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세의 워런 버핏이 CEO 자리에서 내려온 뒤 처음 맞은 연례주주총회. 점심시간, CNBC의 베키 퀵이 그를 마주 앉혔다. 시장의 도박판화, 3,970억 달러의 현금 더미, AI 딥페이크의 공포, 그리고 마지막에 남긴 한 줄 — "황금률을 따르라."
1965년 망해가던 섬유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해 60년 만에 시가총액 1조 달러 규모의 복합기업으로 키운 가치투자의 상징. 2025년 5월 연례총회에서 연말까지 CEO에서 물러나겠다고 깜짝 발표했고, 2026년 1월 1일 그렉 아벨에게 자리를 넘겼다. 회장직과 약 30%의 의결권 지분은 유지한 채 매년 주주서한과 공개 메시지는 계속 쓰겠다고 밝혔다. 이번 총회는 60년 만에 처음으로 그가 무대 위가 아닌 객석에서 지켜본 자리였다.
1972년 인디애나 게리 출생. 지질학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텍사스·오하이오·오클라호마를 거쳐 뉴저지에 정착했고, 럿거스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며 학보사 편집장을 지냈다. 1993년 월스트리트저널에 합류해 소매·전자상거래 분야를 취재하다 1996년 WSJ 온라인판 출범에 참여했다. 2001년 CNBC로 옮겨 〈Squawk Box〉 공동 앵커가 됐고, 그 이후로 매년 버핏을 인터뷰해 온 CNBC의 사실상 전속 버핏 통신원이다. 2026년 1월에는 딸의 SYNGAP1 희귀질환 진단 사실을 공개하며 'CNBC Cures' 이니셔티브를 시작했다.
버핏의 어휘는 늘 신중하지만, 이번 인터뷰의 첫 답변은 더더욱 그렇다. 그는 "환경이 나쁘다"가 아니라 "이상적이지 않다(not ideal)"고 했다. 이 표현은 시장이 과열됐다는 본인의 판단을 분명히 드러내면서도, 후임 그렉 아벨의 운신 폭을 좁히지 않으려는 정교한 균형이다. CEO 자리에서 내려온 회장이 후임의 첫 총회에서 시장을 직접 비관한다면 곧바로 "버크셔는 패닉 모드"라는 헤드라인이 붙는다. 그는 그걸 알고 있다.
버핏의 1일 옵션 비판은 제도권 비판이 아니라, 자기 매년 회의에 모이는 관객들 — 즉 평범한 개인투자자들 — 을 향한 신호다. 같은 날 다른 자리에서 그는 "예측시장(prediction markets)"의 부상도 우려스럽게 봤다. 폴리마켓·칼시 같은 플랫폼에서 미국 대선·연준 결정·전쟁 결과에 베팅이 일상화된 시대, 그가 보기에 이건 더 이상 "월스트리트의 도박"이 아니라 "메인스트리트의 도박"이다. 황금률로 끝나는 인터뷰의 회로는 결국 여기에 닿는다.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너무 도박처럼 굴지 말라.
버핏은 평소 진행 중인 거래나 검토 중인 매물에 대해 입을 다무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 인터뷰에서는 "편지 한 통이 왔다 — 벨 랩스"라고 베키 퀵의 말을 받아 인정해 버렸다. 발언이 자세하지는 않지만, 이 한 줄만으로도 시장에는 새로운 단서가 생긴다. 60년 동안 그는 "전화 한 통" 거래로 큰 건을 만들어 왔다 — BNSF, 옥시덴탈, 골드만삭스 우선주(2008). 객석으로 내려온 첫 회의에서도 그는 여전히 그 채널이 살아 있음을 시그널링한다. 그렉 아벨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당신이 받게 될 전화는 계속 올 것이다."
겉보기엔 무관해 보이는 두 주제가 한 호흡에 등장한 이유가 있다. 두 주제는 같은 질문을 다룬다 — '사람을 보는 데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틀리는가.' CEO 후계, 결혼, 딥페이크. 셋 다 인지의 한계 위에 세워진 의사결정이다. 이혼율을 끌어들인 농담은 가벼워 보이지만, 그 다음 단락에서 곧바로 "어떤 대통령이든 정말 잘 흉내 내는 위조범"으로 점프한다. 사람을 정확히 식별하는 능력 자체가 흔들리는 시대에, 그가 60년 동안 의사결정의 핵심으로 삼아온 "사람을 만나본 다음 결정한다"는 원칙은 더 이상 충분치 않을 수 있다는 함의다. 본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 챕터의 구조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는 시장 비관, 인플레이션 경고, AI 우려를 다 거친 끝에 마지막 메시지로 2,000년 된 윤리 격언을 골랐다. 95세 노인의 회고로 가볍게 읽기 쉽지만, 행간을 보면 다른 그림이 있다. 시장이 카지노화되고, 통화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사람의 진위조차 AI가 위조하는 시대에, 버핏이 60년의 마지막에 도달한 결론은 "더 정교한 모델"이나 "더 빠른 트레이딩"이 아니다. 주주와 경영자, 부모와 자식, 상사와 부하 사이의 관계 자체를 다시 세우는 것 — 그가 보기에 그것이 위기의 시대에도 무너지지 않는 자산이다. 버크셔의 컬처를 60년 동안 지탱해 온 것도 결국 이 한 줄짜리 원칙이었다는 자기 증언으로도 읽힌다.
버핏의 "비밀의 양념(secret sauce)" 발언은 다소 미국 예외주의로 들릴 수 있고, 실제로 그런 면이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또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 "제도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굴러가서 위대해진 것이다"라는 부분. 그는 미국의 상속법, 분배 구조를 두고 "이상적인 사회를 처음부터 그렸다면 이렇게 안 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발언은 미국 자체에 대한 가장 보수적인 동시에 가장 현실주의적인 평가다. 한국이든 어디든, 한 사회의 강점은 청사진의 우아함이 아니라 100년 넘게 굴러가면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에서 나온다는 — 95세 가치투자자의 마지막 거시 코멘트가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