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를 만들어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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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에서 하는 것은 주로 너와 나의 공통점을 찾는 것이고, 반대로 너와 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대화의 중요 소재로 사용한다. 부정적일 수는 없었지만 어떻게 보면 나에게 너, 너에게 나를 소개하고 파악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일 수도 있다. 나는 락 음악을 좋아하는데 너는 재즈를 좋아한다? 그러면 그 중간 지점의 음악을 함께 듣는다던 가, 재즈에 입문해서 함께 즐길 수도 있다.

지금은 그 차이가 너무 다양해지고 차이를 넘어 배척, 혐오에까지 다다르고 있다. 특히 출생지, 거주지, 학력, 재산 등등으로 차이를 계급으로 나누고 같은 계급끼리 모이고, 상위 계급으로 가기 위해 자신의 온 힘을 쏟는 사람도 보게 된다.

그중 물리적 차이를 절대 좁힐 수 없는 것이 세대 차이다. 내가 한 살 먹으면 너도 한 살 먹으니 도대체 마음이 통해도 나이를 좁힐 수는 없네.

한 때 꼰대력이라고 하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 일 하나를 잘 못한 후배를 데리고 회의실에서 2, 3시간 잔소리 한 적도 있었고, 좋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걸 눈을 부라리고 한숨 쉬며 수업이 아닌 터치를 하기도 했다. 그 조직에서는 그게 일상이었고 그게 맞는다고 생각했었다.

당시에는 임원 유 모 씨의 한마디에 화가 나서 다음 날 퇴사 통보 다음 주 짐 챙겨 떠나온 선택이 인생 선택 중의 하나가 되어버렸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동네 연못으로 탈출한 올챙이가 되었다. 그렇게 다른 회사, 여러 모임을 거치다 보니 잊고 있었던 내 나이를 인지하게 되었고 타인을 상대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특히 독서 모임에서의 경험은 나를 많이 바꾸었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가 단순히 생각을 깊게, 단단하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모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중에서 몇 명이 생각난다. 모임 자체가 나이를 인식하지 않는지라 동등한 입장에서 커뮤니케이션하다 보니 내가 알려 줄 수 있는 것, 그들에게 배울 것이 보이기 시작했고, 조금씩 생각의 폭과 대화의 방식이 변했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지만, 굳이 채우려 하지 않았고 인정하고 존중했다. 그때의 경험 이후로 이직하고 다른 모임에서 나의 존재는 과거와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내 나이 때 친구들은 쉽게 경험하는 ‘세대 차이’를 느끼기 힘들어졌다는 것. 내 생각과 경험을 고집하기보다. 항상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았고 재미있었기에 내 이야기 보다 타인의 입에 더 집중했다.

그때부터 공통점보다 차이와 그 간극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오히려 넓을수록 알아갈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느끼고 더 흥미가 생기기도 했다.

이제는 어디를 가나 고령에 속하는 연령대가 되었다. 청년보다는 중년에 가까운 나이다. 태어난 시기로 인해 차이를 느껴본 적이 없는 나는 열려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지만. 반대로 누군가는 나와 세대 차이를 심하게 느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그렇다 한들 앞으로도 똑같이 행동한다. 입은 닫고 귀를 먼저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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