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간병 7년, 그리고 창업
박재병 대표는 35세. 아버지가 80세다. 할아버지이자 아버지 — 늦게 태어난 아들이었다. 96세 할머니가 치매로 돌아가시기까지 가족이 직접 간병했다. 끝이 보이나 싶었을 때, 아버지가 중풍에 걸리셨다. 재발까지 합쳐 총 7년.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이게 내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 박재병 대표, 케어닥 창업 동기
군인 출신. 2014~16년 무전 여행을 하며 "왜 살아야 되는가"를 일찍 고민한 청년이었다. 스위스 안락사 병원을 직접 찾아가 보고, 파독 간호사 할머니들을 인터뷰하고,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귀국 후 여행사를 차렸지만, 부산 쪽방 할머니 15분을 모시는 비영리 단체를 운영하다가 요양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발견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죽으면 멋진 청년이 되지 않을까" — 그렇게 케어닥이 시작됐다.
현재 케어닥은 매달 약 1만 명의 어르신을 케어하며, 3,500~4,000명의 간병인·요양보호사(케어기버)를 운영한다. 병원 급성기 → 퇴원 재활기 → 시간제/종일제 돌봄 → 요양원/호스피스까지, 파편화되고 단절된 노인 케어의 전 여정을 IT로 통합·연결하는 것이 미션이다.
노인은 65세부터? — 아무도 정의하지 못한 숫자
강연자는 묻는다. 도대체 몇 살부터 노인인가? 우리는 65세라고 배웠다. 하지만 이 숫자의 기원을 추적하면 놀라운 사실이 나온다.
비스마르크의 연금 — 아무도 수령하지 못하도록
독일 비스마르크가 100년 이상 전에 연금보험의 수령 기준을 처음 만들었다. 당시 설정된 나이에 도달하기 전에 대부분 사망했기 때문에 사실상 아무도 수령하지 못했다. 이후 65세로 조정되었고, 1950년 유엔이 이 기준으로 연구를 시작하면서 "65세 = 노인"이 통설이 되었다.
세계 평균 수명
한국 평균 수명
한국 평균 수명
1950년에 65세는 곧 "생애가 끝나는 시점"이었다. 노인이 되면 죽는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지금 기대수명은 85세. 65세부터 85세까지 20년을 한 덩어리로 묶어 '노인'이라 부르는 것이 타당한가?
실제로 한국의 어떤 법에도 "노인은 몇 살"이라고 정의하지 않는다. 노인복지법은 만 60세부터 일부 수령 가능, 장기요양보험법은 65세 이상이지만 64세 미만도 아프면 가능하다고 모호하게 적혀 있을 뿐이다.
서울시가 약 3,000명의 노인에게 물었더니, 대부분 75세 이상부터 노인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해가 지날수록 이 숫자는 높아진다. '자기 지각 연령' — 실제 나이에 0.7을 곱한 나이가 스스로 인지하는 나이다. 68세 할머니는 자신을 40~50대로 느낀다. 그래서 경로당에 안 간다. "거기 수(數) 할매들밖에 없다"고.
시세이도가 이 교훈을 비싸게 배웠다. "50대를 위한 화장품, 50대가 아름다우면 일본이 아름답다"라는 광고를 내걸었는데 50대 여성은 절대 구매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50대로 인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연자의 결론: "노인 산업을 하려면 노인을 노인이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아프기 시작하면 노인이라 생각하더라. 노인을 둘로 나눠야 한다. 아픈 노인과 안 아픈 노인. 아픈 노인은 절실히 도움이 필요하기에 노인이라는 정체성을 수용하고, 안 아픈 노인은 절대 수용하지 않는다.
노인은 모두 하나? — 10년마다 다른 세대를 왜 묶는가
네이버에 '생애주기'를 검색하면 법률 사이트든, 보건복지부든, 기획재정부든 모두 같은 패턴이다. 신생아 → 영유아 → 청소년 → 청년 → 중장년 → 노인. 젊은 세대는 5~10년 단위로 세분화하면서, 노인은 하나의 덩어리로 묶어버린다.
5~10년마다 구분
밀레니얼, Z세대, 알파세대... MZ 담론만으로도 뉴스가 난리다. 5년 10년만 지나도 "기존 청년과 너무 다르다"며 연구한다.
20~30년을 하나로
일제강점기 학도병, 산업화 세대, 1차·2차 베이비부머 —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한 세대를 '노인' 한 단어로 묶는다.
대한민국 역사를 훑어보면 — 일제강점기 → 전쟁 → 1차 산업화 → 2차 산업화 → 민주화 → 전자혁명 → 인터넷 → 스마트폰. 이 과정에서 학도병 세대, 산업화 세대, 1차 베이비부머, 2차 베이비부머, 386세대, X세대가 각각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삶과 가치관은 전혀 다르다.
결론: 60대 노인, 70대 노인, 80대 노인, 90대 노인을 세대별로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 2차 베이비부머 세대는 이렇고, 1차 베이비부머 세대는 이렇고, 산업화 세대는 이렇다 — 이 관점이 필요하다.
효도는 자녀의 몫? — 세대별 돌봄의 대전환
'58년 개띠' —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이 키워드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1차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인이 되면, 기존 노인 인구만큼의 새로운 노인이 한꺼번에 생긴다는 것이다. 기존의 복지 시스템, 노인에 대한 인식, 모든 것이 흔들린다. 5년 뒤 2차 베이비부머까지 합류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세대별로 돌봄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일제강점기·전쟁 세대
"온 가족 부양은 내 책임. 나는 개고생했으니 아들은 고생시키지 말자." 상속 몰빵, 가족 부양까지 스스로 책임졌다.
베이비부머 세대
부모의 개고생을 봤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자식에게 안 물려주겠다는 마음 → 돌봄은 효도를 외주하는 방향으로. 맞벌이 시대, 직접 돌보는 대신 서비스를 구매한다.
MZ 세대
"부모가 할아버지를 안 모시는 걸 봤으니, 나도 부모 안 모셔." 결혼·출산도 선택. 아예 안 낳을 수도 있으니 내 돌봄은 내가 알아서. 효도가 아닌 자기 케어의 시대.
과거의 효도는 육체적 행위였다. 직접 모시고, 씻기고, 먹이는 것. 안 하면 불효였다. 지금의 자녀 역할은? 설득이다. "요양원 보내고 싶은데 설득이 안 돼." "집으로 사람 좀 쓰셔라." "아버지 어머니, 같이 골병 나세요."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부모를 설득하는 것이 현대의 효도가 됐다.
"긴병에 정말 효자 없다." 타인 앞에서는 공자의 손자처럼 "잘 모셔야 돼, 좋은 데 찾아야 돼"라고 하지만, 지갑을 꺼낼 때 — 아이에게 쓰는 돈과 부모에게 쓰는 돈의 크기가 다르다. 소비자 인터뷰에서 "부모님 때문에 당연히 써야죠"라는 응답을 믿으면 안 된다.
노인은 욕망이 없다? — 된장국만 만드는 이유
나이가 들면서 달라지는 것들이 있다. 기동력이 떨어지니 접근성과 입지가 중요해진다. 관계가 줄어드니 남은 관계가 더 소중해진다. 사회생활이 감소하니 성취의 기회가 사라진다. 세포 생산이 감소하니 회복이 느려지고, 넘어지는 것이 무서워진다. 인지력이 감소하니 과거의 기억과 익숙한 공간에 집착한다.
하지만 이것이 욕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욕망이 더 커지거나, 새로운 욕망이 생길 뿐이다. 노인이 되었다고 욕망이 없는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노인 관련 서비스를 만들 때 상상을 멈추는가?
식품회사들은 노인 식품이라면 된장국, 죽, 저자극 음식만 만든다. 강연자는 묻는다: "왜 스테이크 안 만드세요? 왜 사료를 만드세요? 내가 지금 먹고 싶은 거, 나이 들어도 먹고 싶지 않으세요?"
치매 예방 학습지도 마찬가지다. 만 3세 조카도 질린다고 할 프로그램을 노인에게 '인지 예방' '노인 놀이'라며 시킨다. 할머니들이 열심히 하는 이유? 복지사 눈치를 보거나, 복지사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다. "내 보려고 왔다(나를 보러 와준 그 사람 때문에 하는 척 한 것)." 대안이 없어서 동조할 뿐이다.
그리고 많은 공공장소에 쓰여 있는 '노약자' — 강연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노(老)자는 약(弱)자가 아닙니다." 노인 중에 과거에 약자가 많았을 뿐, 지금 65~70세의 팔뚝과 다리는 강연자 본인보다 굵다.
로봇이 돌볼 것이다? — 돌봄은 행위가 아니라 사람
시니어 스타트업들 사이에서 반복되는 환상이 있다. "돌봄은 AI로, 로봇으로 해결된다." 뉴스에도 매일 나온다 — 일본에서 로봇 돌봄이 활성화된다고.
강연자는 직접 확인했다. 일본의 2,000만 원짜리 바퀴 달린 돌봄 로봇. 결과는? 할머니들이 싫어한다. 사회복지사도 못 민다 — 넘어지면 누구 책임이고, 환자가 떨어지면 누구 책임인가? 결국 사람 책임이다.
돌봄은 행위가 아니라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다
— 박재병 대표
"내가 늙어서 로봇이 은밀한 부위를 닦아주는 걸 기대하겠는가?" — 선뜻 답하기 어렵다. 돌봄의 정의는 보호자의 '행위'가 아니라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다. 정성적인 일이다. AI 돌봄이 가능해지려면 로봇이 사람보다 더 사람 같아져야 한다.
시니어 주거의 미래 — 호스피스에서 호스피탈리티로
노인은 왜 그토록 요양원 가기를 싫어할까? 1980년 노인복지법이 시작됐을 때 기대수명은 66세였다. 노인이 되면 유병 기간 1년, 요양원에 들어가서 1년 후 사망 — 이것이 원래 설계였다. 그런데 43년이 지난 지금 기대수명은 85세. 노인이 되고 17년을 살아야 하는데, 요양원에서 17년을 기다려야 하는 건가?
유병장수 시대에 요양형 시설·법·제도는 맞지 않는다. 내가 알던 65세 누워있고 곧 돌아가실 노인과, 실제로 65세인 나는 다르다. 그 차이에서 오는 자괴감과 거부감 — 이것이 요양원을 싫어하는 본질적 이유다.
공간의 진화 — 학품학에서 병품학으로
아파트 시장의 키워드가 바뀌었다. 학세권(학원을 품은 아파트), 숲세권(숲이 보이는 아파트) — 이것이 다음 단계로 간다.
시니어 주거는 호텔의 역사를 따라간다
100년 전 호텔은 상류층만의 사치 공간이었다. 각 도시에 하나 있으면 잘 사는 도시였다. 지금은? 오만 때만이 다 있고, 호캉스는 일상이다.
실버타운도 같은 경로를 밟는다. 현재 전국에 38개뿐. 노인 930만 명에 38개. 하지만 앞으로 5~10년, 일상의 공간으로 확대될 것이다. 일본은 시골에서 가장 큰 건물이 요양원이나 실버타운인 경우가 있다. 한국도 따라잡는 건 시간 문제다.
시니어 주거의 핵심은 결국 "공간에 케어가 있는 것"이다. 현재는 요양·복지 베이스로만 설계되어 있지만, 앞으로는 여가·의료·주거의 적정 비율에 따라 다양한 카테고리가 나올 것이다. 과거의 호스피스(죽으러 가는 공간)에서 호스피탈리티(환대의 공간)로의 전환.
실버타운 수
65세 이상 인구
OECD 대비
정부의 장기요양보험 재원은 매년 조 단위로 성장하지만, 노인 인구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요양원은 더 이상 짓지 않으려 하고, 요양병원은 총량 규제를 시작한다. 사각지대가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여러분들 책임지지 않습니다." — 보험화·금융화, 개인의 준비가 필수인 시대가 온다.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준비하라
강연의 마지막은 스톡데일 패러독스로 끝난다. 베트남 전쟁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두 부류였다. 낙관론자 — "올해 성탄절에 구해줄 거야, 내년 초에 풀려날 거야" — 이들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 살아남은 쪽은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면서도, 체력을 기르고 준비한 사람들이었다.
인구 변화는 바뀌지 않는 미래다. 1988년 통계청이 "2021년에 인구가 처음으로 감소한다"고 예측했고, 2021년에 실제로 감소했다. 인구 관련 통계는 틀리지 않는다. 정해진 미래다.
노인을 노인이라 부르지 말라.
에이징 어덜트.
세대별로 구분하고, 요양을 호스피스로 보지 말고,
환대의 비즈니스로 바꿔라.
— 박재병 대표, 강연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