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경제 — 분리할 수 없는 두 축
자본주의 하나만으로도 1~2년을 강의할 수 있고, 민주주의 하나만으로도 마찬가지다. 이 둘의 관계를 다루는 것은 곧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며, 빙산의 일각만 건드릴 수 있는 거대한 주제다.
강연자는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네 단계로 구분한다. 첫째, 분리 — 정치학자는 정치만, 경제학자는 경제만 이야기하므로 사실상 많은 학자가 이 입장에 서 있다. 둘째, 상관관계 — 둘 사이에 모종의 연결이 있다. 셋째, 인과관계 — 한쪽의 변화가 다른 쪽의 변화를 초래한다. 넷째, 상호 조응성 — 특정 경제 체제와 특정 정치 체제가 서로 잘 맞아 안정적 균형을 이루는 짝(pair)이 존재한다.
만약 정치 체제와 경제 체제가 상호 조응하여 안정적 균형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 체제쌍은 상당 기간 지속된다. 그러나 한쪽에서 불균형 요인이 발생하면 — 그것이 불평등이든, 외부 충격이든 — 균형이 깨지고 변화가 일어난다. 이 변화를 분석적으로 볼 것인가, 규범적으로(깨져야 마땅하다는 입장에서) 볼 것인가에 따라 접근이 달라진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낳았다 — 그리고 충돌한다
고전적 서사는 이렇다. 자본주의의 발전 → 산업화 →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 → 정치적 참여 요구 → 민주주의 등장. 이 인과적 관계 때문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불가분의 상보적 관계라는 주장이 성립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적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계급 간 모순과 갈등 때문에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민주주의와 충돌하는 국면이 불가피하다. 상보적이면서도 상충적 — 이것이 고전적 논의의 이중 구조다.
경제 발전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가
현대 정치학에서는 "일정하게 경제 발전이 이루어져야 민주주의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이 광범위하게 연구되어 왔다. 특히 1970~80년대에 이 상보성 논의가 활발했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다. 관료적 권위주의(Bureaucratic Authoritarianism) 연구다. 라틴아메리카 사례를 연구한 학자들은 자본주의 경제 발전이 불평등과 연결되어 민주주의를 지탱하기는커녕 오히려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패턴을 발견했다. 한국의 유신 시대도 이 분석틀로 설명되었다.
더 중요한 현대적 논의는 자본주의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불평등이 관리되지 않으면 정치-경제의 균형이 깨진다. 점진적 관리(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와 급진적 관리(계급투쟁, 체제 변혁) 양쪽 모두 시도되어 왔다.
자본주의 + 권위주의: 중국이라는 위협
자본주의는 이미 상수화되었다. 체제 경쟁은 끝났다. 남은 변수는 정치 체제 — 민주주의냐 권위주의냐 — 뿐이다.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자본주의-권위주의 조합은 싱가포르와 중국이다.
중국이 민주주의 논의에서 가장 큰 위협인 이유: 멀쩡히 국가자본주의 체제이면서 권위주의와 상보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정책 담당자들(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이 수십 년간 가졌던 낙관적 시나리오 — 경제 발전 → 중산층 성장 → 정치적 각성 → 민주화 — 는 실현되지 않았다.
권위주의 국가의 경제 성장은 양날의 칼이다. 성공하면 중산층이 성장하고, 교육을 통해 각성하고, 정치적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 실패하면 리스크가 폭발한다. 이를 억제하는 유일한 수단은 정보 통제인데, 그것도 한계가 있다. 영구적인 공존은 역사의 패턴상 불가능해 보인다.
권위주의의 향수, 민주주의의 성취
한국의 경험은 다층적이다. 권위주의와 자본주의의 공존(60~80년대 발전 국가)을 경험했고,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상보성도 경험했다. 종속이론이나 세계체제론이 "주변부에서 핵심부로의 도약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한국은 그 반례다.
그러나 권위주의에 대한 향수가 실존했다. 인권 탄압을 당한 국민은 일부였고, 많은 국민에게 그 시절은 빈곤을 벗어나고 공모 죽는 일이 없어진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사례가 가지는 의미는, 단기적으로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상관성의 반례이지만 — 권위주의와 자본주의가 30여 년간 공존한 예이지만 — 장기적으로는 결국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유효하게 공존한 확증 사례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 강연자사회 구성체론 — 토대와 상부 구조를 종합적으로
1980년대 한국에서 벌어진 사회 구성체론(社會構成體論)은 한국 논쟁사에서 독특한 지점이다. 조희연, 박현채 등 좌파 학자들이 주도한 이 논의는 한국의 정치 체제와 경제 체제를 따로 떼어놓지 않고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핵심 질문: 한국 사회의 구성체는 어떤 유형인가? 식민지적 성격이 있는가, 아니면 자율성을 가진 탈식민지적 성격인가? 주도 세력은 누구이고 운동의 전략은 무엇인가? 대내외적 관점을 아우르는 종합적 논의였으나,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급격히 사라졌다.
강연자의 회고: "전망이 항상 이렇게 가면 한국 자본주의가 얼마 안 남았어, 일주일 남은 것 같다, 다음 달에 무너진다 — 자꾸 안 무너지더라고요." 돌이켜 보면 중진 자본주의론이 가장 타당한 이론이었으나, 당시 다른 급진적 이론들이 우위를 점해 현실 분석을 흐렸다.
경제민주화와 반세계화의 두 갈래
점진주의적 접근: 경제민주화론. 2012년 대선까지 큰 화두였다. 재벌 개혁,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공정한 시장 질서 구축에 초점을 맞췄다. 실질적 민주주의, 심화된 민주주의, 사회화된 민주주의 — 불평등을 완화하여 민주주의의 깊이를 더하려는 시도들이다.
급진주의적 접근: 반세계화 운동. 냉전 시대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세력들이 세계화 비판을 필두로 운동의 모멘텀을 마련했다. 본질적으로 반자본주의 또는 대안 자본주의 운동이었으며, 코스모크라시(cosmocracy) 같은 글로벌 차원의 민주주의 체제를 상정하기도 했다.
불평등을 묶어놓을 수 있는가 — 민주주의의 관건
자본주의의 대안은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민주주의 조합이 자본주의-권위주의 조합에 비해 가지는 최대 장점은 창의와 혁신이다. 문제는 불평등이라는 아킬레스건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고전적인 "토대가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는 공식은 역전되고 있다. 현 국면에서는 오히려 정치(상부 구조)가 경제(토대)를 결정하는 방향으로 진입했다. 민주주의가 얼마나 스마트하고 기민하게 불평등을 관리하고, 그것을 위한 사회적 합의(consensus)를 수립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이 결정된다.
세계화가 재개되더라도, 기존의 위로부터의 세계화(강대국 중심, 생산체인 중심)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 시민사회, 비국가적 주체에 의한 대항적 조직화와 숙의가 결합된 민주주의 — 를 모색해야 한다. 국내에서만 민주주의를 논하고, 국경을 넘는 순간 정글의 논리에 맡기는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
자본주의라는 이름 자체를 의심하라
청중 질문: "우리가 진짜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가? 초기 자본주의, 수정 자본주의, 현대 자본주의 — 수식어만 바뀌는데 본질이 같은 것인가? 차라리 기득권과 비기득권, 식민지를 가진 나라와 식민지인 나라의 관계로 접근하는 것이 더 정직하지 않은가?"
강연자의 답: 분석적으로 강자와 약자, 지배와 피지배로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근본 취지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분석을 세밀하게 들어가려면 개념의 세분화가 필요하다. 자본주의라는 체제 범주 — 사유제와 시장 경제 — 가 전 세계적으로 채택되고 있는 이상, 그 범주 안에서 논의하는 것이 분석적 유용성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