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은 꿈과 환상을 파는 스포츠다
강연은 버니 에클스턴의 유명한 일화로 시작된다. 2010년 런던에서 강도를 당한 직후, 그 얼굴 그대로 시계 광고에 출연해 약 30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에클스턴은 근대 F1을 상업화한 인물이자 2017년까지 F1 회장이었고, 이 일화는 F1이라는 스포츠의 본질을 압축한다 — 이미지와 자본의 레이스.
현재 F1의 소유권은 미국 리버티 미디어가 보유하고 있다. 상업적 스포츠이지만, 팬들은 순수한 엔지니어링 스포츠로서 즐기고 있다. 김남호는 모터스포츠 전체를 조망한다 — IMSA, DTM, WEC, 인디카, 포뮬러 E, WRC, 나스카, 모토GP. F1만이 아닌 다른 카테고리에도 엔지니어링 기회가 열려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유럽은 트럭으로, 아시아는 DHL로
레이스카는 반제품 상태로 팩토리를 떠난다. 유럽 내 레이스는 전부 트럭으로 운송하고, 월요일~화요일에 도착하면 메카닉들이 차량을 조립하기 시작한다. 금요일 프리 프랙티스부터 드라이버가 직접 타고 셋업 조정이 시작된다.
셋업을 바꾼다는 것은 바퀴의 지오메트리 변경, 엔진 맵 수정, 에어로다이나믹스 날개 각도 조정 등이다. 팩토리에서는 시뮬레이터에 테스트 드라이버를 태워 문제를 검증하고, 컨트롤 룸의 각 전문 엔지니어들이 텔레메트리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피드백을 보낸다. 토요일 퀄리파잉 전까지 계속 반복 — 그 이후는 파크 퍼미이기 때문에 손댈 수 없다.
컨트롤 모델링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를 통해서 이 성능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겁니다. 각각의 팀은 저 같은 퍼포먼스 엔지니어, 시뮬레이션 엔지니어들이 이 작업을 하게 됩니다.
— 김남호직선 싸움보다는 곡선 싸움이다
퍼포먼스 엔지니어의 핵심 업무는 레이싱 라인 최적화다. 트랙을 일정한 간격으로 잘라 각 구간마다 여러 개의 '문'을 놓고, 시작부터 끝까지 최단 시간에 도달할 수 있는 경로의 조합을 찾는 것이다. 최소 거리, 최소 곡률, 그리고 엔진의 힘과 타이어 성능까지 고려한 최소 시간 — 세 가지 접근법이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레이싱 라인은 누구나 대략적으로 그릴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다. 하지만 드라이버 시점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된다. 거의 누운 자세에서 한정된 시야만으로 최적화를 해야 한다 — 이것이 일반인과 레이스 드라이버의 차이다.
차가 빨라지려면 엔진 마력이 높아야 한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엔진은 직선 구간에서밖에 쓸모가 없고, 직선 속력은 에어로다이나믹스로 보정할 수 있다. 진짜 승부처는 코너 — 트랙 곡률이 가장 높은 지점(에이펙스)에서 속력을 얼마나 더 높일 수 있는지가 레이스의 승패를 결정한다.
레드불 같은 경우 이런 애들은 이런 거 잘합니다. 비가 오면 코너에서 성능이 좋은 차들이 확 드러나요. 레이스는 직선 싸움보다는 곡선의 싸움이 많습니다.
— 김남호중학교 원심력 공식이 F1의 본질이다
코너링 한계는 결국 원심력과 마찰력의 균형이다. 속도가 높아지면 원심력은 속도의 제곱으로 커지고, 이를 버텨주는 것은 타이어의 마찰력이다. 이 한계를 찾아내는 것이 퍼포먼스 엔지니어의 일이다.
핸들링 밸런스 — 오버스티어(차가 과도하게 회전)와 언더스티어(코너를 못 도는 현상) 사이의 최적점을 찾는 것. 서스펜션 엔지니어, 퍼포먼스 엔지니어, 에어로다이나미시스트 모두 결국 이 문제를 풀고 있다. 포뮬러 원에 들어간다면, 여러분이 대부분 할 일은 이 일이다.
차가 작아지고, 연료가 바뀌고, 전기가 반이 된다
2026년은 2014년 하이브리드 전환 이후 가장 큰 변화다. 세 가지 핵심: 차량 소형화, 파워 유닛 변화, 지속 가능 연료 전면 도입.
차가 작아진다. 길이, 폭, 타이어 폭 모두 줄어든다. 흥미로운 패턴이 있다 — 2005년경에도 차가 작아졌다가 이후 계속 커졌고, 2026년에 다시 리셋된다. 앞뒤 윙이 동시에 열리고 닫히는 X-모드와 Z-모드가 기존 DRS를 대체한다.
MGU-H(열 에너지 회수)가 제거된다. 고장이 잦고 관리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MGU-K(키네틱 에너지 회수)만 남아 일반 도로의 회생 제동 장치와 같은 시스템으로 전환. 가장 큰 변화는 내연기관과 전기 파워의 비율이 1:1이 된다는 것 — 현재 약 750:250 비율에서 반반(약 500:500)으로. 훨씬 더 전기를 많이 쓰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된다.
SK에너지가 수출하고, 보잉이 비행하고, F1이 달린다
2026년 가장 큰 변화의 핵심은 사실 차체가 아니라 연료다. 100% 지속 가능한 항공유(SAF: Sustainable Aviation Fuel) 도입. 화석 연료 대신 음식물·농산물·임산 찌꺼기에서 메탄올과 에탄올을 추출하고, 수소와 이산화탄소를 투입해 인공 연료를 만든다.
핵심 원칙: 인류의 식량 자원과 충돌하면 안 된다. 바이오 퓨얼이 옥수수나 해바라기씨 같은 식량에서 추출하는 것과 달리, SAF는 폐기물 기반이다. 보잉은 이미 100% SAF 비행에 성공했고, F1은 이를 자동차에 적용하는 대규모 홍보 플랫폼 역할을 맡게 된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아마 자동차 시장도 재편이 될 겁니다. 한 10년 정도 지나면 전기차와 내연기관이 50 대 50 정도로 유지가 될 것으로 보고 있거든요.
— 김남호메르세데스 AMG HPP 유지. 페라리 유지. 르노는 엔진 생산 포기, 커스터머 팀으로 전환. 포드가 레드불 파워트레인과 파트너십으로 복귀. 혼다는 애스턴 마틴과 지속. 아우디 신규 참여. GM(안드레티 레이싱)도 엔진 프로젝트 가능성 시사. 자동차 회사들이 SAF를 계기로 F1에 다시 돌아오고 있다.
모노콕이 가장 마지막에 완성된다
설계는 샤시 레퍼런스 프레임이라는 가상의 좌표 공간에서 시작된다. x, y, z 좌표의 원점을 잡고, 바퀴·엔진·각종 파트의 질량과 거리, 관성 모멘트를 계산한다. 자동차 설계에서는 뒤 방향이 양의 방향 — 국제 표준과 정반대다.
100개의 부품이 다 완성되기를 기다릴 수 없으니, 3D 프린팅이나 합판으로 실제 크기의 가제작 모형을 먼저 만든다. 4명이 조립 — 전직 트랙사이드 메카닉 3명과 모델 패브리케이터 1명. 완성된 부품은 도착하는 순서대로 갖다 붙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자동차에서 다 부서져도 모노콕만 남죠. 자동차의 척추 같은 역할을 하는 건데, 가장 마지막에 제작돼요. 제작은 빨리 될 수 있지만 테스트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12월에 끝내면 엄청난 성공입니다.
— 김남호드라이버 피팅 — 가제작 단계에서 유일하게 실제 사람이 필요한 순간이다. 시트는 드라이버의 엉덩이 모양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대체할 수 없다. 모든 조립이 끝나면 파이어 업 데이 — 그 해에 만든 새 차의 첫 시동, 자동차의 생일이다.
소프트웨어 디파인드 비이클의 시대에
현재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이 집착하는 것은 CASE — Connected, Autonomous, Shared, Electric. 모든 의사결정이 이 네 가지 화두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클래식 엔지니어링"을 하는 사람들은 자동차 회사에서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한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으로 하드웨어를 소프트웨어가 정의하는 디바이스 개념을 만들었고,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 모델 S로 이를 자동차에 도입했다. 이후 모든 자동차 회사가 소프트웨어 디파인드 비이클에 매몰됐다.
모터스포츠는 여전히 하드웨어 디파인드 비이클을 만들 것이기 때문에, 일반 자동차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독자의 길을 갈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 김남호에이드리안 뉴이가 여전히 종이 위에 손으로 스케치하는 것 — 이것이 F1 설계의 출발점이다. 하드웨어가 가치를 정의하는 브랜드(포르쉐, 페라리)는 남겠지만, 그렇지 않은 회사들은 10년 후 사라질 수도 있다.
시뮬레이션은 사람을 시뮬레이션할 수 없다
청중의 질문을 통해 강연의 가장 날카로운 인사이트들이 나왔다.
르노에서 메르세데스 엔진으로 교체한 경험. 기계적 결합은 인터페이스가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어 큰 문제가 없다. 진짜 혼란은 엔진 '모드'의 차이 — 르노는 약 12개 모드, 메르세데스는 약 8개 모드. 각 모드의 작동 방식이 완전히 다르고, 이 특성은 엔진 엔지니어가 알려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시뮬레이션에서 불가능한 것 — 사람의 시뮬레이션. 드라이버의 성격, 선호, 관계는 시뮬레이션에 반영할 수 없다. 타이어는 시뮬레이션이 정확하게 반응하지만, 드라이버 A가 오버스티어를 선호하고 B가 언더스티어를 선호하는 것은 트랙사이드에서 각 레이스 엔지니어가 조정하는 영역이다. 가장 불만이 적은 드라이버는 키미 라이코넨이었다고 — 불만이 있는 곳만 정확하게 찍어서 얘기하는 타입.
무인 자율주행이 F1 드라이버를 대체할 가능성은 제로. 현재 오토노머스 레이싱은 단독 또는 두 대의 랩타임 경쟁 수준이며, 차량 간 인터커넥티드 레이싱은 기술적으로 아직 멀다. 더 근본적인 문제 — 드라이버를 뺐을 때 누가 어떤 팀을 응원할 것인가. 상업적 가치 자체가 사라진다.
에어로다이나미시스트는 F1에서 가장 많이 뽑고, 가장 빠른 진입 루트일 수 있다. 헬리콥터나 로켓 추진체 등 다른 공기역학 분야 박사 연구를 하다가 F1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추천 학교: 크랜필드, 옥스퍼드 브룩스, 러프버러. 동양인 여성 엔지니어도 많이 있으며, 정비 분야는 마이너 카테고리부터 밟아 올라가는 것이 현실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