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자료20260920_-_김아름_작가_북토크.m4a (현장 음성 녹음, 약 2시간, 모노 AAC)일시와 장소2026년 9월 20일 (토), 사진서가 (서울 양천구 신월동)정리 방식녹음 전체를 음성 인식(SenseVoice)으로 전사한 뒤 핵심 구간을 Whisper로 교차 확인하고, 작가의 발화를 순서대로 재구성했다. 현장 녹음 특성상 일부 구간은 불명확하며, 해당 부분은 본문에 표시했다.참고 자료후지필름 코리아, 제4회 후지필름 포토페스타 2026 – 인터내셔널 안내
사진가 김아름 북토크, 2026년 9월 20일, 신월동 사진서가
빛을 기다리며
Waiting for the Light
도쿄에서 20년을 보낸 사진가가 첫 하드커버 사진집을 들고 한국 독자 앞에 섰다. 타인을 바라보는 일, 무표정의 얼굴, 두 번째 만남의 거리, 그리고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빛에 대하여.
녹음 약 120분27개 장으로 재구성용어 15개, 팩트체크 7건, 인사이트 7개
먼저 다섯 가지
두 시간의 이야기를 다섯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다.
포트레이트의 출발점은 어린 시절의 관찰이다. 집을 짓던 아버지를 따라 같은 동네 안에서 여러 번 이사했고, 어머니의 화투 자리에서 본 이웃 아주머니들의 복잡한 얼굴이 "상상한 사람과 실제 사람의 차이"라는 평생의 질문이 됐다.
외국인 사진가의 20년은 비자와 상업 사진의 시간이었다. 어학원, 역 앞 중고카메라 가게, 사진 전문학교, 현상소 아르바이트, 어시스턴트 3년 반, 회사 소속 사진가 5년. "제대로 된 하드커버 사진집"은 그 시간 내내 미뤄진 숙제였다.
「Waiting for the Light」는 타이베이 아트북페어에서 만난 스무 명의 얼굴이다. 점심을 먹고 만나 커피 한 잔과 잡담을 나눈 뒤, "혼자 있는 모습을 연기해 달라"고 부탁한다. 관계가 깊어지면 표정이 따뜻해지기 때문에 일부러 거리를 남긴다.
편집의 핵심은 '숙성'이다. 찍고 나서 한 달에서 석 달은 사진을 보지 않는다. 너무 잘 찍힌 사진은 뺀다. 얇은 종이가 켜켜이 쌓이듯 책을 만든다.
제목은 새벽 휴게소의 헤드라이트에서 왔다. 대만 호텔의 야간 경비원과 일본에 가기 전 경주 휴게소에서 했던 야간 아르바이트의 기억이 겹쳤다.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빛을 기다리는 감각, 그것이 그가 본 지금 20대의 얼굴이다.
이야기하는 사람, 그리고 맥락
작가에 대한 정보는 본인이 토크에서 밝힌 내용과 공개 자료로 확인된 사실만 담았다.
김아름
사진가, 도쿄 기반. 포트레이트
경로 후쿠오카 단기 어학연수를 계기로 일본행. 도쿄에서 비자를 위해 어학원 1년, 이어 2년제 사진 전문학교 진학. 재학 중 현상소 아르바이트로 필름을 거의 무료로 현상하며 대량으로 촬영.
경력 졸업 후 사진 회사에 어시스턴트로 입사(약 3년 반), 같은 회사에서 취업비자를 받아 사진가로 약 5년. 상업 촬영과 개인 작업을 병행. 일본 활동 약 20년.
작업 졸업작 「사실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길 위에서 멍하니 서 있는 사람들), 대형 진 「너의 전화번호를 잊어버렸다」, 첫 하드커버 사진집 「Waiting for the Light」(대만에서 촬영한 10대 후반~20대의 포트레이트, 독립출판, 500부).
한국 활동 2026년 6월 후지필름 포토페스타 2026 특별전 〈서로의 바깥〉에 일본 부문 작가로 참여(〈빛을 기다리며 WAITING FOR THE LIGHT〉). 이번이 한국 첫 북토크.
행사 후지필름 카메라 사용자들의 작업을 전시와 출판으로 소개하는 제4회 글로벌 사진 축제. 디렉터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성남훈. 주제전 〈사이의 시간〉에 시리즈 15명, 싱글 20명이 참여했다.
특별전 〈서로의 바깥〉 4명의 국제 교류 큐레이터(그웬 리, 강상숙, 샤완신, 성남훈)가 추천한 8명의 젊은 사진가 교류전. 가자지구 취재로 2026년 퓰리처상을 받은 사헤르 알고라, 대만의 왕치엔쉰 등과 함께 김아름의 〈빛을 기다리며〉가 걸렸다.
연결 큐레이터 샤완신은 대만 사진 전문 서점 신타이싱 대표. 김아름이 대만에서 피사체를 만나고 책을 팔아 온 경로와 겹친다.
확인된 사실후지필름 코리아 공식 안내
1부 관찰의 시작
아래 본문은 작가의 발화를 녹음 순서대로 정돈한 것이다. 말투는 현장의 해요체를 살렸고, 이해를 돕기 위한 정리자 주석은 따로 표시했다.
인사, 그리고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 00:00
안녕하세요, 김아름이라고 해요. 한국에서 활동한 지는 얼마 안 됐어요. 일본에서 꽤 오래 사진을 해 왔고, 이렇게 인연이 되어서 사진서가에서 북토크를 하게 됐는데, 많이 와 주셔서 긴장이 되네요. 한국에서 하는 게 처음이라 말이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는데, 너그럽게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신 분들 대부분이 작가분들이라고 생각해요. 작가분들 앞에서 혼자 독백을 한다는 게 조금 긴장돼서, 조각조각 마음에 있는 이야기들을 꺼내 보려고 해요. 앞뒤가 안 맞거나 그런 일도 있을 텐데, 언제든지 질문해 주시면 오히려 이렇게 소통하면서 하는 게 재밌을 것 같아요. 손 들어서 질문 많이 해 주세요.
오늘은, 제가 한국에서 북토크를 한번 해 볼까 생각했을 때 떠올린 것들을 이야기하려고 해요. 제가 포트레이트를 찍고 있기도 해서 타인을 바라보는 일에 대해서, 제 첫 하드커버 사진집에 대해서,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진(zine)이나 아트북페어, 독립출판에 대해서. 또 도쿄에서 20년 가까이, 어학원에 들어가서 사진을 배우고 지금까지 온 과정 같은 것들. 질문을 많이 받으면서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관찰하는 아이 02:26
저는 어릴 때부터 사람을 관찰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는 걸 되게 좋아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집을 짓는 일을 하셨는데, 그래서 어릴 때 같은 동네 안에서 여러 번 이사를 했어요. 어릴 적 사진을 보면 배경의 집이 항상 바뀌어 있어서, 많은 기억이 늘 장소랑 연결되어 있거든요.
그중에 제일 오래 살았던 집이 있었는데, 그 동네가 택지개발을 하던 시기라 처음엔 풀이랑 빈터밖에 없었어요. 그 빈터에 저희 집이 지어졌고, 주변에 집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어머니한테도 친구가 생기고, 옆집 아주머니한테도 친구가 생겼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쯤인가, 어머니가 친구 집이나 이런 데서 고스톱을 치면서 노는 자리에 자주 따라갔는데, 그때 본 아주머니들의 표정이 무섭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고, 약간 복잡했어요.
저는 그 얼굴들을 보면서 재밌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했어요. 한 분 한 분 알아갈 때 "이런 분이겠구나" 생각했던 분이 실제로는 전혀 다른 분이었고요. 되게 무서운 분인데 집은 진짜 깨끗하고, 요리도 잘하시고, 뭔가 상상한 것과는 다른 것들이 반복되니까 계속 사람을 관찰하게 됐어요. 그분을 알고 싶지만,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것과 내가 상상하는 것 사이의 차이가 재밌게 느껴졌고, 거기서 호기심이 생겼다고 해야 되나. 그래서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도 솔직히 사람을 만나면서 비슷한 생각을 해요. 제 책도 그렇지만, 가족처럼 가깝고 사이가 좋은 사람도 오랜만에 만나면 다르거든요. 제 동생의 아내가 보는 동생의 모습과 제가 보는 모습이 또 다르더라고요. 저만의 상상이었을 수도 있고, 사람마다 느끼는 화학반응 같은 게 계속 다른 것 같아요.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진실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하고요.
결국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소통이 된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에요.
05:43
물컵은 슬플 수 없다 06:03
저는 사진에 그런 요소를 넣고 있어요. 제가 찍거나 보는 사람이나 사물, 경치가 내가 만들어 낸 이미지인지 아니면 진짜 현실인지, 약간 구분이 안 간다고 해야 하나. 사진이 리얼리티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고 그런 작품도 있죠, 다큐멘터리처럼. 그런데 저에게 제 개인 작업이나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은, 오히려 보는 사람에 따라 뜻이 달라지거나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에요. 그런 걸 찍고 싶고, 보고 싶은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물이 조금 들어 있는 유리컵이 있는데, 그게 되게 슬퍼 보여요. 그런데 물컵이 슬플 수는 없는 거잖아요. 제 마음이 슬퍼서 슬프게 보일 수도 있는 거고, 빛이 너무 예뻐서, 너무 드라마틱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고요. 저는 그런 여지가 있는 사진들을 좋아하고, 그런 사진의 매력을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아요.
2부 도쿄에서의 20년
어학원에서 시작해 사진 전문학교, 현상소, 어시스턴트, 회사 소속 사진가로 이어진 시간. 그 사이에 "언젠가 낼 사진집"이 계속 미뤄졌다.
후쿠오카에서 도쿄로, 역 앞의 중고카메라 가게 08:03
일본에는 단기 어학연수로 잠깐 후쿠오카에 갔던 게 계기였어요. 너무 재밌어서 도쿄에도 가 볼까 해서 간 거예요. 도쿄에 가서는 비자를 위해 어학원에 1년을 다녔고, 1년이 끝나면 귀국을 할지 학교를 갈지 정해야 했어요. 취업은 바로 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어학원을 졸업할 때쯤 갑자기 사진이 생각났어요. 제가 다니던 학교가 있는 역 앞에 중고카메라 가게가 있었거든요. 매일 그 역 앞을 지나면서 계속 그 가게를 봤고, 그 1년 동안 카메라를 계속 들고 다니고 있었어요. 신경이 쓰였던 건 아마 관심이 있어서였겠죠. 비자가 필요하니까 학교에 들어가야지 했을 때, 뭘 배우지 했을 때, 그냥 사진이 자연스럽게 생각났어요.
사진 전문학교에 체험 수업이 있어서 갔는데, 선생님들이 다 작가분이셨어요. 일본에서 꽤 유명하신 분들이었는데 저는 그때는 몰랐어요. 현역으로 활동하고 계시면서 강사 일을 하시는 거였는데, 예를 들면 유명한 흑백 사진을 찍으시는 분들도 계셨고요. 사진을 배운다는 걸 처음 접하니까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학교에 들어갔고, 사진을 내기 시작했어요.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두 개 했는데, 하나가 사진 현상소였어요. 덕분에 필름을 거의 무료로 현상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지금 디지털만큼은 아니지만 정말 많은 양의 사진을 찍었고, 스캔도 하고, 그렇게 열심히 학교를 다니다가 2년째쯤에 취업도 해야 하고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졸업작 「사실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 12:06
그때 생각한 게, 내가 사진을 제대로 배우고 있는 건가, 그리고 내가 외국인으로서 작가로만 활동할 수는 없다는 것. 한국이었으면 달랐겠지만, 저는 작가가 되고 싶기도 했는데 상업 활동을 해야만 일본에 있을 수가 있었어요. 그래서 일단 졸업작을 열심히 만들기로 했어요.
이건 「Waiting for the Light」랑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데요. 여기 제가 진짜 제일 처음 만든 책이 있어요. 오래된 책인데, 한번 봐 주세요. 길에서 그냥 서 있는 사람, 멍 때리고 있거나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그냥 셔터를 눌러서 필름으로 계속 찍었어요. 지금이면 어쩌면 도촬이라고 못 찍을 수도 있겠죠. 제목이 「사실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예요.
이게 제가 계속 생각하는 인생의 테마이기도 한데요. 우리가 사물이나 타인을 볼 때 감정을 이입하잖아요. 그건 우리의 감정이기도 하고, 상상을 펼치는 것이기도 하고. 그 점이 너무 재밌어서, 결국 저 졸업 작품 때문에 인생의 테마가 됐다고 해야 하나. 아직 답을 찾지는 못했는데, 인물들을 만나면서 내가 무엇을 찾고 있나, 무엇을 보고 싶은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지금 이 책에 연결돼요.
"이미지를 해야 그게 미래가 된다" 14:57
저는 솔직히 제가 사진을 정말 잘 찍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언젠가는 사진집을 내겠지"라는 게 머릿속에 그냥 있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어시스턴트로 회사에 들어가서 3년 반 정도 있었는데, 그때 만난 선생님도 계셨고 선배님도 계셨어요. 어떤 선배님이 "이미지를 해야 그게 미래가 된다"고 해 주셨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계속 그림 그려 가면서 1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어시스턴트를 하면서 사진전을 하기도 했고, 어시스턴트 기간이 지나서는 그 회사 안에서 취업비자를 받아 상업 활동도 했어요. 매년 1년, 1년, 제 이미지를 만들어 봤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계속 마음에 걸렸던 게 있어요. 언젠가 제대로 된 하드커버 사진집을 내고 싶다, 근데 언제 내지. 이게 계속 마음에 있었어요.
상업 활동도 재밌었어요. 사람을 만나는 게 재밌구나.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건 계속 어떤 사진집이었고, 그 내용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미지를 하기 시작했고, 상업 활동을 병행하면서 작품 활동을 조금 쉬기도 하고 다시 하기도 하고. 그렇게 회사에 8년 정도 있었어요. 어시스턴트를 하고, 그 회사 안에서 포토그래퍼가 돼서 5년 동안.
어려웠던 건 사진집을 내고 싶다는 마음과 상업 활동도 해야 하고 하고 싶다는 복합적인 마음이었어요. 외국인이라서만은 아니고요. 상업 활동을 해 보니까 또 다른 매력이 있었어요. 쉽게 만날 수 없는 분들과 대화할 수 있고요. 결국 포트레이트, 사람과의 관계, 그런 것들이 다 조각조각 모여 가는, 부품이 조금씩 맞춰지는 느낌. 하지만 완성되지는 않는 감각. 지금도 비슷한 감각이긴 한데,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혹시 질문 있으신가요? 오늘 사진 찍으시는 분들 많으시죠. 저는 진짜 포트레이트를 좋아해서요. 요즘 포트레이트가 너무 없는 것 같이 느껴져요. 일본에서도 그렇고, 사생활 같은 걸 찍는 분들은 되게 많은데, 그냥 포트레이트를 찍으시는 분들이 예전보다 없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분들이 더 나와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3부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타이베이의 부스에서 만난 사람들이 피사체가 됐다. 점심을 먹고 만나서, 연기를 부탁하고, 석 달을 묵힌 뒤에 고른다.
스무 명의 피사체 19:36
이 책을 봐 주신 분들이 많으실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조금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아까부터 계속 말했듯이 일단 첫 사진집을 내고 싶었어요. 언젠가 또 다른 책도 내겠지만, 피사체와 집이나 장소, 배경 같은 그림이 제 머릿속에 몇 개씩 생기기 시작했어요. 옛날부터 좋아했던 작가분도 계셨고, 딱 찍고 싶은 장르는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포트레이트요.
그런데 이야기가 자꾸 섞이네요. 이건 다 이야기하고 나서 다시 돌아올게요. 이 책은 어떻게 만들어졌냐 하면, 제가 큰 진(zine)을 들고 대만에서 이벤트를 하거나 해외에 많이 다녔어요. 지금도 많이 다니고 있는데, 특히 대만에 많이 갔어요. 생각보다 책이 좀 팔리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부스에서, 이벤트에서, 친구를 통해서, 제 작품에 관심을 가져 주시는 분들을 꽤 만났어요.
그런데 그 작품을 사 주시거나 봐 주시는 분들 중에, 만나자마자 "피사체로서 너무 매력적이다" 싶은 분들이 있었어요. 제가 찍고 싶은 분이 항상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만을 두세 번 가고 나니까 이미 찍고 싶은 사람이 한 스무 명 정도였어요. 만나자마자 "다음에 사진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고 그때 말을 걸고 약속을 해요. 인스타그램을 교환하거나 하고, 가끔 연락하면서요.
그게 우연한 계기가 돼서, 그러면 이 만난 멋진 피사체들을 일단 책으로 내자, 해서 피사체들이 정해졌어요. 촬영을 위해서 대만에 가는데, 피사체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어떤 사진인지는 아마 졸업 작품을 만들 때부터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가기 전에 같이 책을 만들고 싶다는 그래픽 디자이너 언니를 만나서 공원에서 제가 하고 싶은 책 이야기를 했어요. 디자인 이외에, 저는 책을 만들기 전에 이미 짧은 소설을 썼거든요. 짧은 문장과 소설, 제목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서, 그걸 보여 주면서 이런 책을 만들고 싶다고 상담하고 촬영에 임하게 됐어요.
이 책의 장소들이 있는데, 집도 있고 자기 방도 있고 건물 같은 것도 있어요. 집 이외의 건물은 제가 다 장소에 가서 테스트를 하고, 인물에 맞춰서 배경을 다 정했던 것 같아요.
점심을 먹고 만난다 25:25
저는 촬영할 때 점심은 먹고 나서 만나요. 같이 먹으면 너무 가까워지기 때문에, 관계의 사이가 좁혀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점심은 먹고 만나서, 일단 커피나 차를 마시고 스몰토크라고 해야 하나, 약간 의미 없는 대화를 해요. 저보다 어린 분들이 많았고, "요즘 어때요" 같은 것들. 그분들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기도 하거든요. 개인적인 이야기거나 학교 이야기거나.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관계가 가까워지기보다, 일단 편안함을. 너무 긴장하지도 않고 너무 풀어지지도 않은, 그런 사이로 조금 좁혀 가요.
촬영이 끝난 후에는,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 사람마다 다르긴 한데 그렇게까지 친해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근데 그게 편한 것 같아요. 제 또래 친구들이랑은 또 진짜 달라요. 지금 20대 친구들과의 관계는 오히려 편한 점도 있고, 너무 가깝지 않아서 좋은 것도 있고요. 어떻게 생각하면, 제가 지금 20대나 10대 후반, 열아홉 살인 분도 있었는데, 그분들을 찍는 게 지금 시대를 보여 주는 것 같기도 해서요. 아마 젊은 친구들이랑 소통하고 싶기 때문에, 제가 50대가 되어도 계속 찍고 싶긴 해요.
재밌었던 게, 은근히 내향적인 분이 많아요. 저는 그렇게 고르려고 고른 게 아닌데, 제가 고르는 분들은 거의 다 조용한 분들이었어요. 말 많거나 그런 스타일은 적었어요. 제가 연락한 분들은 사진 찍는 걸 다 괜찮다고 하셨거든요. 이런 조용한 분이 어떻게 사진을 오케이 하지 싶은데, 내향적인 성격일 뿐이지 자신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은 있으신 거예요. 그 점이 재밌더라고요. 그 공통점이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난 것 같아요.
사람마다 찍는 시간이나 일수가 달랐어요. 진짜 잘 찍히시는 분들도 있고요. 모델은 아니지만, 거의 다 일반인이신데 어느 정도 자기 표현력이 있으신 분들도 많았어요. 제가 어려웠던 건 너무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강한 분들이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포즈가 있기도 하고, 자기가 예뻐 보이는 각도를 알거나. 어떤 한 분은 제가 찍고 싶은 표정이 한 장도 안 나온 날이 있었어요. 실물보다 예쁘게 찍히면 매력적이 안 나오더라고요.
제가 찍는 사람들의 표정은 거의 비슷하거든요. 무표정에, 좀 멍 때리고 있는데 눈을 딱 뜨지 않은, 약간 그런 거요. 그 표정이 안 되는 분도 있어요. 왜인지 모르겠는데, 그래서 시간이 걸리는 분들도 있고요. 찍을 때는 많은 요소를 넣거나 과하게 설정하지 않고, 어느 정도 정해서, 제가 상상한 사진보다 더 좋은 컷이 나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찍어요.
연기를 부탁하다 31:47
이번에는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찍었어요. 집이든 집이 아니든 어떤 장소를 정해서 찍을 때, 오히려 연기를 한다는 쪽으로 의식하게 하려고 했어요. 그냥 찍게 되면 '찍히는 것'을 의식하잖아요. 연기를 의식하면서 찍는 과정이 저에겐, 제가 찍고 싶은 본질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나온 거예요.
같이 소통하면서 찍으면 그 표정에서 우리의 관계성이 보이거나, 다른 점들이 부드러워지는 게 제가 찍을 때 보여요. 그래서 연기를 하자, 같이 하자, 해서 "여기서 봐라" 하고 찍기도 하고, "어떤 표정은 하지 마라" 하기도 하고요. 그분이 집에서 이렇게 있는데 이런 표정을 정해서 찍기도 하고, 장소를 조금 바꿔 보기도 하고요. 그런 사진을 누가 봤을 때 궁금하게 생각하는,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사진. 우리의 관계가 아니라, "이 사람 왜 여기에 서 있지" 이런 호기심을 가지게 하는 사진을 찍는 것 같아요.
사진을 많이 찍기도 해서, 솔직히 저한테는 찍는 것보다 셀렉이 어려워요. 좋은 사진을 찍으면 되는 게 아니라서, 너무 좋은 사진보다는 호흡하는 느낌으로.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혼자 있구나"라고 느낄 때가 마지막쯤에 와요. 그럴 때 셔터를 누르는 것도 많고요.
우리의 관계가 아니라, "이 사람 왜 여기에 서 있지" 하는 호기심을 가지게 하는 사진.
34:09
셀렉과 숙성, 김치처럼 35:46
셀렉이 진짜 저는 어렵더라고요. 잘하시는 분은 진짜 잘하시는데, 다른 분이 하면 의미가 아예 달라지기도 하고요. 남의 사진을 보면 "이렇게 하면 되겠네" 말할 수 있는데, 제 사진을 보면 예쁜 거, 잘 찍은 것만 고르게 되는 것 같은 게 있어서요.
그래서 제가 항상 하는 게, 여러분도 하시겠지만, 사진을 꽤 많이 찍긴 하는데 찍고 나서 한 달 이상은 사진을 보지 않아요. 한 달 이상, 두 달, 석 달 정도. 그래도 안 보일 때도 있고, 보일 때까지 좀 덮어 두는 거예요. '숙성 기간'이라고 저는 부르는데요. 사진을 찍고 며칠 뒤에 바로 열어 보면 셀렉하는 사진이 조금 객관적이지 못한 것 같아요. 약간 간이 안 밴 고기를 먹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 사람이 좋아진 감정 같은 것도 있을 수 있고,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섞여서 객관적으로 사진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아서, 사진은 항상 그렇게 오랫동안 안 보다가 다시 열어 봐요. 김치 같은, 김치 익으면 맛있는 그런 거요.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지만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리고 책을 만든 뒤에 생각한 건, 너무 잘 찍은 사진을 배제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 사진이 너무 강하면 다른 사진이 약해 보일 수 있거든요. 포트레이트라 오히려 옆 사진도 인물, 인물, 계속 인물이니까 인물 자체로도 센데, 너무 센 것만 오면 밸런스가 안 맞아요. 저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얇은 종이들이 이렇게 쌓여 가는 느낌이랄까. 다 두꺼우면 너무 커져 버리니까 얇게 얇게, 가끔 두껍고. 그런 레이어가 된 사진은 되게 중요하고, 책을 내고 나서 알았지만 셀렉트는 그런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제 책도 그런데, 매일매일 달라요. 오늘 보면 괜찮은데 다음 날 보면 "이렇게 찍었지" 하는 게 많고, 나중에는 "이렇게 찍어야지" 하는 것도 많고요. 또 몇 주 있다가 보면 "이건 진짜 잘 찍었네" 하다가, 또 나중엔 "더 떨어져서 찍어야지" 이런 것도 보이게 되고요. 사진집을 내고 나서도 제 사진집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나는 뭘 만들고 있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복잡한 감정이 들기도 해요. 그런 느낌을 항상 느낍니다.
찍고 나서 며칠 뒤에 바로 열어 보면 객관적이지 못해요. 간이 안 밴 고기를 먹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36:57
4부 표정과 거리
질문이 시작된다. 패션 스냅처럼 보일까 하는 고민, 관계가 생기기 전에 찍는 일, 무표정한 얼굴이 말하려는 것.
첫 질문: 패션 스냅처럼 보이지 않을까 40:45
미리 질문을 보내 주신 분이 있었어요. 감사해요. 그 이야기를 좀 해 볼까 해요. 사진을 찍고 계신, 아마 일로도 하시는 분인데, 요즘은 뭔가가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예전처럼 다큐멘터리 책도 당연히 많지만, 시대가 바뀌다 보니 찍고 싶은 사진이 아예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아예 상업도 아닌, 그 사이에 무언가를 찍으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질문을 읽어 볼게요.
사전 질문
안녕하세요. 작가님 작업과 관련해서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 메시지 드립니다. 저는 작업에 참여하는 인물들이 '남이 바라보는 나'와 '내가 정말 원하는 나' 사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를 배경으로, 그와 연관되는 사물과 공간이 있는 사람을 피사체로 촬영하고 있어요. 그분들의 공간도 같이 등장하고 있어서, 작가님 책의 배경들을 너무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제 사진이 패션 사진, 패션 스냅 같다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주제와 이어지려면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는 고민이요. 여러 사람을 만나 작업을 이어가면서, 이런 사진이 너무 패션적이거나 가벼워 보일 수 있다는 고민은 없으셨는지, 일회성으로 소비되는 이미지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여러 번 읽으면서 생각해 봤는데, 고민을 안 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저도 생활을 위해서 상업 사진을 하고 있고, 의뢰를 받아서 하는 거라 촬영을 업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고민이라고 해야 하나. 촬영을 일로 할 때와 작품을 만들 때 사이의 모습은 항상 좀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하루 정도 생각을 해 봤어요. 그냥 개인적인 표현인데, 예를 들면 상업 사진은 드라마라고 한다면 작품을 만드는 건 영화 같은 마음이 들어요. 영화가 더 어렵겠지만, 그런 감각이 저한테는 좀 가까운 느낌이었어요.
상업 촬영을 할 때는 목적이 있잖아요. 옷이 예쁘게 보여야 한다거나, 이분의 책을 팔아야 한다거나, 음식이 맛있어 보여야 한다거나, 목적이 확실하게 있고요. 작품은 답이 없고, 아무도 하라고 부탁하지 않았는데 싸우고 있는 느낌이에요. "패션적으로 왜 보일까"를 생각하면, 사진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사람보다 둘의 관계성이 더 보이거나, 옷이 더 보이거나, 너무 예쁘거나 할 때 조심해야지 했던 건 있는 것 같아요.
모델을 찍을 때와 배우를 찍을 때도 다른 것 같아요. 배우 중에 포즈를 잘 잡는 분들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포즈를 못 잡으시는 분들이 많아요. 근데 그게 더 리얼리티가 있으면서 좋은 점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피사체로 찍기에는 모델이 좀 더 어려운 것도 있고요. 그리고 제가 조심하는 게, 너무 다큐멘터리적으로 가지 않는 것도 중요해서요. 제가 찍고 싶은 사진은 리얼한 사진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20대가 어떻게 보여지는지, 제가 보고 있는 그 관계예요. 이런 시대에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많이 찍겠어요, 보는 게 옛날이랑 다른데. 그래서 본 적이 없는 약간 신비한 사진, "이런 사진 찍고 싶다"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본 적이 있는 사진이 아닌 사진을 찍고 싶다. 그래서 셀렉할 때도 "이런 건 별로 안 찍어 봤네" 하는 것도 고르고, 관계성보다는 "이 사람 어떤 사람일까, 무슨 일 하고 있을까" 같은 호기심으로 가요.
리터치도, 저는 오히려 일부러 조금 어둡게 해요. 일을 하다 보면 피부를 계속 밝게, 밝게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제 작업은 섀도를 올리거나 하이라이트를 조절하거나 하는 식으로 조금 어둡게 하고요. 그러면 패션 사진으로 안 보일 확률이, 제 생각에는 조금 낮아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심플하게요. 욕망을 세게 느끼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을까 하는 사진을 찍고 싶어요. "오늘 촬영 진짜 좋았는데" 하는 날이 안 좋더라고요. 진짜 그래요. 오늘 예쁜 거, 좋은 거 많이 찍었는데 하고 집에 가면 별로 안 좋고, 오늘 열심히 찍었는데 별로였나 했을 때는 좋은 게 또 나중에 있더라고요. 감정에 따라 느끼는 게 다른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야 보이는 뭔가가 있는 거구나.
관계가 생기기 전에 찍는다 51:59
청중
작업 과정을 말씀해 주셨는데, 짧은 글도 쓰시고 대만에서 로케이션도 미리 다 가서 한 번씩 보시고, 그 사람과의 관계가 쌓이기 전에 여러 가지를 정해 놓으신 거잖아요. 그런데 커피 한 잔 마시고 바로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게 저는 너무 신기해요. 관계가 안 생기기 전에 바로 사진부터 찍기 시작하면 방어적인 표정이 오히려 많이 나오고 카메라를 더 의식하거든요. 제가 남자여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처음 한두 번은 거의 100퍼센트 다 버린다고 생각하고 찍어요. 그다음에야 예쁜 얼굴, 표정이 아니라 자기 알맹이를 조금 상대에게 보여 준다는 느낌이 오거든요. 화학 작용이라고 할까요. 그런 안 좋은 과정을 다 겪으셨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으셨는지.
저는 대만에서 촬영 일수가 정해져 있었거든요. 찍으면 써야죠, 그게 예의라서. 열심히 찍기도 했고 솔직히 많이 찍었는데 사용하는 건 많으면 네 컷 정도예요. 많은 사진들 중에 그런 건 있어요. 근데 저는 관계가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찍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관계가 너무 좋아지면 그 표정이 너무 따뜻해지거나 너무 부드러워져서, 제가 원하는 표정이 아닌 표정을 찍게 되기 때문에요. 대부분은 두 번째 만남 정도의 친구를 찍었어요. "이것도 찍어 봐" 해서 찍긴 했는데 안 쓴 것이 진짜 많고요. 한 사람에 몇 컷을 찍었는지 세어 보진 않았는데, 진짜 많이 찍었어요.
근데 모르겠어요. 저는 만났을 때부터 "이분은 찍어야지" 하는 게 있어서, 좋아하는 피사체가 있나 봐요. 모델 지망생이 아니라 일반인의 자연스러움이 있어서 좀 더 쉬웠을 수도 있어요. 제가 모르는 피사체들이 더 매력적이고요. 예를 들면 이렇게 돌아보는 표정으로 찍고 싶다, 만났을 때 이미 알아서. 그리고 제가 찍고 싶은 표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만 찍으면 된다. 다른 것은 일단 이것저것 찍어 두는데 그 표정만 찍으면 된다는 약간의 심플함은 있었던 것 같아요.
청중
사진들을 보면 사진 속 인물을 궁금해하게 되는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 호기심을 자아낸다고 표현하셨는데, 설명하시는 걸 들어 보면 피사체의 표정이 따뜻하다, 다정하다 이런 표정이 아니라 어딘가 조금 감정에 빠져 있는, 그런 것들을 추구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 표정을 담게 된 이유가 있으세요?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것과 연결되는 건지.
다정하게 이런 것들을 담는 작가님도 있고, 어떤 작가님은 반대의 것들을 담고요. 저는 작품으로 찍은 작업에서는 웃음을 배제하고 싶었어요. 상대방이 있고 제가 있어서, 그 관계성에 대한 반응으로 웃음이 나오는 거니까요. 결국은 그분이 혼자 있는 모습을 기록하는 게 일단 목적이었고요. 웃는 사진은, 가족 사진은 다르지만, 뭔가 "너무 따뜻하다"로 끝나 버리잖아요. 저는 친구들끼리조차도 웃는 사진은 안 찍었던 것 같아요. 웃는 사진은 누가 저를 찍었으면 좋겠는데, 안 찍는 것 같아요.
신기한 게, 표정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표정을 풀어 달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냥 빠져 있는 표정을 보는 사람들의 감정은 부정적인 쪽이 많더라고요. 방향이 좀 신기했어요. 그렇다고 저도 웃는 걸 담고 싶은 건 아니어서, 그 사이가 있는 것 같아요. 결국 찍고 싶은 표정은 한정되어 있는 것 같아요. 가끔 보면 진짜 눈을 반쯤 뜬 얼굴들을 계속 찍고 있더라고요. 지금까지 해 온 작품들을 보면요.
관계가 너무 좋아지면 표정이 너무 따뜻해져요. 그래서 대부분은 두 번째 만남 정도의 친구를 찍었어요.
54:24
혼자 있는 얼굴을 통해 나를 본다 1:00:16
그렇게 연기하는 게 솔직히 어려운 분들도 있어요. 자기는 자연스럽게 있다고 생각하는데 의식을 하게 되니까요.
청중
잘 몰라서 여쭤보는데, 목표 표정을 디렉팅해 주시나요?
대부분은 그렇지 않아요. 혼자 있는 거니까, 혼자 있는 모습을 표현해 달라고 계속 이야기하는 정도예요.
청중
근본적인 질문인데, 그 수많은 사람들의 멍한 얼굴을 통해서 뭘 얘기하고 싶으신 거예요?
아마 저도 그걸 생각하는 게, 제가 혼자 있는 모습을 계속 투영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분들을 찍었긴 했지만, 그분들을 통해서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청중
보통 작가가 바다를 찍거나 풍경을 찍었을 때는 거기에 작가의 감정이 있잖아요. 그런데 피사체는 아무리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눈코입이 있다 보니 그 사람의 감정이 있고, 작가의 감정도 있고, 두 가지가 동시에 있잖아요. 이걸 전달하는 게 어렵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이분을 오브제로 찍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까지 생각을 하고 찍지는 않는 것 같아요. 솔직히 그거 계산을 다 하고 찍지는 않아요. 일단 그 과정들을 바라보고 셔터를 누르고요. "지금 내 감정을 투입해야지" 이런 생각은 절대 안 해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내가 뭘 하고 싶었지, 사진을 셀렉트하면서 제가 썼던 문장을 다시 읽거나 할 때 조금 맞춰 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완벽하게 하진 않는데, 찍을 때는 최대한 심플하게. 그렇지만 배경은 집으로 찍거나 시장에서 찍거나, 이런 요소들을 넣고요. 사진에 깊이를 넣으려고 넣을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청중
뒷모습이 있어도 괜찮았을 것 같아요. 뒷모습을 찍으시는 한국 작가분도 계시죠.
그 작가님 작업도 있어서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정신이 없어서 그렇게 여유 있지 않았거든요. 근데 사진집을 내고 나서 "이게 있으면 좋겠다"는 게 있는 거예요. 그건 또 다음에 배워서 다음 책에 넣어야죠. 배움이 많아요. 솔직히 사진집을 내기 전과 낸 후의 변화가, 배움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처음부터 완전히 개념적으로 찍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찍고 만들고 나서 "예를 들면 뒷모습이나, 더 멀리서 찍거나, 진짜 작게 찍은 사진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반성들이 좀 있어요.
표정이 끝내 안 나오는 사람 1:06:21
청중
연기한다고 의식하면 표정이 나온다고 하셨는데, 만약에 그 표정이 절대 안 나오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떻게 하세요?
저는 그분을 찍었으면 사진을 써요. 사진집 찍는다고 만났는데 그 사람을 안 쓰면 얼마나 슬프겠어요. 제 잘못이지, 제가 못 찍은 거니까요. 진짜 한두 명 정도는 찍는 게 힘들었어요. 멋있는 분인데 의식이 너무 있어서요. 되게 따뜻한 사람이었는데, 그분은 대만어로 대화하는 게 아니라서 영어도 못하시고, 계속 ChatGPT로 번역하면서 대화했어요. 오래 사진을 찍었고 길을 많이 걸었어요. 마음에 딱 드는 표정이 아니더라도 계속 찍죠. 하루 더 찍고, 놀고, 그러면서 좀 더 찍고. 시간이 좀 더 걸렸던 것 같아요. 프로페셔널한 모델분도 아니고, 당연한 거긴 한데 잘하시는 분도 잘하셔서요.
청중
찍으실 때 어떤 상황을 부여하세요? 아니면 무슨 상상을 하고 있으라고 하세요?
일단 혼자 있는 거니까, "여기 앉았으면 지금 혼자 있는 것처럼 해 봐라" 이렇게 해요. 혼자 있으면 이렇게 있지 않잖아요. 혼자 약간 모니터를 보고 있는 표정, 진짜 눈이 좀 이렇게. 그 표정을 찍고 싶어서요. 되게 심플한데 어렵기도 해요. 자세가 너무 뭔가를 뿌리는 포즈면 안 되고요. 근데 몇 가지는 찍긴 해요, 피사체가 해 줬으니까. 일단 찍으면서 조금씩 상황을 바꿔 나가요.
제가 왜 연기를 부탁했냐면, 그냥 친해져서 찍으면 나오는 좋은 것은 또 다른 좋은 것인 것 같아요. 두 사람의 관계에 연결되었다는 표정이 나오기 때문에. 그건 제가 원하는 게 아니고, 결국은 그냥 그 사람만 찍는 거죠.
시선의 방향, 사람 없는 사진 1:09:52
어려웠던 게, 멍하니 있는 사진이라는 게 솔직히 눈을 맞추고 있는 사진은 원래 아니에요. 근데 의식적으로 눈을 맞추고 있는 사진을 넣었어요. 다 다른 곳을 보고 있으면 재미가 없더라고요.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입도 왼쪽 오른쪽, 이렇게 긴 책에서 옆에 옆에 놓이는 시선 처리 같은 걸 생각하게 돼요. 책으로 만들 때랑 인터넷에 올릴 때가 또 달라요.
인물이 없는 사진을 넣을까도 고민했어요. 너무 드라마틱해져서, 스냅이나 풍경 사진은 일부러 비중을 조절했고요.
5부 빛
제목이 생긴 순간. 대만 호텔의 야간 경비원과 경주 휴게소의 새벽이 택시 안에서 겹쳤다.
야간 경비원과 경주 휴게소 1:11:16
제목 이야기를 할게요. 대만에서 촬영을 끝내고 아침 비행기라 호텔에서 나가는데, 호텔 앞에 야간 경비원분이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계셨어요. 손님들이나 배달 오는 분들과 만나기도 하시고, 계속 조용히 계시는 그 모습이요. 그 호텔에 자주 머물러서 그런 것도 있는데, 머릿속에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계속 남았어요.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데, 책 뒤에 짧은 문장을 넣어야지, 하고 그때 썼어요. 그게 책 뒤에 있는 문장이에요.
그때 생각난 게, 책에도 써 있지만, 그 장면과 흡사했던 게 있어요. 제가 일본에 오기 전에 단기로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경주 휴게소에서 밤에 일했거든요. 한 달 정도 했는데, 진짜 깜깜한 새벽에는 아무도 안 와요. 가끔 운전하시는 분들이나 여행하시는 분들, 연예인도 오고 그랬는데, 깜깜한데 차가 지나가면서 갑자기 빛이 확 들어오는 거예요. 그때가 딱 갑자기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이 제목이 「Waiting for the Light」예요. 언제 빛이 들어올지 모르는, 나이에 상관없이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느낌. 택시를 탔을 때 갑자기 생각이 나서 그때 문장을 썼어요. 사진은 아직 다 안 찍었지만 뒷문장은 이렇게 넣어야지, 하고요. 그렇게 또 조각을 하나 늘려서 사진집으로 가는 과정들이 있었어요.
깜깜한데 차가 지나가면서 갑자기 빛이 확 들어오는 거예요. 언제 빛이 들어올지 모르는, 나이에 상관없이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느낌.
1:13:05
「드라이브 마이 카」의 낭독 1:13:58
아, 맞다. 지금 생각났는데, 아까 제가 왜 혼자 있는 연기를 부탁했냐고 했던 거요. 어떤 영화감독이 영화를 찍을 때 배우한테 대본을 주면서 "그냥 연기하지 말고" 하고, 일부러 그런 과정을 넣는대요. 교과서 읽듯이 같이 모여서 그냥 읽기를 하는, 그런 과정을 거치고 연기에 들어가면 또 다르게 느낀다고요.
이걸 왜 지금 얘기하냐면, 제 책을 봐 주신 분이 제가 그 이야기를 했더니 "꼭 비슷하네요" 해 주셔서 생각난 거예요. 일본의 「드라이브 마이 카」 감독이 그렇게 한다더라고요. 일부러 그런 상황이나 과정을 넣는 게, 어쩌면 우리 관계를 의식하는 것보다 다른 것에 집중하게 되고, 그래서 다른 표정이 나올 수 있고, 우리가 의식하는 것보다 그 의식이 더 편하게 해 줄 수 있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좀 했어요.
6부 종이와 책
전화번호를 잊어버린 친구, 영수증으로 남긴 기억, 세계에서 제일 못 만든 책들. 독립출판과 아트북페어가 이 사진집의 배후다.
진(zine)에 불이 붙다 「너의 전화번호를 잊어버렸다」 1:15:24
이 책도 일본 그래픽 디자이너 언니와 같이 만들었고, 독립출판이에요. 저희가 직접 다 만들었어요. 진(zine)이라는 게 일본에서 몇 년 동안 꽤 유행이라고 해야 하나, 예전부터 있었는데 지금은 더 많아져서 작은 진 이벤트가 요즘 많아요. 제가 대만을 자주 가게 된 것도, 상업 활동으로 만난 그 언니가 개인 작업도 자주 하시는데 도쿄 아트북페어랑 타이베이 아트북페어에 가신다고 하셔서요. 친해졌을 때 가까이 살기도 해서, "그러면 대만 가고 싶으면 책 하나 같이 만들어서 가자"고 한 게 더 큰 책이에요. 책에 대한 불을 붙인 계기죠. 안 보신 분은 봐 주세요.
일단 책이 있어야 재밌을 것 같아서 반년 정도 걸려서 만들었는데, 큰 진이라 보기 어렵죠. 제목이 「너의 전화번호를 잊어버렸다」예요. 예전에는 전화번호가 없으면 친구를 만날 수가 없었잖아요. 제 어렸을 때 저희 어머니가 전화번호부에 번호를 사이사이 많이 적어 두셨는데, 그런 데서 영감을 받기도 했고요. 그냥 인쇄된 종이가 아니라, 인쇄된 종이 위에 사진을 붙이거나 필름을 붙이거나 하는 레이어드된 재밌는 책이라 호응이 좀 좋았어요. 그래서 책 만드는 게 재밌다, 개인적으로 그런 책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되게 높아졌던 계기예요.
이 책은 뒷모습을 넣어 가면서, 호기심으로 사람 속을 들여다본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걸 표현했고요. 되게 큰 사이즈로 한 것도, 사이즈가 크니까 보는 느낌이 또 다르더라고요. 사진으로 찍은 벽 위에 사진을 올리기도 하고요. 이 사진은 제가 일본에서 처음 만난 친구인데, 얘가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또 못 만나게 됐고, 알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는데 다른 사람이 받는 거예요. 외국분이라서요. 그런 것도 좀 재밌어서 일부러 전화번호를 넣었어요. 진짜 전화번호는 이제 모르니까요. 필름적인 요소로 필름도 붙여 보고요. 이런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어떤 것은 다른 기억으로 변하기도 하고, 이런 기억이었는데 지워지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사진으로 표현해 봤어요.
글을 쓰는 걸 잘하지는 못하는데, 글을 써 보면 또 보이는 게 있어서 글을 넣기도 하고요. 색을 넘길 때 소리도 재밌는 것 같아서, 만들 때 많이 생각했어요. 이 부분은 되게 오래된 친구인데, 좀 아팠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는데, 그래서 친구와의 기록을 일부러, 친구와 같이 갔던 가게들, 그때 기억들을 영수증으로 표현해서 인쇄해서 하나하나 붙였어요. 홍콩의 가게에서 쭈글쭈글해진 메뉴판을 일부러 스캔해서 쭈글쭈글한 종이로 넣기도 했고요. 진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있으면 해서, 이런 것도 진이라고 하면 진이에요.
한 세트처럼 이런 모양이 너무 만들고 싶어서 한때 진에 빠져서, 건물의 밖과 안 같은 걸로 하드커버 표지를 만들고 사진을 한 장 넣고 수제본으로 한 것도 있어요. 이 책은 코로나 이후에 예전 사진을 다시 보니까, 코로나 때 사진을 보니 다 마스크를 하고 있고 회사원들이 있고, 공동주택이나 집합 같은 요소들, 마스크를 한 사람들, 그런 사진들이 눈에 들어와서 만든 거예요.
아트북페어에서 만난 책들 1:25:01
이 큰 책을 들고 도쿄 아트북페어에 갔을 때, 진짜 세계에서 정말 재밌는 작가분들, 크리에이터분들, 포토그래퍼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고 많이 봐 주셨어요. 책을 만들고 나서 재밌는 게, 한 권이 팔릴 때까지 정말 긴장돼요. 하나도 안 팔리면 어떡하지. 그 긴장이 무섭기도 하면서 스릴이 있는 것 같고요. 이 빨간색 「Waiting for the Light」를 만들었을 때도 언제 팔리려나 정말 무서웠는데, 또 어떻게 많이 봐 주시고 넘겨 주셔서요.
대만 아트북페어는 재밌었던 게, 저는 계속 도쿄에서만 활동하다가 대만에 큰 책을 들고 갔는데, 정말 옆에서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고 코스튬을 하고 있고, 정말 본 적이 없는 책들이 있었어요. 저는 여태까지 책을 예쁘게, 잘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못 만들까" 싶을 정도의 재밌는 책이 되게 많았어요. 책과 뭔가 그린 사진 같은 것들요. 젊은 분들이 많으셨는데, 그 날것의 느낌들, 아티스트분들 작품에서 좋은 배움이 정말 많았고, 그때마다 좋은 피사체분들도 만났어요.
제가 계속 비슷한 말을 반복하고 있지만, 사진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저는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계속 같은 것을 반복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대답을 찾고 싶은 게 아니라 더 내 자신이 성장해야 되는 걸 느끼고요. 사진을 계속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기도 하고, 솔직히 사진을 잘하는 것보다 이렇게 사진을 계속하는 게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요. 천재가 아닌 이상은 계속 꾸준히 해서 보이는 단계가 몇 번이나 있는 것 같아요. 스테이지라고 해야 하나.
저는 여태까지 책을 예쁘게, 잘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못 만들까" 싶을 정도로 재밌는 책이 되게 많았어요.
1:27:11
소설에서 시작된 책 1:30:17
청중
항상 가는 호텔의 경비원 아저씨 때문에 이야기를 쓰셨다고 했잖아요. 사진을 하시는 분들이 문장을 쓰면 그 장면을 묘사하듯이 쓰게 되잖아요. 짧은 문장을 쓰다 보면 한 장면이 생각나고 그런 컷을 찍게 되는 패턴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경비원 아저씨의 움직임을 소설로 쓰셨고 그게 시작이 돼서 제목이 나온 거잖아요. 그러면 그 제목에 맞춰서 섭외된 분들의 느낌을 만들려고 노력하신 건지 궁금해요.
그게 큰, 그 책 안에 있는 어느 이미지였고요. 거기서 점점 넓혀 간다는 느낌으로 사람을 만나서 얼굴이 또 밝혀지고 이런 느낌. 그리고 빛을 기다린다는 게, 언제 올지 모르는 빛을 기다리는 불확실한 그 느낌을 조금씩 찾아 갔던 것 같아요. 계속 새로운 모델을 만날 때마다 글을 다시 보기도 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한 분 한 분 봤어요. 머릿속에 있는 것보다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컷을 셀렉하기도 하고요. 찍을 때는 그렇게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말씀해 주신 것들도 다 연결이 되어 있었구나, 라는 것을 책을 만들면서 알게 됐어요.
결국은 제가 사진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를 생각하면, 지금 젊은 친구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연결되고 싶어서예요. 사진이라는 걸 무기라고 해야 하나, 툴로 삼아서 그분들과 연결되고, 그분들을 만나는 걸로 지금의 시대를 조금 더 알게 되고. 그런 점이 있어요.
두 번째 만남의 거리 1:33:40
청중
피사체들은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사진을 찍기 위해 연락을 하신 건가요?
주로 대만 아트북페어에서 만났던 젊은 분들이에요. 대부분은 "다음에 촬영할 수 있나요"라고 물어봐요. 괜찮다고 하시는 분들의 연락처를 다 받아요. 도쿄에서도 그런 분들이 있으셨고요. 딱 만났을 때 "내 사진집에 들어와 주셨으면 좋겠다" 하는 분들, 한눈에 반해서요. 여자분이든 남자분이든 허락을 미리 받고, 다음에 대만에 갔을 때 찍는 거예요. 가기 전에 한 달이면 한 달, 일정을 잡아요. 한 번 더 가기도 하고요. 웬만한 분은 다 오케이 하셨거든요.
그냥 그렇게 만나서, 두 번째로 만나서 찍는 거예요. 아니면 다시 연락을 해서 도쿄에서도 같은 느낌으로 한 번 다른 곳에서 만나고요. 그러니까 두 번째 만남 정도의 거리에서 사진을 찍었어요. 그래야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고, 처음 만나면 좀 다른 것 같아요. 두 번째 만나면 어쩌면 신뢰가 조금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있는 작업도 알고 있고, 이런 작업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난 뒤에 만나는 거라, 조금 이해하고 만나 주시는 느낌이 지금 생각해 보니까 있는 것 같아요.
흑백이냐 컬러냐 1:35:35
청중
필름도 쓰시고 디지털도 쓰신다고 하셨는데, 이 책을 보면 무표정인 사람들이 많잖아요. 이런 피사체를 흑백 포트레이트로 하실 생각은 없으셨는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컬러로 찍으신 건지요. 저는 흑백이 주는 집중도가 나름대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고, 필름을 쓰게 되면 또 부합된다고 생각해서요.
저는 학생 때 필름 프린트를 했었는데, 컬러 프린트가 너무 재밌어서 그 컬러를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거예요. 솔직히 흑백을 별로 안 했어요. 흑백을 하긴 했는데 그때도 흑백 사진을 찍지 않아서 컬러 필름으로 흑백 프린트를 했었어요. 근데 지금 이야기를 들으니까, 저도 가끔 생각하는 게 흑백 프린트라는 게 진짜 예쁘잖아요. 블랙에서 화이트까지의 그것이요. 그러면 또 다르게 보이는 게 있을 것 같아요. 흑백을 많이 뽑아 보고 싶어요. 디지털로는 해 봤는데요. 감사합니다.
상업 촬영의 컷을 작업에 쓸 수 있나 1:37:24
청중
상업 촬영을 하시면서 "이 컷은 내 작업에 넣고 싶다" 하는 게 생기지는 않으세요?
있죠. 근데 허락을 받아야 되니까요. 더 유명해지면 그렇게 하고 싶어요. 진짜 그런 사진 정말 많아요. 못 올린 사진도 많고, 상업 사진은 연예인분이 허락을 해 주셔야 돼서요. 언젠가 그런 걸 우선 해 보고 싶어요. 그러면 좋죠, 봐 주시는 분들이 또 늘어나잖아요. 가끔 슬픈 건, 제가 좋아하는 작품과 상업 작품을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 좋아요는 별로 신경 안 쓰지만 여기는 천 개인데 여기는 백 개고. 저한테는 똑같은 사진인데요.
일본은 되게 엄해서, 연예인들도 제 사진을 그냥 올리지를 못해요. 허락을 받지 않으면요. 2차 사용료도 내야 되고, 되게 엄격해요. 함부로 프로필 사진으로도 못 써요.
심심한 배경: 일본의 집, 대만의 집 1:38:52
청중
만약에 피사체의 집이 너무 평범하고 심심하면 어떻게 하세요?
가장 아쉬운 게 그거예요. 일본은 아파트가 다 비슷비슷하고 너무 깨끗해서요. 그럴 때 조금 아쉽죠. 청소를 더 하시거나. 배경이 너무 심심할 때는 예를 들면 일본 집에서 촬영하게 되면 집 앞에서 할까, 이런 적도 있었어요. 대만이 워낙 배경이 화려하다 보니까, 일본에서 찍을 때는 최대한 요소를 좀 넣으려고 했어요. 시계를 얻는다든가. 20대 친구들의 생활이 저희랑 거의 똑같거든요. 그래서 조금 요소를 더 넣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원래는 다 집에서 찍고 싶었어요.
가로 사진, 독일 종이, 1센티미터 1:40:46
청중
책이 가로로 긴 판형인데, 종이나 모양은 어떻게 정하신 거예요?
디자이너 언니가 가로 사진이 많으니까 이걸로 하자고 했어요. 저는 다음 책은 다른 모양으로 내고 싶어요. 이 책이 디자인이 재밌기도 한데, 가로로 길게 하면 종이 인쇄가 비싸요. 진짜예요. 제본도 일본에서 하는 인쇄소에 부탁했고, 테스트 프린트를 너무 많이 해서, 색이 안 나와서 너무 어려웠어요.
청중
표지 사진을 비워 놓거나 다른 사진으로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꼭 그 사진이어야 했나요?
저는 사진을 넣고 싶지 않았어요. 디자이너 언니가 "이게 더 잘 팔린다", "요즘 책은 이 정도 해야 된다"고 해 주셔서 이렇게 했는데, 솔직히 저는 짧게, 책 제목 없이 하고 싶었어요. 계속 그렇게 해 달라고 보냈는데 안 됐어요. 이 언니는 건축 쪽이랑 이런 디자인을 하시는, 멋있는 분이에요.
청중
책의 물성이나 디자인, 작가의 의도가 어느 정도 들어갔는지 궁금해요. 전체 책 디자인을 의뢰한 건지, 작가가 어느 정도까지 관여한 건지, 그 비율이요.
거의 다 제가 했어요. 종이도 보러 갔었고, 이번에 제일 큰 종이 회사에 가서 전시된 종이 관계도 제가 다 보고 골랐어요. 색도요. 근데 디자인이 워낙 세서, 제가 무서웠던 게 책 표지가 너무 세냐 약하냐예요. 약해 보이잖아요. 그게 저는 너무 두려웠어요. 그래서 딱 이렇게 하고 싶었거든요. 너무 이렇게 될까 봐 두려웠고요.
장소를 넣은 것도 호기심을 느끼게 하려는 거고, "일본이 아니고 여기네" 하는 요소들을 넣는 거랑 보는 걸 좋아해요. 페이지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까지도 계산을 하면서 책을 만들었어요. 편집자분이 있으시면 아마 저보다 더 잘해 주실 텐데, 일본에서 편집자분께 부탁하면 비용이 어마어마하고, 오히려 "이렇게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어려워요. 직접 해 봐야 아는 거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레이아웃을 위해서 일러스트레이션 프로그램을 배웠어요. 레이아웃을 다 하고, 일부러 여백도 사이사이에 한 장 한 장 넣어서 쉼표를 줬어요. 포트레이트잖아요, 한 장 한 장 다. 근데 어려운 건 하얀 종이예요. 하얀 종이만 있으면 되니까요.
디자이너분이 관여하신 건 표지랑 제본 쪽이고요. 언니는 진짜 프로페셔널하기 때문에, 보고 아닌 건 아니라고 해 주시고 지켜봐 주시는 느낌이 있었어요. 제 책이니까 하고 싶은 거 다 말하라고 해 주셨고요. 다른 분이었으면 돈이 진짜 많이 들었을 거예요. 정말 실수도 많이 했고요. 이 종이도 독일 종이인데, 도쿄에 남은 마지막 재고를 인쇄소에 넘겨서 간신히 500부만 했어요. 인쇄소에서 "이것보다 1센티 크면 더 비싸니까 1센티 줄이자"고 해서 1센티를 줄였어요. 그래서 몇백만 원을 아꼈어요. 진짜 1센티 정도 줄이면요. 되게 경험이 있는 인쇄소라 그분이 다 말해 주셔서요. 같은 인쇄소에서 다른 작가님 책도 하셨어요.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까지도 계산을 하면서 책을 만들었어요. 여백도 사이사이에 한 장 한 장 넣어서 쉼표를 줬어요.
1:45:17
7부 한국에서, 그리고 왜 찍는가
6월의 전시가 한국 활동의 시작이었다. 마지막에는 작가가 청중에게 되묻는다.
포토페스타에서 시작된 한국 1:47:50
저도 한국에서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처음에 이야기하려다가 깜빡했어요. 얼마 전 6월에 후지필름 전시가 있었는데, 성남훈 작가 선생님이 불러 주셔서 여러 작가분들과 같이 전시를 했어요. 그때 긴장을 느끼기도 했고,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때도 책을 사 주셨는데, 한국 분들이 포트레이트 사진집을 좋아하시더라고요. 다른 나라보다 더 관심이 있는 것 같고, 사람과의 관계를 좀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 것 같아요. 일본에서는 또 다른 시선인 것 같고요. 저는 일본에서만 배우고 하다 보니까, 한국이 아닌 곳에서 배운 시선을 또 다른 시선으로 봐 주시고 이해하려고 노력해 주시는 게 좋았어요. 그 전시 한 번으로 아는 분이 많이 생겼어요. 인스타그램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응원해 주시기도 하고요.
되묻기: 왜 사진을 찍으세요? 1:49:19
저도 질문을 할까 해서요. 혹시 작가님들 중에, 이건 진짜 답이 없는 건데, 사진을 왜 찍으시는지. 그냥, 이게 어려운 거죠. 자기 표현을 위해서 찍거나, 관계를 위해서 찍으시는지, 조금 궁금했어요.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청중
저는 자기 표현 욕구 때문이에요. 규범이 강한 집안에서 어렸을 때부터 "이게 좋은 거야, 이렇게 해야 해" 하는 교육을 받으면서, 뭐가 좋은지를 스스로 판단하기 이전에 정해진 채로 컸어요. 사진은 그런 분류, "이건 좋은 거야, 이건 어떤 분류의 사람이야" 하는 걸 내려놓을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걸 찾고 발견하는 과정으로요.
청중
저는 취미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제가 불안하거나 고독하다고 느낄 때 사진을 찍어요. 사진에서 그게 묻어 나오는지는 모르겠어요. 어떤 장소에서 그런 감정이 들 때, 요즘 그럴 때가 많았을 때, 지금의 감정을 사진으로 찍고 싶어요.
어떻게 오래 하셨어요?
청중
오래 안 했어요. 저는 사진책도 별로 안 보고, 찍은 사진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드는 게 재밌어서요.
사진 찍은 걸로 자기 이야기를 만드는 게 사진 하시는 분들한테 되게 중요하고 제일 어렵기도 해요. 자기 책이면 정성을 다하게 되잖아요. 근데 원래는 좀 멀리서 떨어져서 봐야 되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다음에 한국에서 또 하고 싶어요. 사진을 왜 찍으시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청중
저는 감흥이 빨리 사라지는 사람이에요. 뭘 보고 금방 헤어나오는 사람인데, 그 순간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사진을 찍어요. 오래 남기고 싶어서요. 그 순간을 담으면 나중에 보면서 기억을 하잖아요. 그런 측면에서는 영상도 비슷한데, 사진은 말씀하신 '숙성'처럼, 그때 못 봤던 걸 돌아서서 나중에 다시 볼 때 "그때 몰랐던 좋았던 이유"를 발견하는 게 재밌더라고요. 좋은 순간을 남기고 싶어서 찍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꼭 자기 자신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맞아요. 솔직히 가끔은 인물이 아니라, 예를 들면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정말 좋아했던 동네에 다시 돌아갔을 때, 오랜만에 와서 설레는 그런 기분을 일부러 찍어 두기도 해요. 특히 필름 같은 건 시간이 지나서 현상하잖아요. 그게 재밌어요.
청중
유명한 연예인이 아니라 그냥 사는 사람들의 기록이 되잖아요. 소중한 순간 같은 걸 남겨 주는 거요. 노래를 만들 때 가사를 이야기하듯이, 시인처럼요.
마무리: 한국 사진의 다른 점 1:58:05
한국의 다른 점이 많았거든요. 정치적 이슈나 그런 이슈로 작업하시는 분도 일본에 비해서 많은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일본에서 한국 작가들의 단체전이 요코하마에서 있었는데, 일본 편집자분들이나 큐레이터분들이 되게 재밌게 봐 주셨어요. 일본보다 그런 이슈라든가 역사 같은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다는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났어요.
순서 없이 여러 가지 말을 했는데, 재밌었으면 좋겠어요.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용어
토크에 나온 말들, 그리고 이해에 필요한 배경.
포트레이트(portrait)
인물 사진. 김아름이 스스로 "진짜 좋아한다"고 밝힌 장르로, 사생활을 찍는 사진과 구분해 "그냥 포트레이트"를 찍는 사람이 줄었다고 아쉬워한다.
하드커버 사진집
양장 제본의 사진집. 그가 20년간 "언젠가 제대로 된" 첫 책의 기준으로 삼아 온 형식이다. 「Waiting for the Light」가 그 첫 결과물.
진(zine)
작가가 직접 만드는 소량 자가 출판물. 일본에서는 몇 해 전부터 다시 유행이며, 작은 진 이벤트가 늘었다. 「너의 전화번호를 잊어버렸다」는 사진과 필름을 인쇄면 위에 붙인 대형 진이다.
아트북페어
아트북과 진을 만드는 이들이 부스를 열고 직접 파는 행사. 도쿄 아트북페어는 2009년에 시작한 일본 최초의 아트 출판 전문 행사로 350곳 이상이 참여한다. 타이베이 아트북페어는 김아름이 피사체 대부분을 만난 곳이다.
독립출판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작가가 기획·제작·유통을 맡는 방식. 그의 책들은 모두 디자이너 한 사람과 둘이서 만든 독립출판물이다.
더미북(dummy book)
인쇄 전에 손으로 만드는 사진집 시제품. 후지필름 코리아는 별도의 '포토 더미북 어워드'를 운영하며, 2026년에는 245권이 출품됐다.
셀렉(select)
촬영본에서 최종 컷을 고르는 편집 단계. 그는 "찍는 것보다 셀렉이 어렵다"고 말하며, 한 사람당 실제로 쓰는 컷은 많아야 네 컷 정도다.
숙성 기간
김아름의 용어. 촬영 후 한 달에서 석 달 동안 사진을 열어 보지 않는 시간. "간이 안 밴 고기", "익은 김치"에 빗댄다.
현상소
필름을 현상하고 스캔하는 곳. 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로 일하며 필름을 거의 무료로 현상했고, 그 덕에 디지털에 가까운 양을 찍었다.
사진 전문학교(専門学校)
일본의 2년제 실무 교육기관. 현역 작가들이 강사로 서는 경우가 많다. 그는 어학원을 마친 뒤 비자를 유지할 방편으로 진학했다가 사진을 만났다.
어시스턴트
사진가의 조수. 졸업 후 회사에서 3년 반을 어시스턴트로 일한 뒤 같은 회사의 사진가가 됐다.
취업비자(재류자격)
외국인이 일본에서 일하기 위한 체류 자격. 그가 "작가로만은 일본에 있을 수 없었다"고 말한 이유다.
도촬(盗撮)
상대 동의 없이 몰래 찍는 일. 졸업작처럼 길 위의 사람을 찍는 스냅이 지금은 그렇게 불릴 수 있다는 자각을 드러낸 말.
2차 사용료
상업 촬영본을 계약 목적 외에 다시 쓸 때 지불하는 비용. 일본에서는 연예인 본인조차 사진가의 사진을 허락 없이 프로필로 쓰지 못한다고 그는 설명한다.
페이지 관계(시퀀스)
사진집에서 앞뒤 사진이 맺는 관계. 시선의 좌우,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 사이에 끼운 백지까지 계산한다.
팩트체크
발화 내용을 공개 자료와 대조했다. 확인되지 않은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적었다.
확인됨
"6월에 후지필름 전시가 있었는데 성남훈 선생님이 불러 주셔서 여러 작가와 같이 전시했다."
후지필름 코리아가 2026년 6월 20일부터 28일까지 노들섬 노들갤러리에서 연 제4회 포토페스타의 특별전 〈서로의 바깥〉 참여 작가 명단에 "일본, 김아름 〈빛을 기다리며 WAITING FOR THE LIGHT〉"가 올라 있다. 디렉터는 성남훈이며, 4명의 큐레이터가 추천한 8명의 젊은 작가 교류전이다.
도쿄 아트북페어(TABF)는 2009년 창설된 일본 최초의 아트 출판 행사로 도쿄도현대미술관에서 열리며, 2026년에는 초대제로 운영되는 별도 행사 'TOKIO ART BOOK FAIR'도 5월에 열렸다. 타이베이 아트북페어 2026은 3월 6일부터 8일까지 열렸다. 두 행사 모두 실재하며 정례적으로 열린다.
일본에는 예술 활동을 위한 재류자격('예술')이 있지만, 활동 실적과 그것만으로 생계가 가능하다는 수입 증빙을 요구해 갓 졸업한 신인이 얻기는 어렵다. 회사 소속으로 취업비자를 받아 상업 촬영을 한 그의 선택은 현실적인 경로였다. 다만 "불가능"보다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움"에 가깝다. 공식 자료로 대조하지 않은 일반적 설명이다.
미확인
"일본은 연예인도 허락 없이 사진을 못 쓰고 2차 사용료를 내야 할 만큼 엄격하다."
업계 관행에 대한 진술이다. 일본은 초상권을 법률로 명문화하지 않고 판례로 보호하며, 사진의 2차 사용은 촬영 계약과 저작권에 따른다. 관행이 엄격하다는 서술은 그럴듯하지만 이 기록에서 독립적으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미확인
"독일 종이, 도쿄에 남은 마지막 재고로 500부, 1센티를 줄여 몇백만 원을 아꼈다."
제작 세부는 작가 본인의 진술로만 남는다. 판형을 줄여 종이 절단 손실을 줄이면 비용이 내려간다는 논리는 인쇄 실무에서 타당하다. 인쇄소 이름과 같은 곳에서 책을 냈다는 다른 작가의 이름은 녹음상 확인되지 않았다.
미확인
녹음에서만 들리는 고유명사들
전문학교 앞 역 이름, 강사진 이름, 요코하마 단체전의 정확한 명칭은 음성 인식 결과가 불안정해 본문에서 특정하지 않았다. 북토크 장소는 녹음상 "사진서가"로 들렸고, 신월동 사진서가가 맞다는 참석자 확인을 받아 본문에 반영했다. 후쿠오카 어학연수 당시의 나이도 두 인식 결과가 달라 적지 않았다.
보완
〈서로의 바깥〉의 전시 취지와 작가의 말
전시 서문은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만 끝내 완전히 닿을 수는 없다"는 거리에서 출발한다고 쓴다. 김아름이 토크 초반에 말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소통이 된다"는 문장과 정확히 같은 방향이다. 큐레이터 중 한 명인 샤완신은 대만 사진 전문 서점 신타이싱의 대표로, 그가 대만에서 활동해 온 경로와 겹친다.
토크에서 스쳐 지나간 것들을 조금 더 펼쳤다. 작가가 직접 언급하지 않은 이름은 정리자의 연결이다.
감정이 사라질 때까지: 하마구치의 낭독과 '혼자 있는 연기'
하마구치 류스케는 촬영 전 배우들을 모아 대본을 감정 없이, 억양을 죽이고 반복해서 읽게 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는 이 과정 자체가 극의 한 축이 되어, 다국어 배우들이 체호프의 대사를 감정이 사라질 때까지 읽는 장면이 나온다. 의도는 '연기하려는 마음'을 먼저 소진시켜, 실제 촬영에서 감정이 배우의 의지가 아니라 상황에서 새어 나오게 하는 것이다.
김아름의 "혼자 있는 모습을 연기해 달라"는 요청은 방향이 같다. 카메라 앞에서 사람은 '찍히는 나'를 연기하게 되는데, 그 대신 다른 과제(혼자 있기)를 주면 의식이 그쪽으로 옮겨 가고, 찍히는 일에 대한 방어가 느슨해진다. 그가 반복해서 말하는 "우리의 관계가 아니라 그 사람만"이라는 목표는, 하마구치가 배우와 감독의 관계가 아니라 텍스트와 배우의 관계를 앞세우는 것과 닮았다.
아트북페어라는 캐스팅 무대
도쿄 아트북페어는 2009년 일본 최초의 아트 출판 전문 행사로 시작해 독립 출판사, 갤러리 프레스, 서점, 개인 작가까지 350곳 이상이 참여하고 수만 명이 찾는 규모가 됐다. 2015년부터는 해마다 한 나라의 출판 문화를 초청하는 '게스트 국가'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2026년에는 공모가 아닌 초대제로 52팀이 참여하는 소규모 자매 행사 'TOKIO ART BOOK FAIR'가 5월 시바파크호텔에서 열렸다.
김아름에게 이 행사들은 판매 채널이기 이전에 캐스팅 무대였다. 부스에서 책을 사 간 사람 중 "만나자마자 피사체로서 매력적인" 이들에게 그 자리에서 촬영을 청하고, 다음 방문 때 두 번째 만남으로 찍는다. 책이 사람을 부르고 그 사람이 다음 책이 되는 순환이 이 사진집의 제작 방식이다. 타이베이 아트북페어에서 본 "어떻게 이렇게 못 만들까 싶은" 책들이 그에게 '잘 만든 책'의 기준을 흔든 것도 같은 무대에서 일어난 일이다.
묵혀 두는 편집술의 계보
촬영과 편집 사이에 시간을 두는 습관은 사진사에서 오래된 방법이다. 미국 사진가 게리 위노그랜드가 촬영한 필름을 오랫동안 현상하지 않고 두었다가 나중에 봤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는데, 찍을 때의 흥분이 사진을 판단하는 데 끼어들지 않게 하려는 목적이었다고 전해진다. 글쓰기에서 원고를 서랍에 넣어 두었다가 남의 글처럼 다시 읽으라는 조언도 같은 원리다.
김아름의 '숙성 기간'은 여기에 포트레이트 특유의 이유를 하나 더 얹는다. 사람을 찍고 나면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이 사진 평가에 섞인다. 그래서 그는 사진뿐 아니라 촬영 당일의 감정도 함께 식힌 뒤에 고른다. "오늘 촬영 진짜 좋았다"는 날이 나중에 보면 별로였다는 그의 관찰은, 편집이 촬영과 다른 정신 상태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다.
무표정의 계보와 '두 번째 만남의 거리'
웃지 않는 얼굴을 정면에서 찍는 방식은 아우구스트 잔더의 「시대의 얼굴」부터 토마스 루프의 증명사진 같은 대형 초상, 리네커 데이크스트라의 해변 청소년 연작, 기카이 히로의 「아사쿠사 초상」까지 하나의 계보를 이룬다. 공통점은 사진가와 피사체의 관계를 사진 밖으로 밀어내고, 보는 사람이 얼굴을 직접 읽게 만든다는 점이다.
김아름은 이 계보 안에 있으면서도 한 가지를 더한다. 정면 응시 대신 '반쯤 뜬 눈'과 '혼자 있는 상태'를 요구하고, 피사체를 대만의 집과 거리에 두어 "여기가 어디지" 하는 호기심을 얼굴 옆에 나란히 놓는다. 그가 말하는 두 번째 만남의 거리, 즉 낯선 사람도 친구도 아닌 상태는 이 계보의 냉정함과 다큐멘터리의 친밀함 사이에 그가 고른 자리다.
〈서로의 바깥〉, 닿지 않는 거리에서
그의 사진이 한국에서 처음 걸린 전시의 서문은 "각자의 역사와 문화, 삶의 경험은 우리를 서로의 바깥에 머물게 한다"고 시작해, 완전한 이해 대신 "닿지 않는 거리 속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공존"에 주목한다고 쓴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인정이 오히려 소통의 시작이라는 그의 어린 시절 결론과,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찍는다는 그의 방법이 전시 취지와 겹치는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언제 빛이 들어올지 모르는 시대"는 20대의 얼굴에 붙인 말이지만, 이 토크의 서사에 더 정확히 들어맞는 사람은 작가 본인이다. 어학원, 비자, 어시스턴트 3년 반, 회사 사진가 5년, 그 사이에 20년 동안 미뤄진 하드커버 사진집. 경주 휴게소의 새벽에 서 있던 스무 살 무렵의 그와 대만 호텔 앞의 야간 경비원은 같은 자리에 있다. 이 책은 타인을 찍은 책이면서, 기다림의 자서전이다.
자연스러움을 얻기 위해 부자연스러움을 요청하는 역설
"연기해 달라"는 부탁은 얼핏 연출 사진처럼 들리지만 목적은 반대다. 카메라 앞의 사람은 이미 '찍히는 나'를 연기하고 있으므로, 다른 과제를 주어 그 연기를 밀어내는 것이다. 하마구치의 낭독, 즉흥 연극의 '집중할 대상 주기',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인터뷰 대신 노동을 시키는 방법이 모두 같은 원리다. 김아름의 기여는 이것을 포트레이트에, 그것도 "혼자 있기"라는 가장 단순한 과제로 옮긴 데 있다.
친밀함의 신화에 대한 조용한 반론
청중의 질문("처음 한두 번은 다 버린다")은 사진의 통념을 대변한다. 관계가 깊어야 진짜 얼굴이 나온다는 믿음이다. 김아름은 정반대의 관찰을 내놓는다. 관계가 좋아지면 표정은 관계를 향해 따뜻해지고, 그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찍은 사진이 된다. 두 번째 만남의 거리는 타협이 아니라 방법론이다. 다만 이 방법은 "찍고 싶은 표정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전제 위에서만 작동한다는 점을 그 스스로 인정한다.
'숙성'은 미학이 아니라 편향 제거 장치다
촬영 직후의 셀렉은 촬영 당일의 기분, 피사체에 대한 호감, "오늘 잘 찍었다"는 자기 평가에 오염된다. 석 달을 묵히는 것은 이 변수들을 한꺼번에 식히는 가장 값싼 방법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그가 "다른 사람이 셀렉하면 의미가 아예 달라진다"고 말한 대목이 남는다. 숙성이 시간을 통한 타자화라면, 편집자는 사람을 통한 타자화다. 비용 때문에 편집자를 쓰지 못했다는 그의 말은, 다음 책에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지를 예고한다.
책이 사람을 부르고, 사람이 책이 된다
진 한 권을 들고 대만에 간 것이 피사체 스무 명을 낳고, 그 피사체들이 사진집이 되고, 그 사진집이 다시 페어에서 다음 피사체를 부른다. 아트북페어는 판매처가 아니라 순환의 마디다. 이 구조에서는 '팔린다'와 '찍힌다'가 같은 사건의 두 면이며, 그래서 한 권이 팔릴 때까지의 긴장이 그토록 큰 것이다. 독립출판을 유통 문제로만 보는 시각으로는 이 작업 방식을 설명할 수 없다.
대만의 배경, 일본의 배경, 그리고 이국성의 위험
"일본 아파트는 다 비슷하고 너무 깨끗하다"는 아쉬움과 "대만은 배경이 화려하다"는 만족은 같은 동전이다. 배경이 얼굴만큼 말하게 하려는 그의 방법은 대만에서 가장 잘 작동했지만, 그만큼 "일본이 아니고 여기네"라는 호기심이 피사체가 아니라 장소를 소비하는 쪽으로 기울 위험도 함께 커진다. 그가 이 위험을 의식한 흔적은 "20대 친구들의 생활이 우리랑 거의 똑같다"는 말에 있다. 다른 배경, 같은 얼굴. 그 균형이 다음 작업의 관건이다.
한국 독자가 포트레이트 사진집을 좋아한다는 관찰
6월 전시에서 그가 감지한 것, 즉 한국 독자는 사람의 관계를 다른 시선으로 본다는 인상은 마지막 발언과 이어진다. 한국 사진에는 역사와 정치가 더 많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무표정한 대만 청년의 얼굴 앞에서 한국 독자가 무엇을 읽어 낼지는 그의 책이 한국에서 어떻게 소비될지를 결정한다. 그가 "다음에는 한국에서 사진을 왜 찍는지 묻고 싶다"고 한 것은 예의가 아니라 다음 책의 리서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