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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재단 시민 인문학 강좌 · 우리의 미래 · 제3강-2부

자본주의와 기업의 미래

자본주의가 기업을 바꾸는가, 기업이 자본주의를 바꾸는가.
공진화, 생태학적 적응, 그리고 물고기는 후원을 올릴 수 있는가.

한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 조직사회학 전공 Stanford Ph.D. · 사회 플랫폼 임팩트 연구
2023. 06. 07 · 34분
서론

왜 기업인가 — 자본주의와 기업의 생태학적 관계

자본주의 경제와 기업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자본주의 이전에도 기업은 있었다 — 르네상스 시기 지중해의 상인, 조선시대의 객주와 거간. 그러나 그것들은 예외적이었다. 자본주의가 되면서 기업은 경제의 필수 요소가 됐다. 대량 생산의 조직화에 기업이 필요하고, 반대로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자본주의 경제라는 환경이 필요하다.

한준 교수는 이 관계를 "공진화(co-evolution)" — 서로 맞물려 변화하며 함께 진화하는 것 — 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것을 생태학적 관계라 부른다. 생명체가 살아남으려면 적절한 자연환경이 필요하듯,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자본주의 경제라는 환경이 필요하다. 시장이 없으면 원료도 구하기 어렵고, 물건을 팔 곳도 없다.

라마르크 vs 다윈 — 두 가지 진화 시나리오

라마르크적 적응: 기존 기업이 환경 변화에 맞춰 스스로를 변화시키며 살아남는다. 다윈적 도태: 환경이 급격히 변하면 적응에 한계가 있어, 낡은 기업은 사라지고 새로운 기업이 등장해 교체한다. 어느 쪽이 더 지배적인가? — 이것이 조직사회학자들의 핵심 질문이다.

환경의 변화

글로벌화, 디지털화, 금융화

자본주의 경제라는 환경은 세 가지 축으로 변하고 있다. 첫째, 글로벌화 — 기업이 국경을 넘을 뿐 아니라 국경의 의미 자체가 약해지고 있다. 미중 갈등 시 기업들이 어려워지는 것은 그만큼 국제분업 질서에 깊이 뿌리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디지털화 — 여기서 "인지 자본주의(cognitive capitalism)"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예전에는 좋은 물건을 잘 만들면 됐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필요로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이것을 감지해서 기업에 알려주고, 더 나아가 기업이 원하는 생각을 사람들이 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이것을 가장 잘하는 기업이 플랫폼 기업 — GAFA(Google, Apple, Facebook, Amazon)다.

셋째, 금융화 — 기업의 가치가 물건을 잘 파는 것이 아니라 주가가 올라가는 것으로 측정되는 세상. 상품 시장에서는 브랜드 충성이 있지만, 주식 시장에서는 끊임없이 갈아탄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이다.

환경 변화의 세 키워드

글로벌화 → 다양성(diversity). 디지털화 → 가속성(acceleration). 금융화 → 불확실성(uncertainty). 이 세 가지가 기업의 생존 환경을 규정한다.

기업의 적응

유연화, 다양화, 생애주기 단축

변화한 환경에 기업이 적응하는 방식은 세 가지다. 첫째, 구조의 유연화. 위계적 관료제 — 위에서 아래까지 일직선으로 명령이 내려오는 군대적 조직 — 에서 탈(脫)위계적 조직으로 이동하고 있다. 부장·차장·과장·대리를 "팀장"으로 통합하고, 상무·전무·부사장을 "VP"로 통합하는 것이 단순히 외국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헤테라키(Heterarchy)와 홀라크라시(Holacracy)

헤테라키: 시스템 공학에서 온 개념. 피라미드 꼭대기를 없애고, 중간 관리자들이 서로 수평적으로 연결되어 이질적인 생각과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협의하며 조직을 이끈다. 홀라크라시: 자립적 팀들이 운영되고, 팀장들이 팀 간 조정을 담당하는 구조. 둘 다 아직 이상적이고 실험적이며 주도적 조직 형태가 되지는 않았지만, 현실은 위계적 조직과 이 새로운 형태의 중간 어딘가에 있다.

둘째, 기업 형태의 다양화. 프로젝트 기업(특정 목적 달성 후 해체), 사회적 기업(이윤이 아닌 사회적 가치 추구), 플랫폼 기업 — 예전에는 없던 형태들이 등장하고, 더 중요한 것은 이 다양한 시도들이 왜 계속 유지되느냐다.

셋째, 생애주기의 단축. 기업이 빨리 생기고 빨리 없어진다. 이것은 다윈적 도태 쪽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기업 수명의 급격한 단축

Fortune 500 기업 중 1955년 선정 기업들은 10년 이상 꽤 평평하게 살아남았다. 1995년 선정 기업들은 절반(250여 개)이 10년이 안 되어 목록에서 벗어났다. 1995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 디지털 혁명이다. S&P 500 기업의 평균 연령도 35세에서 20세 아래로 떨어졌다. 상장사들의 소멸 평균 연령도 50세 이상에서 30대로 하락. 기업의 생성과 소멸이 동시에 가속화되고 있다.

기업이 자본주의를 바꾸는가

양극화와 소비자 주권의 위협

반대 방향의 질문. 기업의 변화가 자본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한준 교수는 크게 두 가지를 지적한다.

양극화 — 기업 간 생산성 격차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프론티어(선도) 기업들과 평균적 기업들의 생산성 격차가 2000년대 중반 이후 계속 벌어지고 있다. 서비스업 분야에서 더 심하다. 이 격차의 주역은 플랫폼 기업 — 생긴 지 20~30년도 안 된 기업들이 압도적 생산성을 보여주고, 빨리 부자가 되고, 빨리 따라잡힌다. 기업 내부에서도 CEO와 일반 사원의 보상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미국 1950년대에는 경영자들이 "내 월급보다 전체 사원 평균을 올려달라"고 했다. 지금 그렇게 하면 주가가 떨어진다.

소비자 주권의 위협. 인지 자본주의에서 알고리즘에 의한 "추천"이라는 멋있는 이름 뒤에, 내가 실제로 선택하는 것인가 선택당하는 것인가라는 의문. 나의 검색, 구매, 모든 행동이 데이터가 되어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이것이 나의 진정한 선택인가.

이 모든 것이 사회적 양극화, 과시적 소비, 정치적 양극화(포퓰리즘에의 동원), 사회 해체 위험으로 이어진다. ESG라는 개념이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때, 월가에서 "왜 1%만 잘 살아야 하느냐, 99%도 좀 살자"는 저항이 일어난 뒤 기업들의 자제 노력으로 등장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결론

물고기가 후원을 올릴 수 있겠는가

"기업이 바뀌면 자본주의가 달라질 수 있을까?" — 연구팀 책임자의 질문에 대해 한준 교수는 생태학적 비유로 답한다.

물고기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후원을 올릴 수 있겠는가. 인간이 가장 많이 환경을 바꾸고 있지만, 나쁜 방향으로 바꾸고 있다.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건 훨씬 더 힘들다.

— 한준

기업은 자본주의라는 환경 안에서 작동하는 생명체다. 환경을 바꿀 수는 있지만,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은 나쁜 방향으로 바꾸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기업의 변화가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키기보다는, 자본주의의 변화에 기업이 적응하거나 도태되는 방향이 더 지배적이라는 것이 한준 교수의 조심스러운 결론이다.

Claude's Insight

조직 생태학자의 겸손한 비관 — 기업은 환경의 종(種)이다

이 강연의 핵심은 "물고기가 후원을 올릴 수 있겠는가"라는 한 문장에 응축된다. 기업을 자본주의라는 생태계 안의 생명체로 보는 관점. 이것은 기업이 세상을 바꾼다는 실리콘 밸리적 서사, 또는 기업을 규제하면 자본주의가 바뀐다는 진보적 서사 모두에 대한 조용한 반론이다. 기업은 환경에 적응하거나 도태될 뿐, 환경 자체를 의도적으로 전환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

라마르크 vs 다윈이라는 프레임이 탁월하다. 기존 기업이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남는가(라마르크), 아니면 새 환경에 맞는 새 기업이 등장해 교체하는가(다윈). Fortune 500과 S&P 500의 수명 데이터가 명확히 보여주는 것은 후자 — 다윈적 도태 — 의 가속화다. 1955년에 선정된 기업들은 수십 년 살아남았지만, 1995년 기업들의 절반은 10년을 못 버텼다. 디지털 혁명이 기업의 평균 수명을 절반 아래로 끌어내렸다.

"인지 자본주의"에 대한 설명도 주목할 만하다. 예전에는 좋은 물건을 잘 만들면 됐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들어가야 한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은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감지할 뿐 아니라, 기업이 원하는 생각을 우리가 하도록 유도한다. "추천"이라는 중립적 이름 뒤에 있는 것은 소비자 주권의 침식이다. 이 분석은 1부 김재섭 교수의 IT 기업 분석과 정확히 맞물린다 — 기술 기업이 약속하는 "좋은 일(Doing Good)"의 이면에 인지적 포획이 있다.

반론 — 이 프레임이 놓치는 것들

첫째, "물고기가 후원을 올릴 수 없다"는 비유가 너무 결정론적이다. 생태학적 비유의 한계는, 기업은 물고기와 달리 의식적으로 규칙을 바꾸려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로비, 규제 포획(regulatory capture), 정치 자금 — 기업은 자신이 활동하는 환경의 규칙을 적극적으로 변경하려 한다. ESG를 기업의 "자제 노력"으로 설명하지만, 이것이 실질적 변화인지 이미지 관리인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기업은 환경의 수동적 적응자가 아니라, 환경을 형성하는 적극적 행위자이기도 하다.

둘째, "기업 간 생산성 격차 = 불평등"이라는 연결이 단순화되어 있다. 프론티어 기업과 평균 기업의 생산성 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자동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으로 전환되는 메커니즘은 더 복잡하다. 플랫폼 기업의 높은 생산성이 소비자 잉여(consumer surplus)를 통해 사회 전체에 혜택을 줄 수도 있고, 생산자 잉여(producer surplus)의 독점을 통해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이 둘의 비율이 어떻게 결정되는지가 핵심인데, 강연에서는 후자만 강조된다.

셋째, 한국 기업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 빈약하다. 한국 기업이 "대표적으로 위계적"이었다가 "지금은 기업마다 다르다"는 언급은 있으나, 구체적 사례가 없다. 삼성의 "수평적 호칭 문화 도입" 같은 시도가 실제로 조직 문화를 바꿨는지, 한국의 오너 경영 체제가 헤테라키나 홀라크라시와 양립 가능한지 — 조직사회학자의 전공 영역에서 가장 흥미로울 이 질문들이 시간 제약으로 다뤄지지 못한 것은 아쉽다.

마지막으로, "CEO 보상 격차"에 대한 설명이 금융화에만 치우쳐 있다. 미국 1950년대 경영자들이 "내 월급보다 직원 평균을 올려달라"고 한 시대와 지금의 차이를 금융화로만 설명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노동조합의 약화,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의 부상, 경영자 시장의 글로벌화 등 복합적 요인이 있다. 특히 "그렇게 하면 주가가 떨어진다"는 설명은, 왜 주가가 떨어지는지(주주가 그것을 비효율로 인식하는 구조)에 대한 분석이 빠져 있다.

그럼에도 이 강연의 가치는 기업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공진화"라는 프레임으로 읽는 것에 있다. 기업이 자본주의를 바꿀 수 있다는 낙관도, 자본주의가 기업을 결정한다는 결정론도 아닌, 둘이 서로 맞물려 변화한다는 생태학적 관점. 그리고 그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적응보다 도태가 더 지배적 메커니즘이 되고 있다는 냉정한 관찰. 34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 정도의 프레임을 전달한 것은 대단한 압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