 결국 하나의 기록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이는 거예요.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들 것 같아요. 글쓰기와 기록의 차이는 무엇인가. 글쓰기는 내 생각을 구조화해서 표현하고 창조하는 행위입니다. 기록은 거기에 더해서, 글쓰기의 대상 혹은 주제가 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정보와 사실을 남기는 행위고요. 저는 이 두 개를 합친 것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기록을 하다 보면 분명히 헛점이 생깁니다. 객관적인 자료가 아무리 있어도, 누가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관점이 달라지고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그 빈틈을 어떻게 채우느냐 — 인터뷰를 하는 겁니다.

글쓰기 = 생각의 구조화·창조 / 기록 = 사실·정보를 남기는 행위. 서울수집 = 둘의 결합
01 걷기 · 촬영 대상 지역에 최대한 자주 간다 02 다시 보기 찍은 사진에서 발견한다 03 키워드 설정 더 알고 싶은 것을 정한다 04 아카이브 리서치 박물관 · 뉴스 · 항공사진 05 글쓰기 · 공유 해석을 붙여 조각 글로 쌓는다 06 구술 인터뷰 문헌의 빈틈을 사람이 채운다 기록의 빈틈이 다시 질문이 된다 COLLECTING → RECORDING LOOP
DIAGRAM 01강연 전체에 흩어져 있는 방법을 하나의 순환으로 재구성했다. 어느 단계에서 시작해도 고리는 이어진다.
CH.08 · INTERVIEW

인터뷰, 빈틈을 채운다 — 청계천변 판자촌과 금호극장

문헌이 닿지 못하는 곳은 사람의 기억이 닿는다. 판자촌에 살았던 어르신과의 현장 동행, 일본인 목사가 손으로 그린 지도, 1970년대 항공사진, 그리고 다큐멘터리 한 편.

CH.08 채집 요약
  • 청계천변 판자촌에 살았던 어르신과 현장을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들었다 — 지금은 공원과 차량기지가 된 자리다.
  • 노무라 목사의 1975년 손그림 지도와 1970년대 항공사진으로 구술을 교차 검증했다.
  • 90년대 금호·행당·왕십리 재개발 투쟁 구술에는 김동원 「행당동 사람들」이 기초 자료가 됐다.
  • 어르신이 그린 동네 그림 속 '금호극장'이 옛 사진 속 하얀 건물과 매칭되며, 사진만으로는 못 채우던 구멍이 메워졌다.

저는 인터뷰를 정말 많이 하는 편입니다. 지역 기록을 하면서 느낀 건, 그 지역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이 많은 지역일수록 확실히 기록물이 많다는 거예요. 기억하려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보광동만 해도 부동산적인 관심도 있겠지만, 그 동네를 기억하는 분들과 실제 거주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공사로 건물이 철거되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방문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런 걸 체감하면서 — 기억을 기록하려는 지역일수록, 물리적 공간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그 기억과 기록이 지역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로 작용한다는 걸 계속 생각하게 됐어요.

최근에 했던 것 중 인상적인 인터뷰가 있습니다. 한양대 건너편, 청계천이 흐르고 그 건너편이 답십리와 장안동 일대인데요. 이 일대에 판자촌이 형성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건 이야기로 들은 것이고, 실제로 가서 보면 여기에 사람이 살았나 싶을 정도로 공간 구성이 다 달라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해를 돕기 위해, 실제로 그 판자촌에 사셨던 어르신과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단순히 이야기를 듣는 것만이 아니라, 현장에 같이 가서 어떻게 달라졌는지 설명을 듣게 된 거죠.

답십리·장안동 일대 위성지도 슬라이드 사진
FIG.06답십리·장안동 일대 위성지도 슬라이드. 청계천과 중랑천이 만나는 지금의 풍경에서 판자촌의 흔적은 읽히지 않는다.

이때 활용한 지도가 하나 있는데, 판자촌이 형성되어 있던 1975년 당시 일대가 어떻게 되어 있었는지를 손으로 직접 그린 지도예요. 한국 사람이 그린 게 아니라, 판자촌 일대에서 도시 빈민과 주거권 관련 활동을 하셨던 일본인 목사님이 직접 그리신 지도입니다. 이 지도를 들고 현장에 가서 비교해 보는 거죠. 과거에는 일대 여러 군데에 판자촌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됐는가를 살펴봤습니다. 이 지도를 그리신 분은 70년대에 서울 청계천변의 판자촌과 사라져 가던 서울의 풍경을 사진으로 많이 찍으셨어요. 책도 만드셨고, 그 사진 기록물들을 청계천박물관에 기증하셔서 — 최근에 전시가 진행돼 저도 다녀왔습니다. 누군가가 남긴 기록이 과거의 어떤 지역을 이해하는 데 계속 연결되는 걸 보게 되는 거죠.

↳ 그 전시: 《청계천의 별이 된 노무라 모토유키》 — 청계천박물관, 2026.6.13–10.11

저도 그 자료를 가지고 실제 현장에 찾아갔는데, 지금은 일대가 다 공원화됐고 옆으로 지하철 2호선이 지나가는 용답역 근처거든요. 용답역 위 육교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왼쪽에 지하철 노선이 지나가는 바로 그 자리에 사람이 살았던 거예요. 현재 시점에서 걸을 때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다 공원으로 바뀐 곳에 사람이 살았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같은 장소의 70년대와 현재를 나란히 놓으면, 완전히 다른 공간 구성과 그 안에 살던 사람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되는 거죠. 지금 이 일대에는 군자차량기지와 중랑물재생센터 같은 상하수도 처리시설, 그리고 주택가 일부가 들어서 있는데 — 도시 기반시설이다 보니 관련 뉴스 기사나 항공사진들이 남아 있거든요.

그래서 70년대 항공사진을 찾아봤습니다. 사실 지도를 보고 현장에 가도, 제가 그 판자촌을 직접 본 게 아니다 보니 와닿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항공사진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형태로 살펴보고 확대해 보면, 제방 위로 집들이 길게,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사진과 비교하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는 거죠. 이렇게 과거와 현재를 추적해 나가면서 공간 구성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볼 때 만들어지는 결과물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결국 기록이 됩니다. 뉴스 기사 자료도 많이 남아 있고, 행정 차원에서 남기는 도면이나 공문서도 있으니 찾아서 확보하고 전부 연결해 보는 거예요. 연결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지역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1970년대 청계천변 항공사진 슬라이드 사진
FIG.071970년대 항공사진 슬라이드. 확대하면 제방 위에 빽빽하게 늘어선 판자촌의 형태가 드러난다.

인터뷰했던 그 어르신은 청계천변 판자촌에 거주하셨을 뿐 아니라, 90년대에 금호동·행당동·왕십리 일대가 굉장히 큰 규모로 재개발될 때 투쟁하셨던 주민이에요. 그 주민분들과 함께 활동하셨기 때문에 연결이 돼서, 당시 재개발 투쟁에 참여했던 어르신들의 구술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구술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한계가 있었어요. 저는 90년대를 살지 않았고 당시 그 일대의 모습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이분들의 이야기만 듣고 서술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지역에 대한 이해가 기반이 되어야 구술 인터뷰가 진행되고 무언가를 할 수 있으니, 또 자료를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 지역을 기록한 영화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정확히 말하면 그냥 영화지만, 구술 인터뷰를 할 때는 하나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는 거죠. 김동원 감독님이 당시 재개발에 맞서 투쟁하는 주민들을 영상으로 담은 기록물을 영화로 제작하셨는데, 「행당동 사람들」이라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일대의 재개발이 어떻게 진행됐고 당시 주민들이 무엇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함께 활동했던 인물들도 알게 됐어요. 정일우 신부님이나 제정구 의원 같은 분들 — 도시 빈민들의 주거권을 위해 활동하면서 그 현장에 직접 살면서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그런 자료들을 볼 수 있는 영화들을 활용하면서 구술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구술 인터뷰와는 별개로, 이 지역의 도시 변화를 정리해 보고 싶어서 따로 진행한 작업도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계속 매칭시켜 보는 작업이에요. 옛 사진 자료를 찾아 이미지로 출력해서, 해당 장소에 가서 그 사진을 들고 찍은 다음 현재의 모습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계속 쌓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모습이었는데 현재는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 성격이 변해 가는 걸 계속 축적하는 거죠.

그리고 구술 인터뷰를 할 때, 어르신들께 당시 기억하고 있는 동네 풍경을 그려 달라고 요청드렸어요. 이 그림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니고, 그분들이 기억하는 그 순간의 기억인데 — 이 지도를 통해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극장이나 시장을 알게 된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림에 '금호극장'이라고 적혀 있는데 지금은 없거든요. 이 극장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니, 옛 사진 속에 있던 커다란 하얀 건물이 바로 금호극장이었더라고요. 이렇게 몰랐던 정보들을 발췌하게 되면, 단순히 사진 기록만 남겼을 때 생기는 빈 구멍들이 이런 식으로 채워지는 겁니다.

기억의 그림 → 자료의 사진 → 상호 검증. 구술과 문헌이 서로를 확인해 준다
CH.09 · NO MANUAL

방법은 없다, 방법이 된다

강연의 제목이 '방법'인데, 결론은 매뉴얼의 거부다. 스스로 의심하면서도 계속 쌓아 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CH.09 채집 요약
  • '이게 기록이 되나' 의심하면서도 계속 쌓으면, 단절된 것들이 연결되며 의미와 맥락이 생긴다.
  • 1단계·2단계식 매뉴얼은 획일적 결과물만 낳는다 — 각자의 관심 키워드를 '사라지는 것'과 연결해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 곧 방법이다.
  • 도구는 인스타그램(온라인)과 책(물성)의 이중화 — 자기에게 맞는 도구를 찾는 일도 방법의 일부다.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을 계속 반복하면서, 사실 저도 계속 의심합니다. 처음에는 '이게 기록이 되나?' 싶거든요. 이게 과연 맞는 건가 하면서도 계속 쌓다 보면, 단절되어 있던 것들이 연결되면서 의미와 맥락을 형성하게 되고, 거기에 제가 해석하는 감정들을 덧붙이면서 더 넓게 확장이 가능해집니다.

초반에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들이 제 방법에 대해 많이 물어봅니다. "이거 어떻게 기록하는 거냐"고요. 그런데 매뉴얼처럼 1단계, 2단계, 3단계 이렇게 하는 것은 굉장히 획일적인 결과물밖에 낳지 못한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그래서 저는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고, 내가 갖게 되는 질문들을 가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것저것 해 보게 되잖아요. 그게 결국 그 사람의 방법이 되고,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는 방법이 됩니다. 그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어요.

저는 대상 자체가 공간과 지역에 집중되어 있고, 원래 좋아하던 역사와 조합해서 한 건데 — 이건 제 방법이고 제 관심사입니다. 여러분은 각자 생각해 보면 본인이 관심 있어 하는 키워드들이 있을 거예요. 그 키워드와 '사라지는 것'을 연결해서 어떻게 기록해 나갈지 고민하다 보면, 이렇게 하면 되겠다, 저렇게 하면 되겠다 하는 것들이 생각나게 됩니다. 대신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리고, 그만큼의 고민이 필요해요.

그래서 제가 선택한 도구는 두 가지입니다. 이걸 해 나가는 공간으로 인스타그램이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선택했고, 동시에 책이라는 물성이 있는, 만질 수 있는 것에 일부러 담아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두 개를 계속 활용하면서 기록하겠다는 도구를 만든 거고 — 각자에게 맞는 도구를 찾는 것도, 사실은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드리고 싶은 핵심 요지는 이겁니다. 매뉴얼을 좋아하시고 효율을 따지고 단계적인 과정을 좋아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이 방법이어야 각자만의 색깔이 담긴 기록물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준비한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강연 마지막 슬라이드 사진
FIG.08마지막 슬라이드. 방법을 묻는 강연의 답은 결국 '과정 그 자체'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는 방법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 나가는
시행착오의 과정 그 자체다."
— 강연 마지막 슬라이드에서
CH.10 · Q&A

질문들 — 대구에서, 철거지에서, 출처에 대하여

본강연이 끝나고 이어진 약 11분의 질의응답. 청중의 질문 다섯 가지와 그 답을 정리했다.

CH.10 채집 요약
  • 타 지역 아카이빙은 지자체·자치구 웹 자료와 도서관, 그리고 자기가 살던 동네에서 시작하면 된다.
  • 철거지의 무서움은 '원래 사람이 살던 동네'라는 감각과 함께 기록하는 사람들의 존재로 옅어진다.
  • 인터뷰이 섭외: 지인 → 인스타그램 공개 모집(15명 안팎) → 책방 사장의 소개, 그리고 '소문내기'.
  • 출처는 게시물마다 기재하며, 최다 활용처는 서울역사박물관·국토지리정보원·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철거풍경록」은 절판, PDF만 남았다.

Q1. 서울이 아닌 지역은 아카이브가 빈약하게 느껴진다. 대구에서 '대구수집'을 하려면 어디서 시작해야 하나

대구도 대구시에서 생산한 기본적인 자료들이 있습니다. 대구시 홈페이지, 그리고 자치구마다 웹사이트가 있는데 들어가 보면 자체적으로 아카이빙한 자료들이 있거든요. 그걸 시작점으로 삼는 거죠. 그리고 저처럼 개별적으로 기록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책을 많이 만드시니까, 그분들이 남긴 자료를 단서로 삼아 보기도 하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살았던 동네에 가서 그 동네를 기록했어요. 어렸을 때 갔던 장소들을 찾아가 보고 — 실제로 남아 있으면 다행이고, 없으면 약간 멘붕이 오는데, 그런 공간들도 찾아보면 자료가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는 198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들이 정말 많았는데, 그 아파트들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부터 시작했어요. 하나씩 살펴보고 관련 자료를 찾다 보니, 굉장히 특이한 아파트가 하나 있었는데 그와 관련된 자료가 엄청 많이 남아 있더라고요. 건축 관련 자료까지도요. 도시 공간은 계획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자료가 없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없다면 정말로 당시에 자료를 남기지 않은 겁니다. 특히 도서관에 가서 살펴보면 발간된 책자들이 다 모여 있으니까, 도서관에서 자료를 확보해서 내가 경험했던 것들과 연결해 기록할 수 있습니다.

Q2. 철거 과정에 있는 곳을 자주 다니시는데, 무섭지 않나

정말 많이 받는 질문인데요, 저는 좀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 내가 보는 이 동네는 비어 있지만, 원래 사람이 살았던 곳이잖아요. 그분들이 떠나서 비어 있는 상태일 뿐, 그냥 내 원래 동네라고 생각했어요. 그 안에는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거든요. 벽지라든가, 아까 그 액자라든가, 물건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으니까 — 이분들이 이 물건으로 어떻게 생활했을까를 상상하면서 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무서움이 사라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현동 같은 경우 초반에는 저만 기록한 게 아니라, 그 동네를 기록하거나 살았거나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이 와서 기록하고 있었어요. 다니다 보면 마주치는 거죠. 이 동네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같이 있다고 생각하면 덜 무섭습니다. 그리고 현장을 관리하시는 직원분들도 계시는데,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하시는 건 사람들이 자꾸 와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번거로움을 막으려는 건데 — 어쨌든 그분들이 안전 문제를 관리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도 무서움이 덜할 수 있어요.

Q3. 인터뷰이는 어떻게 섭외하나

처음에는 이런 경험을 한 지인들을 많이 활용했어요. 서울은 특히, 어렸을 때 살던 동네나 집, 부모님이 운영하던 가게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신 분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런 분들을 초반에 인터뷰하고, 그다음에는 제가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니까 공개적으로 모집했습니다.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이야기를 들려주실 분이 있는지 모집했더니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신청하셔서, 거의 15명 안팎으로 계속 연결해서 진행했어요. 판자촌에 사셨던 어르신 같은 경우에는, 제가 자주 가는 책방 사장님이 제가 이런 기록을 한다는 걸 알고 소개해 주셨습니다. 제가 재개발이라는 키워드로 기록하고 있고 그 어르신이 재개발 관련 활동을 하셨으니 연결이 된 거죠. 그래서 저는 내가 기록하고 있다는 걸 소문을 많이 냅니다. 그러면 주변에서 "저 사람이 그런 기록을 한다는데 혹시 이야기 들려주실 분 있냐"며 연결해 주는 경우들이 생겨요.

Q4. 게시물에 쓰인 자료들은 어디서 수집한 건지 알 수 있나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릴 때 아래쪽에 자료 출처를 다 기재하고 올립니다. 게시물을 보다 보면 없는 것도 있는데, 그건 에세이 성격이 강한 글을 썼을 때고요. 자료를 조합해서 이미지를 올릴 경우에는 그 이미지를 어디서 가져왔는지 출처를 댓글로 달아 놓거나 본문 아래에 기재해 놨습니다. 개인 블로그에서 이미지 자료를 찾는 경우도 많은데 그 블로그 주소도 다 적어 놨어요. 자료를 제일 많이 얻는 곳은 서울역사박물관, 그리고 항공사진을 찾았던 국토지리정보원 — 이름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데 그곳이고요. 그리고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라고 검색하시면 90년대 뉴스 기사 자료를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이 있어서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는 못하더라도,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어서 그 내용을 보고 역으로 해석하는 경우들도 있거든요. 그런 식으로 기사 자료도 많이 활용합니다. 그리고 플러스로, 말씀드린 것처럼 인터뷰 — 인터뷰에서 나온 내용을 기반으로 기사를 찾고, 사진을 찾고, 지도도 찾아보고, 도면도 찾아보고, 영상을 찾고, 이렇게 하는 겁니다.

Q5. 「철거풍경록」은 지금도 구할 수 있나

더 이상 판매하지 않고 있어요. 초반에 제작할 때 소량만 인쇄해서 판매했는데, 사진집이다 보니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더는 제작하지 않고 있고, PDF 파일로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혹시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COLLECTOR & CAST

기록하는 사람, 그리고 기록 속의 사람들

강연자는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대신 강연 속에는 도시를 기록해 온 다른 사람들의 이름이 촘촘히 등장한다.

COLLECTOR PROFILE · 강연자

서울수집 SEOUL SOOZIP

도시 기록 활동가 · 인스타그램 '서울수집' 운영 (익명)

'도시'와 '서울'을 키워드로 책·도시사·건물·주거·도시 변화를 수집해 인스타그램에 공유한다. 회사를 다니며 주말마다 현장을 걷는 생활자 기록자로, 아현2구역을 반년간 매주 기록해 독립출판 사진집 「철거풍경록」(절판, PDF만 잔존)을 만들었고, 현재는 한남동·보광동 재개발 일대를 매주 기록 중이다. 구술 인터뷰를 15명 안팎 진행했으며, 게시물마다 자료 출처를 기재하는 원칙을 지킨다. 강연에서는 "'서울', 언더바, '수집'으로 검색하면 나온다"고만 소개했는데, 그 계정이 아래의 @seoul_soozip이다.

instagram.com/seoul_soozip ↗
#도시변화#재개발·재건축#독립출판#구술인터뷰#출처기재#인스타그램아카이브
노무라 모토유키 野村基之 · 1931–2025
일본인 목사 · 청계천 판자촌 기록자

1968년 첫 방한 이후 청계천 판자촌에서 빈민 구호 활동을 하며 판자촌의 손그림 지도와 사진을 남겼다. 사진·자료 수천 점을 청계천박물관에 기증했고, 별세 1주기인 2026년 현재 추모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강연자가 "최근 다녀온 전시"의 주인공.

김동원 金東元
다큐멘터리 감독 · 푸른영상 설립자

「상계동 올림픽」(1988)부터 「행당동 사람들」(1994), 「내 친구 정일우」(2017)까지 철거민과 재개발 투쟁을 카메라로 기록해 온 한국 독립다큐의 상징. 강연자는 「행당동 사람들」을 구술 인터뷰의 기초 자료로 썼다.

정일우 John V. Daly · 1935–2014
예수회 신부 · 빈민운동가

미국 출신으로 귀화해 청계천·상계동 판자촌에 직접 살며 도시 빈민의 주거권 운동을 펼쳤다. 강연자가 「행당동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된 인물.

제정구 諸廷坵 · 1944–1999
빈민운동가 · 전 국회의원

정일우 신부와 함께 판자촌 주민들의 공동체 이주 운동을 이끌었고 이후 국회의원으로 주거권 입법 활동을 했다. 현장에 직접 살며 활동한 기록이 영화로 남아 있다.

김여정 작가
「우리가 서로를 잊지 않는다면」 저자

보광동 주민들과 관계를 맺으며 전쟁의 기억과 차별, 환대의 순간들을 기록한 논픽션을 썼다.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으로 2022년 출간됐다. 불꽃축제 일화가 이 책에 나온다.

정재은 영화감독
「고양이들의 아파트」(2022) 연출

둔촌주공 재건축을 앞두고 진행된 '이사하는 둔촌냥이' 고양이 이주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비인간 존재와 도시 변화라는 주제를 대중적으로 알린 작품.

이성민 영화감독
「콘크리트 녹색섬」(2026) 연출

개포주공 아파트 단지의 나무들이 재건축 공사로 베어진 뒤 어디로 가는지를 추적한 장편 다큐멘터리. 강연에서 "이번에 8월 19일 개봉한다"고 언급된 바로 그 영화다.

GLOSSARY · 14 TERMS

용어 수집함

강연을 따라가는 데 필요한 개념들을 표본 라벨처럼 정리했다.

재개발 / 재건축REDEVELOPMENT
낡은 주거지를 철거하고 새로 짓는 정비사업. 재개발은 기반시설이 열악한 지역 전체를, 재건축은 기존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한다. 강연의 표현을 빌리면 "기존 도시 조직을 싹 지우고 새로 만드는 일"이다.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
전면 철거 대신 기존 자원을 고쳐 쓰며 지역을 되살리는 방식. 원주 아카데미극장 보존 계획이 이 사업의 틀에서 추진되다가 무산됐다.
뉴타운NEW TOWN
여러 정비구역을 묶어 대규모로 재개발하는 서울의 광역 정비 방식. 강연자가 매주 기록하는 한남동·보광동 일대가 한남뉴타운이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동네가 변모하며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과 기존 상인이 밀려나는 현상. 강연자가 집중 수집하는 '도시 변화' 키워드의 핵심 개념.
도시 조직URBAN FABRIC
골목, 필지, 건물 배치가 오랜 시간 쌓여 만들어진 동네의 물리적 짜임새. 지도를 손으로 그리는 행위는 이 조직을 몸으로 읽는 일이다.
판자촌SHANTYTOWN
전후~고도성장기에 하천변·산비탈에 형성된 무허가 정착지. 청계천변 판자촌은 1970년대까지 제방 위에 빽빽하게 존재했다.
상이용사 주택VETERANS' HOUSING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상이용사)을 위해 정부가 공급한 주택. 보광동에 지어진 단지의 흔적이 지금도 일부 남아 있다.
스낵카SNACK CAR
폐차 버스를 개조한 이동식 간이식당. 강남 개발기 일용직 노동자들의 식당에서 출발해,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정부가 공식 보급하며 '86'으로 시작하는 번호판을 달았다.
서울미래유산SEOUL FUTURE HERITAGE
근현대 서울의 기억을 담은 유·무형 자원을 시가 지정해 보존하는 제도. 스낵카 일부가 지정된 바 있다.
구술 인터뷰ORAL HISTORY
문헌에 남지 않은 기억을 당사자의 말로 채록하는 방법. 강연자는 지역 이해가 기반이 되어야 구술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지역 자원 조사SEOUL MUSEUM SURVEY
서울역사박물관이 매년 동네를 정해 수행하는 조사 사업. 보고서가 웹에 무료 공개되어 있어, 개인 기록자의 가장 강력한 대조 자료가 된다.
대한뉴스KOREAN NEWSREEL
1950~90년대 극장에서 상영된 국가 제작 뉴스 영상. 상이용사 주택 입주식처럼 문헌에 짧게만 남은 사건의 움직이는 풍경을 보여준다.
항공사진 서비스AERIAL PHOTO ARCHIVE
국토지리정보원 등이 제공하는 시대별 항공사진 열람 서비스. 사라진 판자촌의 형태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확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NEWS LIBRARY
과거 신문 지면을 디지털로 열람하는 서비스. 저작권 때문에 적극 활용은 어렵지만, 당시의 시선을 '역으로 해석'하는 자료가 된다.
SOURCE SHELF · 09 ITEMS

원자료 서고 — 강연이 가리킨 곳으로 바로 가기

강연자가 QR 슬라이드로 나눠 준 참고처들(FIG.05)을 디지털 서가로 옮겼다. 강연에서 언급된 영상·아카이브·전시·영화를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소재가 검증된 공식 페이지만 담았다.

영상 · 대한뉴스

대한뉴스 제190호 — 상이용사 입주식 거행

강연에서 상영된 바로 그 영상. 보건사회부와 육군이 보광동에 건립한 상이용사 주택 50동 100세대의 입주식과 내부 시찰 장면이 담겨 있다. e영상역사관에서 바로 재생할 수 있다.

► ehistory.go.kr 에서 보기
아카이브

서울역사아카이브 —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2007년 보광동을 시작으로 해마다 동네를 정해 조사해 온 보고서 원문 서비스. 「보광동 사람들, 보광동」(2008)의 사진·평면도·구술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고, 이태원(2010)·아현·염리동(2010) 조사도 같은 목록에 있다.

↗ museum.seoul.go.kr 보광동 자료
전시

《청계천의 별이 된 노무라 모토유키》

강연자가 다녀온 1주기 추모 특별전. 사진·일기·스크랩북 등 '노무라 컬렉션'을 해제해 선보인다. 청계천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 2026.6.13–10.11, 무료 관람, 월요일 휴관.

↗ 전시 소개 기사 보기
아카이브

국토지리정보원 — 항공사진 서비스

1970년대 이후 서울 항공사진 17만여 매를 포함해 전국 112만여 장을 국토정보플랫폼에서 무료 열람·발급한다. 청계천변 제방 위 판자촌의 형태가 이 자료로 확인됐다.

↗ ngii.go.kr 항공사진 안내
아카이브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20–1999년 경향신문·동아일보·매일경제·조선일보·한겨레 지면을 무료로 검색·열람한다. 강연자가 "90년대 기사를 역으로 해석"하는 데 가장 많이 쓴다고 밝힌 도구.

↗ newslibrary.naver.com
아카이브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 국립중앙도서관

1883년부터 1960년대까지 신문 108종, 기사 873만 건을 서비스한다. 뉴스 라이브러리가 닿지 않는 더 이른 시기의 도시 기사를 보완하는 서가.

↗ nl.go.kr/newspaper
다큐멘터리

「행당동 사람들」 연작 — 김동원

1994년작과 속편 「또 하나의 세상 — 행당동 사람들2」(1999). 90년대 행당동 재개발 투쟁 주민들을 담은 기록으로, 강연자의 구술 인터뷰에 기초 자료가 됐다. 푸른영상 작품 소개에서 상세 정보를 볼 수 있다.

↗ 푸른영상 작품소개
다큐멘터리

「고양이들의 아파트」 — 정재은

재건축이 확정된 둔촌주공에서 2017년부터 2019년 철거 직전까지 촬영했다. 약 250마리로 추정되던 단지 고양이들의 이주 프로젝트 기록. 독립영화 라이브러리에서 정보와 관람 경로를 안내한다.

► 메인 예고편 (YouTube) ↗ indieground.kr 작품 정보
다큐멘터리

「콘크리트 녹색섬」 — 이성민

개포주공 나무들의 행방을 끝까지 쫓은 첫 장편(2024, 108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옥랑문화상, EBS국제다큐영화제 인더스트리 초이스 수상작으로 2026년 8월 19일 개봉한다.

► 공식 트레일러 (YouTube) ↗ indieground.kr 작품 정보

※ 링크는 2026년 8월 접속 확인 기준이다. 영상은 제작·배급·영화제 주체가 공식 채널에 공개한 것만 본문에서 유튜브 임베드로 재생되게 했고, 그 밖의 사진·기사·아카이브 자료는 저작권과 이용 조건을 고려해 파일을 복제하지 않고 원 페이지로 연결했다.

FACT CHECK · 11 CLAIMS

표본 검증 — 강연 속 사실관계

강연의 주장들을 공개 자료와 대조했다. 전반적으로 정확도가 높은 강연이며, 연대와 수치 일부에서만 편차가 확인된다.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시가 매입해 보존하려던 계획이 시장 교체로 뒤집혀 철거됐고, 지금은 주차장과 야외무대가 있다"
확인됨
1963년 개관한 아카데미극장은 2006년 폐관 후 2022년 원주시가 매입,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생사업까지 선정됐다. 그러나 민선 8기 시장 취임 뒤 방침이 바뀌어 2023년 10월 30일 철거가 강행됐고, 부지에는 주차장과 야외공연장이 조성됐다. 철거에 반대하다 기소된 시민들은 2026년 4월 무죄가 확정됐다.
근거: 원주시 발표 및 언론 보도(2022–2023), 철거 반대 시민 무죄 확정 보도(주간경향, 2026.4)
"상도동의 그 시장은 1960년대 후반에 지어진 건물형 시장이고, 그 자리에 동작구 행정복합타운이 들어선다"
확인됨
영도시장은 1968년 개장한 상가건물형 시장으로, 동작구청 이전(장승배기 종합행정타운 조성)에 따라 2021년 철거됐다. 당시로서는 드문 건물형 시장이라는 평가도 보도에서 확인된다.
근거: 동작구 종합행정타운 사업 자료, 영도시장 철거 관련 보도(2021)
"아현동 행화탕은 문화기획자가 전시·카페로 운영하다가, 철거 전 '장례식' 행사를 치렀다"
확인됨
1958년 지어진 목욕탕 행화탕은 2016년부터 문화예술 공간으로 운영됐고, 아현동 재개발로 2021년 '행화탕 장례식' 형식의 고별 행사를 치른 뒤 철거됐다. 시민들이 부의금을 내고 벽에 메시지를 남긴 행사 방식도 보도와 일치한다.
근거: 행화탕 장례식 보도(MBC 뉴스데스크, 2021.5) 및 운영·고별전 관련 보도(2016–2021)
"아시안게임이 확정되자 정부가 스낵카 버스 13대를 공급했고, 번호판이 모두 '86'으로 시작한다"
확인됨
1970년대 말 폐차 버스를 개조해 시작된 스낵카는 1984년 정부와 아시아자동차가 86아시안게임 대비 도시 미관 정비 차원에서 신형 버스 13대를 보급하며 공식화됐고, 등록 번호판이 '86'으로 시작해 '86 스낵카'로 불렸다. 일부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근거: 서울미래유산 기록, 스낵카 연혁 보도
"2023년에 13대 중 3대가 남아 있었고, 한티역 인근 스낵카가 사라졌으며, 지금 강남에는 1대가 남았다"
부분적 사실
보도에 따르면 13대 중 끝까지 살아남은 곳은 관악 '콜럼버스', 강남 '영동', '역삼' 세 곳이었고, 이 가운데 한티역 인근 영동 스낵카가 2020년경 사라지면서 2023년 초 기준 서울에는 역삼 스낵카 한 대만 남았다. 즉 '3대 잔존'은 사실이지만 그 시점은 2023년이 아니라 그보다 앞선 시기로, 강연자의 기억은 '3곳 생존' 국면과 '1대 잔존' 시점이 겹쳐진 것으로 보인다. 한티역 인근 스낵카의 소멸과 현재 1대 잔존이라는 큰 줄기는 정확하다.
"상이용사 주택 입주식 영상이 남아 있는데, 60년대 영상이다"
부분적 사실
보광동 상이용사 주택 입주식은 대한뉴스 제190호에 실려 있으며, 보건사회부와 육군이 50동 100세대를 지어 입주시킨 내용이다. 다만 대한뉴스 제190호는 호수 순서상 1950년대 후반 제작분으로 추정되어, '60년대'라는 언급과는 수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영상이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는 정확하다.
"서울역사박물관이 한남·보광·이태원 일대를 2000년대에 조사했고, 이제 20년 가까이 지났다"
확인됨
서울역사박물관은 2007년 보광동 일대 생활문화자료조사를 수행해 2008년 보고서 「보광동 사람들, 보광동」을 발간했다. 조사 자료는 박물관 웹사이트에서 무료 열람이 가능하다. 강연 시점(2026년) 기준 약 19년 전 조사로, "20년 가까이"라는 표현과 부합한다.
"김여정의 「우리가 서로를 잊지 않는다면」에 6·25를 경험한 보광동 주민들이 불꽃축제 기간 외출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확인됨
해당 책은 보광동 주민들의 전쟁 기억과 차별·환대의 순간을 기록한 논픽션으로, 2020년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 수상 후 2022년 출간됐다. 여의도 불꽃축제의 폭발음이 전쟁 기억을 소환해 그 기간 외출을 꺼리는 어르신들의 일화는 책과 관련 인터뷰에서 확인된다.
근거: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 기록, 출간 정보 및 저자 인터뷰
"판자촌 지도를 그린 일본인 목사가 70년대 청계천 사진을 찍어 청계천박물관에 기증했고, 최근 전시가 열려 다녀왔다"
확인됨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는 1968년 첫 방한 후 1973~1985년 사이 수십 차례 한국을 오가며 청계천 판자촌을 구호하고 기록했으며, 사진·자료 수천 점을 청계천박물관에 기증했다. 2025년 7월 별세 후 1주기 추모 특별전이 청계천박물관에서 2026년 6월 13일부터 10월 11일까지 열리고 있다. 강연자가 관람한 '최근 전시'는 이 특별전으로 추정된다.
근거: 청계천박물관 기증 자료 기록, 1주기 추모 특별전 안내(2026)
"「콘크리트 녹색섬」이 이번에 8월 19일 개봉한다"
확인됨
개포주공 단지의 나무들을 추적한 이성민 감독의 다큐멘터리 「콘크리트 녹색섬」은 2026년 8월 19일 개봉이 확정되어 있다. 이 개봉일이 언론에 확정 보도된 것이 2026년 7월 하순이므로, 구체적 날짜를 알고 있는 이 발언은 강연 시점을 7월 하순 이후로 좁힌 핵심 단서였고, 확정된 강연일(2026.8.1)과도 부합한다.
근거: 개봉 일정 보도 및 작품 정보(indieground)
"청계천변 그 판자촌에는 230명이 살았다"
미확인
강연자 스스로 "이야기로 들은 것"이라고 밝힌 구술 전언이며, 음성 판독도 이 대목에서 불명확하다. 해당 구역 단위의 거주 인원을 교차 확인할 수 있는 공개 자료를 찾지 못해 미확인으로 남긴다.
근거: 교차 검증 자료 부재 (구술 전언)
CLAUDE INSIGHT · 7 NOTES

채집 노트 — 강연이 말하지 않은 것들

강연을 채록하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본문 바깥의 맥락들. 당신이 이 강연을 한 번 더 곱씹을 때 쓸 수 있는 일곱 개의 각주다.

NOTE 01 · 언어 설계

'수집'은 겸손이 아니라 전략이다

기록 대신 수집이라는 단어를 고른 것은 단순한 부담 덜기가 아니다. '기록'은 결과물과 활용을 요구하지만 '수집'은 취미의 언어라서 축적 자체를 정당화한다. 발터 벤야민이 수집가를 "사물을 쓸모의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사람"이라 불렀듯, 이 강연의 수집은 도시의 조각들을 개발 논리의 쓸모에서 떼어내 다른 가치 체계에 등록하는 행위다. 진입장벽을 낮추는 언어가, 2018년 아현동에서 지금의 한남·보광까지 이어지는 지속성을 만들었다.

NOTE 02 · 순환 구조

개인의 기록은 공공 아카이브로 돌아온다

이 강연의 가장 아름다운 구조는 노무라 모토유키가 완성한다. 1970년대 한 개인이 남긴 손그림 지도와 사진이 박물관에 기증되고, 50년 뒤 다른 개인이 그 자료를 들고 같은 자리에 서서 새 기록을 만든다. 강연자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역시 같은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강연자가 출처를 빠짐없이 기재하는 습관은, 자신의 게시물이 미래의 1차 사료로 인용될 것을 무의식적으로 준비하는 행위다.

NOTE 03 · 기록 윤리

버려진 신분증 앞에서 기록자는 무엇을 찍을 수 있는가

철거지에 펼쳐진 보험 서류와 통장 사본 이야기는 강연에서 놀라움으로 지나가지만, 사실 두 개의 공백을 드러낸다. 하나는 이주 과정에서 개인정보 폐기를 안내하는 행정 절차의 공백이고, 다른 하나는 기록자의 윤리다. 남겨진 액자를 찍어 공유하는 일과 남겨진 등본을 찍는 일 사이 어딘가에 선이 있다. 강연자가 액자는 이야기하고 서류는 '현상'으로만 언급한 것 자체가, 암묵적으로 그 선을 지킨 결과로 읽힌다.

NOTE 04 · 다종 아카이브

고양이와 나무가 기록의 주어가 될 때

둔촌냥이 이주와 개포주공 나무 추적은 한국 도시 기록이 '멀티스피시즈(multispecies) 아카이브'로 확장되는 장면이다. 재개발 기록의 주어가 세입자에서 상인으로, 다시 고양이와 수목으로 넓어져 온 궤적은 도시를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라 공유된 서식지로 다시 정의하려는 감각의 변화를 보여준다. 강연자가 "주거권도 해결 안 된 마당에 이상적"이라 자기검열하면서도 이 확장을 포기하지 않는 대목이 이 강연의 윤리적 핵심이다.

NOTE 05 · 국가 이벤트

'86'이라는 번호판은 도시 정비의 영수증이다

스낵카의 번호판이 '86'으로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아시안게임이라는 국가 이벤트가 도시 미관을 재편한 물증이다. 같은 시기 상계동 철거(김동원의 「상계동 올림픽」)가 보여주듯, 메가 이벤트는 보이기 싫은 것을 치우고 보여줄 것을 배치한다. 흥미로운 건 스낵카의 경우 '치우는' 대신 '공식화'하는 방식이 선택됐다는 점이다. 배제와 포섭이라는 두 정비 방식이 같은 해에 공존했다.

NOTE 06 · 상호 검증

금호극장 — 기억이 검색어를 만들고, 사진이 기억을 확증한다

어르신이 그린 동네 그림 속 '금호극장'이라는 글자가 검색의 실마리가 되고, 자료 사진 속 하얀 건물이 그 기억을 확증하는 과정은 구술사 방법론의 교과서적 장면이다. 구술은 문헌이 무엇을 놓쳤는지 알려주고, 문헌은 기억의 좌표를 고정한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불완전한 두 자료가 서로를 검증할 때, 개인의 회고는 비로소 지역사의 증거가 된다.

NOTE 07 · 매체 이중화

인스타그램의 유동성, 책의 물성 — 도구를 둘로 나눈 이유

온라인 플랫폼과 물성 있는 책을 병행하는 선택은 취향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로 읽을 수 있다. 플랫폼은 도달력이 크지만 서비스 종료와 함께 사라질 수 있는 임차지이고, 책은 느리지만 소유되는 토지다.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는 사람이 자기 기록의 사라짐까지 대비해 매체를 이중화했다는 점에서, 이 선택은 강연 전체 주제의 자기 적용이다. 「철거풍경록」이 절판 후 PDF로만 남았다는 사실은 이 긴장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편집자 노트 — 이 채록이 만들어진 방식

이 문서는 업로드된 강연 음성 「서울수집.m4a」(69분 34초)를 로컬 음성인식 모델(SenseVoice)로 전량 전사한 뒤, 함께 업로드된 현장 사진 17매의 슬라이드 내용과 대조해 고유명사와 연대를 복원하고, 웹 검증을 거쳐 재구성한 강연록이다. 구어의 반복과 음성인식 오류는 정돈하되 강연자의 어조와 논리 전개, 사례의 세부는 유지했다. 자동 전사의 한계로 판독이 불명확한 두 대목 — 판자촌 거주 인원(팩트체크 참조), 강연자가 어린 시절 동네에서 발견한 특이한 아파트의 이름 — 은 본문에서 특정하지 않았다. 강연 일시는 음성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 서두·말미와 사회자 발언 구간까지 증폭 재전사해 확인했다. 대신 세 가지 정황으로 시점을 좁혔다. ① 노무라 모토유키 추모 특별전(2026.6.13 개막)을 "최근 다녀왔다"고 말했고, ② 「콘크리트 녹색섬」의 개봉일을 "이번에 8월 19일"이라고 특정했는데 이 날짜가 배급사 확정 보도로 확인되는 시점은 2026년 7월 하순이며, ③ 녹음 파일이 8월 1일에 전달됐다. 이 정황으로 강연은 개봉일이 공표된 7월 하순부터 녹음이 전달된 8월 1일 사이로 좁혀졌고, 이후 자료 제공자(강연 참석자)의 확인을 통해 2026년 8월 1일 — 녹음이 전달된 바로 그날 — 로 확정했다. 현장 사진은 강연 당일 촬영본이어서 독립 근거로 쓰지 않았다(촬영 메타데이터도 남아 있지 않다). 한편 초판 상단 라벨의 '채집 시점'은 강연이 열린 때와 강연자의 수집 활동 기간을 혼동시킬 수 있는 이름이었다. 강연에 명시된 활동 연대(아현동 2018.8~2019.2, 한남·보광은 현재 진행형)와 구분하기 위해 '수집 연대기'와 '강연 시점' 두 항목으로 분리해 바로잡았다. 현장 사진 17매 중 슬라이드가 또렷하고 저작권 문제가 없는 8매만 본문에 실었으며, 책 본문·표지와 영화 포스터가 크게 찍힌 슬라이드는 제외했다. 인용 표시된 문장은 슬라이드 원문 또는 발화를 기준으로 했다. 2쇄·3쇄 편집에서는 강연이 가리킨 원자료로 직접 이동할 수 있도록 <원자료 서고> 섹션, 본문·팩트체크·표본 카드의 기사 링크, 방법 순환 다이어그램을 더했고, 강연에 언급된 두 다큐멘터리의 공식 예고편을 본문에서 재생할 수 있게 했다. 강연에 언급된 두 다큐멘터리의 공식 예고편은 본문의 작품 제목에 직접 링크했다. 영상은 공식 채널 공개본만 연결했으며, 그 밖의 외부 이미지·영상·기사는 파일을 복제하지 않고 원 페이지로 연결했다. 대한뉴스 제190호 원본은 공식 유튜브 업로드가 확인되지 않아 e영상역사관 링크로 연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