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일관성이 있어야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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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째 기획서를 전달하고 9번째 수정사항을 전달받았다. 주기적으로 하는 이벤트 기획서에 쓸데없이 문구 하나하나 검토해야 할 이유가 없다. 아니 내 선에서 정리해도 되는 일인데 너무 마이크로매니징하신다.

‘저 아저씨(이사) 오늘 기분이 안 좋은 건가? 어제 집에서 부부싸움 했나?

지난 회차까지는 바로 고쳐서 제출했지만, 이번에는 시간을 끌어 보기로 했다. 개발, 디자인팀에 전달할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으니까. 그동안 제출했던 문구를 메모장에 써놓고 펼쳐보았다. 그중에 내가 마음에 드는 것과 검토 시간이 가장 짧거나 길었던 것이 무엇인지 체크해서, 다시 몇 가지 후보군을 만들어 두었다.

구름에 가려졌던 햇살이 왼쪽 창가에 걸터앉았다. 잠깐 햇살과 창밖의 초록 풍경을 바라보며 머릿속을 배워냈다. 반복된 작업에 쌓인 스트레스를 잘 담아 햇살에 비치는 곳에 내려두니 재도 연기도 없이 타버리고 사라졌다. 창가 자리가 아니었으면 이 정신을 제대로 붙잡고 있을 수 있었을까 싶었다.

문득 시계를 보니 11시 30분, 검토해야 할 게 있다. 점심 식사 메뉴, 최근 일주일 동안 먹은 것을 머릿속으로 나열하고, 동료들의 의견을 모아본다. 한 주의 끝, 금요일이나 뭔가 특별한 것에 대한 열망이 주를 이루었다.

돈부리, 수제 햄버거, 평양냉면 등 메뉴를 선정하고 사다리 게임을 여는데, 임원 회의가 끝난 후 사장님이 사무실을 돌며, 오늘의 식사 멤버에 이사님과 내가 간택되었다.

연차가 쌓이다 보니 사장님 등 임원들과의 식사 자리가 불편하지는 않다. 이제는 그들이 부담스럽지도 않고 스타일을 알기 때문에 적당히 맞춰주면 하하 호호 웃으며 시간을 때울 수 있다. 가끔 기분 좋은 말 해 주면 용돈도 받을 수있으니 나쁘지는 않다.

오늘 자리에서 나의 대화 테마는 이사님 띄워주기로 정하고, 화분에 분무기 뿌리든 조금씩 흘려보낸다. 여기서 포인트는 이사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 오늘은 다들 바쁘셔서 식사만 하고 종료되었고 이사님은 커피 한잔하자며, 그 동네에 몇 안 되는 비싼 핸드드립 카페로 향했다.

내가 적극적으로 먼저 말을 걸지 않아도 그쪽에서 이런저런 말을 쏟아냈다. 내 전략이 먹힌 건지 비싼 점심을 먹은 탓인지는 모르겠고 중요하지도 않다. 그의 기분이 오전과는 달라졌음에 의미가 있다.

사무실로 들어와서 1시간 정도 기다린 후 10번째 문서를 전달했다. 대충 훑어보더니 10초 만에 승인되었다. 새로운 내용도 아니었음에도. 자리로 돌아와 협업 부서에 문서와 일정을 전달하고 옥상으로 향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타인의 감정에 노출되고, 나의 감정을 표출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괜히 오락가락해서 함께하는 이들에게 오해와 착각을 주지 말자고.

메신저의 팀 단체방을 연다.

“퇴근 후 종로에서 양꼬치에 맥주 한잔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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