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란 무엇인가 — 사슴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경제 체제란 공동체의 생산, 소비, 분배를 규율하는 제도의 집합이다. 인류가 공동체를 만든 순간부터 존재했다. 수렵 부족이 사슴을 잡았을 때 연장자에게 많이 주면 젊은 사냥꾼의 인센티브가 줄고 파이가 줄어든다. 성과에 따라 분배하는 부족은 인구가 늘고 힘이 커진다. 이 단순한 원리가 체제의 본질이다.
자본주의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체제다. 아담 스미스는 이것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해석한 사람이다. 스미스 자신은 "자연적 자유의 체계"라고 불렀다. 반면 사회주의는 인간이 설계한 체제 — 마르크스가 아이디어를 내고 레닌이 1917년에 실행에 옮겼다. 김병연 교수의 비유: 회를 좋아하면 자연산과 양식의 차이. 자본주의는 수백 년간 버틴 자연산이고, 사회주의는 70여 년 만에 붕괴한 양식이다.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경쟁은 이미 끝났다. 체제의 본질은 다르지만 추구하는 목적 — 성장, 분배, 사회적 공정, 지속 가능성 — 은 동일하다. 문제는 자본주의가 이 목적들을 얼마나 잘 달성하고 있는가이다.
"공유"라는 이름의 오해
에어비앤비, 우버 같은 공유 경제(Sharing Economy)가 사유를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김병연 교수의 지적: 이들은 사기업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개인이 사유하는 자산(집, 차)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게 돕는 것이지, 사유가 공유로 전환된 것이 아니다. "공유"라는 이름이 잘못 붙은 것이며, 본질은 여분의 사유 재산을 활용한 자본주의적 효율화다.
로봇에게는 인센티브가 필요 없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실패한 근본 원인은 인센티브 문제다. 북한 협동농장에서 농민이 대충 일하고 자기 집 텃밭에서만 열심히 일하는 것, 소련의 텃밭(전체 경작 면적 10%)이 감자 생산의 40~50%를 담당한 것이 증거다. 로봇은 인센티브가 필요 없으니 사회주의적 생산도 가능하지 않을까?
김병연 교수의 답: 불가능하다. 로봇을 만들고 AI를 프로그래밍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이다. 완벽하게 인간 노동을 대체할 수 없는 한, 일하는 사람에게 인센티브는 반드시 필요하다.
완벽한 계획은 왜 불가능한가
사회주의 중앙 계획이 실패한 것은 데이터 부족과 속도 문제 때문이었다. AI가 실시간으로 완벽한 계획을 수립하면 시장 없이도 경제를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김병연 교수의 답: 시장은 가격을 통해 극도로 유연하게(flexible) 조정(adjust)한다. 중앙 계획은 변화를 감지하고, 데이터를 모으고, 다시 계획을 수정해서 내려보내는 시간이 걸린다. AI가 이것을 실시간으로 한다 해도, 글로벌 공급망 전체를 대상으로 계획을 짜는 것은 불가능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시장은 가격이 폭등하며 즉시 반응하지만 중앙 계획은 구조적으로 지연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옛날 사회주의식의 중앙 계획이나 국유로 돌아가기는 힘들다.
— 김병연귀족 정치 시대보다 불평등한 민주주의
강연에서 가장 무게감 있게 다뤄진 주제. 1820년 영국에서 하위 50% 소득의 전체 비중이 14%였다. 당시는 성인 남성 일부만 참정권을 가진 귀족 정치 시대. 현재 민주주의 하에서 그 비중은 13%로, 200년 전보다 더 낮아졌다.
① 자본시장 불완전 → 똑똑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교육 투자를 못 함 → 인적 자본 손실. ② 불평등 심화 → 중위 투표자의 소득 하락 → 재분배 요구 증가 → 성장 둔화. ③ 불평등 → 계층 간 갈등 → 사회적 합의 불가능 → 개혁 지체. 러시아(불평등 급증 → 합의 실패 → 성장 실패) vs 체코·슬로바키아(분배 유지 → 합의 용이 → 이행 성공)가 증거.
그런데 해결이 극도로 어렵다. 그 이유는 구조적이다. 글로벌화로 인해 부자와 대기업에 세금을 매기면 해외로 이탈한다. 지식 경제의 도래로 고학력·고숙련 노동자와 저학력·저숙련 노동자의 격차가 자연스럽게 벌어진다. 이 둘 다 자본주의를 효율적으로 만드는 요인이 동시에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역설이다.
한국이 이 트랩에 빠진 것 같습니다. IMF 때 금 모으기를 다시 할 수 있겠습니까? 사회 갈등이 심한 것이고, 그 뿌리는 불평등이 심한 것입니다.
— 김병연불평등보다 낙관하는 이유
김병연 교수는 기후 문제를 불평등보다 풀기 쉽다고 본다. 불평등은 분열적(divisive)이다 — 너에게 좋은 것이 나에게 나쁠 수 있다. 그러나 환경 문제는 부자든 서민이든 같은 공기를 마신다.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이슈다. 진짜 갈등은 현 세대와 미래 세대 사이에 있다.
환경 문제에 한해, 기대 수명에서 현재 나이를 뺀 만큼의 투표권을 부여한다. 60대는 기대 수명 84에서 61을 뺀 23의 가중치를, 20대는 64의 가중치를 갖는다. 미래를 더 오래 살아야 하는 세대에게 더 많은 결정권을 주자는 것. 또한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의 권리를 대변할 변호사를 선임하는 방안도 제시.
시장 친화적 해결책으로는 개인별 양도 가능 할당량(Individual Transferable Quotas) — 미국 어업에서 도입된 방식으로, 총량은 유지하되 더 잡고 싶은 사람은 권리를 사오고, 덜 잡는 사람은 시장에서 권리를 파는 구조. 탄소 배출권 거래도 같은 원리다. 시장을 죽이지 않으면서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
아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만 말하지 않았다
강연의 결론은 아담 스미스의 복원이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해서 사익이 공익이 된다"고 말했다는 통념은 왜곡이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동감(sympathy), 역지사지, 양심을 말했다. 인간의 네 가지 덕 중 자기 통제와 인내심은 성인급에게나 기대할 수 있고, 보통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의(justice)를 준수하는 것과 신중함(prudence) — 자기 이익을 추구하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문명화된 자기 이익 추구다.
자본주의가 2.0은 될지언정, 자본주의가 붕괴하고 다른 체제가 오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라면, 반드시 고민해야 합니다 — 어떤 체제로 대체할 것인가. 인간이 이 거대한 제도를 설계할 능력이 있는가. 마르크스가 설계할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 적어도 수천만 명이 죽었습니다.
— 김병연북유럽 모델은 왜 이식이 어려운가
"덴마크, 스웨덴 체제가 가장 나은데, 왜 다 같이 그걸 쓰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김병연 교수의 답: 제도에는 출발선이 있다. 핀란드의 지니 계수가 0.24에서 0.25로 올랐을 때 국가적 난리가 났다. 한국은 지니 계수 0.3 중반. 북유럽은 인구가 작고, 좌파 전통이 길고, 오랜 사회적 합의의 역사가 있다. 미국처럼 땅이 넓고 인종이 다양하거나, 한국처럼 인구가 적지 않은 나라가 갑자기 북유럽 제도를 도입하면 기존 제도가 흔들린다.
핵심은 "이행"이다. 여기서 저기로 바로 가면 난리가 난다. 어떻게 잘 갈 것인가, 다리를 놓고 단계적으로 옮기는 것이 체제 이행 전문가의 전문성이다. 이것이 김병연 교수의 전공이기도 하다.
공공성을 처음부터 모티브로 삼으면 어렵습니다. 정책 결정자가 자기도 하지 않을 일을 다른 사람이 할 것을 기대하는 정치는 실패합니다. 보통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의를 지키면서 자기 이익을 신중하게 추구할 때 다른 사람의 이익을 해치는 것은 아닌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 김병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