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업인가 — 자본주의와 기업의 생태학적 관계
자본주의 경제와 기업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자본주의 이전에도 기업은 있었다 — 르네상스 시기 지중해의 상인, 조선시대의 객주와 거간. 그러나 그것들은 예외적이었다. 자본주의가 되면서 기업은 경제의 필수 요소가 됐다. 대량 생산의 조직화에 기업이 필요하고, 반대로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자본주의 경제라는 환경이 필요하다.
한준 교수는 이 관계를 "공진화(co-evolution)" — 서로 맞물려 변화하며 함께 진화하는 것 — 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것을 생태학적 관계라 부른다. 생명체가 살아남으려면 적절한 자연환경이 필요하듯,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자본주의 경제라는 환경이 필요하다. 시장이 없으면 원료도 구하기 어렵고, 물건을 팔 곳도 없다.
라마르크적 적응: 기존 기업이 환경 변화에 맞춰 스스로를 변화시키며 살아남는다. 다윈적 도태: 환경이 급격히 변하면 적응에 한계가 있어, 낡은 기업은 사라지고 새로운 기업이 등장해 교체한다. 어느 쪽이 더 지배적인가? — 이것이 조직사회학자들의 핵심 질문이다.
글로벌화, 디지털화, 금융화
자본주의 경제라는 환경은 세 가지 축으로 변하고 있다. 첫째, 글로벌화 — 기업이 국경을 넘을 뿐 아니라 국경의 의미 자체가 약해지고 있다. 미중 갈등 시 기업들이 어려워지는 것은 그만큼 국제분업 질서에 깊이 뿌리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디지털화 — 여기서 "인지 자본주의(cognitive capitalism)"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예전에는 좋은 물건을 잘 만들면 됐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필요로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이것을 감지해서 기업에 알려주고, 더 나아가 기업이 원하는 생각을 사람들이 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이것을 가장 잘하는 기업이 플랫폼 기업 — GAFA(Google, Apple, Facebook, Amazon)다.
셋째, 금융화 — 기업의 가치가 물건을 잘 파는 것이 아니라 주가가 올라가는 것으로 측정되는 세상. 상품 시장에서는 브랜드 충성이 있지만, 주식 시장에서는 끊임없이 갈아탄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이다.
글로벌화 → 다양성(diversity). 디지털화 → 가속성(acceleration). 금융화 → 불확실성(uncertainty). 이 세 가지가 기업의 생존 환경을 규정한다.
유연화, 다양화, 생애주기 단축
변화한 환경에 기업이 적응하는 방식은 세 가지다. 첫째, 구조의 유연화. 위계적 관료제 — 위에서 아래까지 일직선으로 명령이 내려오는 군대적 조직 — 에서 탈(脫)위계적 조직으로 이동하고 있다. 부장·차장·과장·대리를 "팀장"으로 통합하고, 상무·전무·부사장을 "VP"로 통합하는 것이 단순히 외국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헤테라키: 시스템 공학에서 온 개념. 피라미드 꼭대기를 없애고, 중간 관리자들이 서로 수평적으로 연결되어 이질적인 생각과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협의하며 조직을 이끈다. 홀라크라시: 자립적 팀들이 운영되고, 팀장들이 팀 간 조정을 담당하는 구조. 둘 다 아직 이상적이고 실험적이며 주도적 조직 형태가 되지는 않았지만, 현실은 위계적 조직과 이 새로운 형태의 중간 어딘가에 있다.
둘째, 기업 형태의 다양화. 프로젝트 기업(특정 목적 달성 후 해체), 사회적 기업(이윤이 아닌 사회적 가치 추구), 플랫폼 기업 — 예전에는 없던 형태들이 등장하고, 더 중요한 것은 이 다양한 시도들이 왜 계속 유지되느냐다.
셋째, 생애주기의 단축. 기업이 빨리 생기고 빨리 없어진다. 이것은 다윈적 도태 쪽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Fortune 500 기업 중 1955년 선정 기업들은 10년 이상 꽤 평평하게 살아남았다. 1995년 선정 기업들은 절반(250여 개)이 10년이 안 되어 목록에서 벗어났다. 1995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 디지털 혁명이다. S&P 500 기업의 평균 연령도 35세에서 20세 아래로 떨어졌다. 상장사들의 소멸 평균 연령도 50세 이상에서 30대로 하락. 기업의 생성과 소멸이 동시에 가속화되고 있다.
양극화와 소비자 주권의 위협
반대 방향의 질문. 기업의 변화가 자본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한준 교수는 크게 두 가지를 지적한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프론티어(선도) 기업들과 평균적 기업들의 생산성 격차가 2000년대 중반 이후 계속 벌어지고 있다. 서비스업 분야에서 더 심하다. 이 격차의 주역은 플랫폼 기업 — 생긴 지 20~30년도 안 된 기업들이 압도적 생산성을 보여주고, 빨리 부자가 되고, 빨리 따라잡힌다. 기업 내부에서도 CEO와 일반 사원의 보상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미국 1950년대에는 경영자들이 "내 월급보다 전체 사원 평균을 올려달라"고 했다. 지금 그렇게 하면 주가가 떨어진다.
소비자 주권의 위협. 인지 자본주의에서 알고리즘에 의한 "추천"이라는 멋있는 이름 뒤에, 내가 실제로 선택하는 것인가 선택당하는 것인가라는 의문. 나의 검색, 구매, 모든 행동이 데이터가 되어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이것이 나의 진정한 선택인가.
이 모든 것이 사회적 양극화, 과시적 소비, 정치적 양극화(포퓰리즘에의 동원), 사회 해체 위험으로 이어진다. ESG라는 개념이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때, 월가에서 "왜 1%만 잘 살아야 하느냐, 99%도 좀 살자"는 저항이 일어난 뒤 기업들의 자제 노력으로 등장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물고기가 후원을 올릴 수 있겠는가
"기업이 바뀌면 자본주의가 달라질 수 있을까?" — 연구팀 책임자의 질문에 대해 한준 교수는 생태학적 비유로 답한다.
물고기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후원을 올릴 수 있겠는가. 인간이 가장 많이 환경을 바꾸고 있지만, 나쁜 방향으로 바꾸고 있다.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건 훨씬 더 힘들다.
— 한준기업은 자본주의라는 환경 안에서 작동하는 생명체다. 환경을 바꿀 수는 있지만,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은 나쁜 방향으로 바꾸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기업의 변화가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키기보다는, 자본주의의 변화에 기업이 적응하거나 도태되는 방향이 더 지배적이라는 것이 한준 교수의 조심스러운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